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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그리스인들 떠난후 터키인들이 1990년대에 개량한 과일주의 마을
“인류 종말 피한다”…터키 쉬린제 마을
2019. 09. 13 by 김현민 기자

 

터키 관광안내책자에 쉬린제(Şirince) 마을이 그저 달콤한 과일주를 만드는 마을로 소개되어 있어 셀축(Selçuk)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러볼 마음으로 가보기로 작정했다.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한계령 고갯길보다 더 가파른 길을 곡예운전을 해야 했다. 산으로 향하는 길에 가는 차와 오는 차가 뒤얽혀 위태위태했다. 산꼭대기에 마을이 나타났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바람에 주차하기도 어려웠다. 간신히 주차하고 마을을 둘러보았는데, 대체로 지붕은 분홍빛이고 벽은 하얀색으로 칠해졌다.

좁은 길 옆에 상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주민들이 적접 재배한 올리브 오일과 포도, 사과, 복숭아, 체리, 딸기, 오디로 만든 과일주가 특산물로 전시되어 관광객들을 호객했다. 각종 악세서리 가게, 터키 커피를 파는 가게, 와인 가게, 식당들이 오밀조밀 들어섰고,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가는 식당도 있었다.

작고 예쁜 시골 마을이라는 안내와 달리, 북적거리고 장터 같은 느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600명쯤 되는데, 대부분이 관광업과 숙박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도떼기 시장이라고나 할까.

값은 쌌다. 터키 리라화가 최근 반토막 나면서 한국 원화로 환전한 유로화는 그곳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그래서인지 상인들은 한국인만 보면, 일단 두배 이상 불러댔다. 그에 대응한 전략은 부르는 값을 반토막 내서 흥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터키 쉬린제 마을 /위키피디아
터키 쉬린제 마을 /위키피디아

 

쉬린제는 터키 소아시아 반도(아나톨리아) 서남쪽 이즈마르주(İzmir Province) 셀축(Selçuk)에서 8km 동쪽 산간마을에 위치해 있다.

마을은 원래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오스만 투르크가 그곳을 점령한 이후 15세기에 에페수스(Ephesus) 지역에 거주하던 그리스인 해방 노예들이 지배민족인 터키인들이 살지 않는 산간으로 이주해 형성한 마을이다. 그리스인들은 터키인들이 접근을 기피하게 하기 위해 터키어로 더럽고 추하다’(ugly)는 의미의 체르킨제(Çirkince)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터키-그리스 전쟁이 끝나고 그리스인들이 1923년 민족교환 조약에 의해 이 곳을 빠져 나가면서 페허가 되었다. 당시 조약에 의해 터키에 살던 그리스인 122만명, 그리스에 살던 터키인 35~40만명이 서로의 조국으로 돌아갔는데, 양측 모두 합해 160만명의 민족 대이동이 있었다.

1926년에 이즈미르 주정부는 폐허가 된 마을의 이름을 터키어로 즐거움’(Pleasant)을 의미하는 쉬린제(Şirince)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와 살려 하지 않았다.

1990년대에 거의 폐가가 된 가옥에 터키 언어학자 세반 니샨얀(Sevan Nişanyan) 부부가 정착해 그리스인들이 남긴 유산을 이어갔다. 그들은 마을을 리모델링하고 개조해 터키인들의 이주를 받아들여 마을을 회생시켰다. 현재 주민은 약 600명으로 모두 터키인들이다.

새로 이주한 터키인들은 그리스인들이 하던 산업을 이어받아 직접 재배한 올리브 제품, 포도주, 포도, 사과, 복숭아를 이용한 과실주, 수공예 레이스 등을 생산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쉬린제 마을의 풍경 /사진=김현민
쉬린제 마을의 풍경 /사진=김현민

 

이 마을이 최근에 갑자기 유명하게 된 계기는 2012년에 유럽을 중심으로 불었던 인류멸망 대예언이다.

아메리카 대륙 멕시코에 살던 고대 마야인들이 신비한 달력을 만들었는데, 그 마야 달력에 20121221일까지만 나와 있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한 점성가가 20121221일에 인류 종말의 날이 오고, 그날 홍수와 폭우, 파멸이 찾아온다고 예언했다.

이 종말론적 예언이 언론을 통해 퍼지면서 많은 사람을 두려워 하게 했다. 특히 유럽인들 사이에 종말론이 횡행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터키 쉬린제에는 긍정적 에너지(positive energy)가 발생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근처에 성모 마리아가 승천한 곳(마리아 하우스)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 주장이 사실아든, 아니든, 혹여 종말의 날이 온다면 그곳으로 가서 살아야겠다는 믿음에다, 그곳에서 세상의 종말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작은 마을에 거주민의 100배가 되는 6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를 좋은 비즈니스 기회로 본 터키의 한 사업가는 종말의 날 포도주’(wine of the Apocalypse}를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종말의 날은 없었다. 쉬린제 마을 주민들은 덕분에 엄청난 관광수입도 얻었고, 이후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과일주를 만들던 본래의 업종을 버리고 관광업에 종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쉬린제 마을의 풍경 /사진=김현민
쉬린제 마을의 풍경 /사진=김현민
쉬린제 마을의 풍경 /사진=김현민
쉬린제 마을의 풍경 /사진=김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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