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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 파산
블랙먼데이의 승자…노벨수상자 로버트 머튼, 마이런 숄즈 등 천재 영입
[1998 LTCM 위기③] 메리웨더는 누구인가
2019. 09. 14 by 김현민 기자

 

19871019,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가 갑자기 22.6%나 폭락했다. 사람들은 그날의 주가폭락을 블랙먼데이(Black Monday)라 불렀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에 비상이 걸렸다.

이날의 주가 폭락은 뉴욕 월가의 대형투자은행 살로먼 브러더스(Salomon Brothers) 투자데스크의 위치를 역전시켰다. 이익을 낸 쪽은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의 팀이었고, 손해를 본 쪽은 살로먼 브러더스 회장이었던 존 굿프렌드(John Gutfreund)와 그의 직계 펀드매니저인 크레이그 코우츠(Craig Coats)였다.

두 팀의 상황 인식이 달랐고, 투자 방향도 달랐다.

굿프렌드와 메리웨더는 다른 데스크를 사용하고 있었다. 월가의 투자회사에서는 회장이라도 개별 펀드매니저의 투자에 간여하지 못한다. 펀드매니저들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투자하고 회사에 이익을 내준다. 경영진은 다만 수익이 나지 않을 때 펀드매니저를 해고시킬수 있을 뿐이다.

굿프렌드와 코우츠의 팀은 주가가 폭락하자 드디어 1929년의 대공황이 발발한 것으로 판단했다. 착각이었다. 대공황 때 미국 증시는 4년동안 내리 하락했고, 대신에 정부가 발행한 채권 가격은 상승했다.

주식은 투기성이 강하지만, 호황 시에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 이에 비해 채권은 호황시의 주가 상승률만큼의 수익률을 보장하지 못하지만, 고정 이자를 지급함으로써 안정적 수익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위기 시에 주식과 채권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주가가 폭락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채권 쪽으로 몰리고, 상대적으로 채권 유통가격이 올라간다.

존 굿프렌드 /위키피디아
존 굿프렌드 /위키피디아

 

굿프렌드는 금융 공황이 지속될 것으로 믿고 주식을 팔고 채권에 베팅을 걸었다. 그는 이성적이거나 과학적이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여건을 볼 때 당시 공황 가능성은 없었다. 금융시장의 이상 과열에 지나지 않았던 현상을 그들은 즉흥적으로 판단했다. 굿프렌드와 코우츠는 20억 달러를 투자, 신규발행된 30년 만기 TB를 샀다.

그들은 정글에 불이나 동물들이 우왕좌왕하며 숲속에서 뛰쳐나오길 기다리는 야수와 같았다. 겁에 질린 투자자들이 채권 시장에 몰릴 것이고, 그러면 채권을 미리 사둔 굿프렌드 팀은 큰 돈을 벌게 된다.

그러나 블랙먼데이는 3주만에 진정되고 주식시장이 회복됐다. 오르기를 기대하고 사두었던 채권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굿프렌드와 코우츠는 완패했다. 그들은 7,5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경제전문 잡지인 비즈니스 위크지는 그들을 자만심의 화신이라고 명명했다.

이에 비해 메리웨더는 하이에나처럼 영악했다. 그는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차분하게 먹이감이 움직일 방향을 계산했다. 그는 경제학 이론과 금융시장의 현실을 접목하려고 한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굿프렌드처럼 감()이나 속임수로 수익을 올리려 하지 않았다. 금융시장의 흐름에서 원리를 찾아내고, 그 원리에 의해 투자하는 과학적 투자자였다.

메리웨더의 팀은 블랙먼데이가 터지자 하루아침에 12,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위기의 순간에도 잔인하리만큼 냉정했다. 자신의 부하와 젊은 교수들에게 그는 특별한 주문을 냈다. 신규발행한 30년 만기 TB를 매각하고, 3개월전에 발행된 30년 만기 TB(정확히 말하면 299개월 후에 만기가 돌아오는 TB)를 사라는 것이었다. 만기가 30년이나 되는 장기 채권에 3개월의 짧은 기간이 어떤 가격차를 결정할 것인가. 메리웨더는 여기에 중요한 투자가치를 발견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사는 순간부터 중고가 된다. 7년 수명의 차라 하더라도 새차와 3개월 전에 산 차의 가격은 현격하게 차이가 있다. 경기가 나빠질 때 새차와 중고차의 가격차는 호황 시에 비해 훨씬 커진다. 외환위기 때 한국 중고차 시장에서 신형차가 많이 굴러 나왔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그러나 두 차가 모두 1년이 지나면 중고차 가격은 비슷해진다. 채권시장에서도 공황시에는 방금 발행된 채권 가격이 비싸고, 발행 기간이 몇 달 지난 것은 가격이 엄청나게 싸다. 그러나 시장이 안정되면 비슷한 시기에 발행된 동일 조건의 채권은 가격이 한 지점으로 집중된다. 메리웨더는 이점을 노렸다.

이런 투자를 컨버전스 트레이딩(convergence trading)’이라고 한다. 당시 월가에서 컨버전스 트레이딩 기법을 아는 사람은 메리웨더 한사람밖에 없었다. 그는 머리회전이 빨랐고, 금융 회전의 빠른 움직임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도 굿프렌드와 같은 액수인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메리웨더는 굿프렌드와 달리 블랙먼데이가 대공황의 전조가 아니며, 금융시장이 금방 정상화될 것으로 판단했다. 증시에서 실패한 투자자들이 신규발행된 30년 만기 TB로 몰려 가격이 폭등했다. 이에 비해 3개월전에 발행된 30년 만기 TB 가격은 상대적으로 쌌다. 그는 30년 만기 TB를 팔고, 299개월 만기 TB를 샀다.

시장이 정상화됐을 때 메리웨더는 유유히 굿프렌드를 누룰수 있게 됐다. 회장이면 다인가. 월가에서는 돈을 많이 벌면 최고지, 회장이니 사장이니 하는 직책이 소용없다. 메리웨더의 팀은 블랙먼데이의 대혼란 와중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20억 달러를 투자, 3개월만에 15,000만 달러를 벌었으니, 연간수익율로 환산하면 30%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해 월가 최대투자은행인 메릴린치사가 연간 39,100만 달러의 이익을 낸 점을 감안하면 메리웨더가 석달동안 번 수익은 엄청난 액수였다.

이로써 메리웨더는 블랙먼데이로 월가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40.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근무했다가 소설가로 변신한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씨는 재직시절 보아둔 굿프렌드와 메리웨더의 경쟁관계를 토대로 거짓말장이의 포커(Liar's Poker)’라는 베스트셀러를 썼다.)

 

블랙먼데이 사태를 보도한 1987년 11월 20일자 뉴욕타임스 1면 기사 /NYT
블랙먼데이 사태를 보도한 1987년 11월 20일자 뉴욕타임스 1면 기사 /NYT

 

그는 월가에서 JM(존 메리웨더의 약칭)으로 통했다. JM이 투자했다는 소문이 나돌면 투자자들이 일제히 몰려들 정도로 그는 월가 채권시장의 대부로 알려져 있었다. 그후 그는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메리웨더는 경제학 이론을 월가 금융시장의 현실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한 이상주의자였다. 박사 학위를 하고 나서 학계에 남지 않고 월가에 들어온 것은 경제학을 현실의 장()에서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살로먼에서 펀드매니저를 하면서 미국 동부 명문대의 젊은 교수들에게 손짓을 했다. 첫번째로 걸려든 사람이 하버드 경영대의 젊은 교수였던 에릭 로젠펠드(Eric Rosenfeld)씨였다. 메리웨더가 로젠펠드에게 손짓을 한 것은 그가 똑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 하버드와 MIT를 연결하는 채널을 구축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승진 시험에 실패한 로젠펠드는 하버드를 그만두고 살로먼에 입사했다.

메리웨더 곁을 찾아온 로젠펠드는 교수 영입에 나섰다. 그는 출신인 하버드를 비롯, 캘리포니아의 버클리대를 찾아가 유명 경제학 교수들에게 살로먼에서 함께 일하자고 부탁했다. 메리웨더는 로젠펠드의 덕분에 큰 건을 건졌다. 하버드대의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교수와 스탠포드대의 스타교수인 마이런 숄스(Myron Scholes)가 함께 일하겠다고 마음을 열었다. 살로먼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이들 두교수는 10년후 메리웨더와 함께 일하면서 배운 경험을 이론화함으로써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메리웨더는 학계에 줄을 대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는 이름있는 경제학자들에게 금융시장에 관한 논문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미국 금융학회 모임에 참석, 학자들과 섞이는 것을 좋아했다. 빡빡한 봉급을 쪼개 쓰던 교수들이 수십만 또는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에 혹해서 하나둘씩 메리웨더 곁으로 찾아왔다. 그는 쉽게 학자와 펀드매니저로 구성된 팀을 운영할수 있었다.

살로먼은 1980년대말에 월가의 돈을 다 긁어 모으고 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뉴욕 채권시장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투자자들은 JM이 해냈어하면서 살로먼을 부러워했고, 메리웨더를 존경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납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사였다.

메리웨더의 팀은 살로먼에서 별도의 회사나 다름없었다. 학자들은 채권시장의 금리변동과 차이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주었다. 펀드매니저들은 그 수학공식을 현실에 대입했다. 그들의 투자 기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그의 상급자와 살로먼의 다른 채권 팀들도 메리웨더의 팀이 어디에 투자했는지를 모를 정도였다. 당연히 그는 사내에서 많은 적을 갖게 됐다.

그렇게 잘나가던 그도 살로먼 브러더스를 떠나야 했다. 월가를 떠들석하게 한 채권 사기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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