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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 파산
워렌 버핏에 손 벌렸으나 거절당해…율리어스 베어 투자 받아 헤지펀드 설립
[1998 LTCM 위기④] LTCM 창업
2019. 09. 15 by 김현민 기자

 

19914월 폴 모저(Paul Mozer)라는 채권 딜러가 부정을 저질렀다. 사기를 친 것이다. 살로먼에서 모저는 메리웨더보다 한 등급 위의 상관이었다. 메리웨더는 재무부 채권 매입 과정에서 자기 회사 내에서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 사살을 감지했다. 모저는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메리웨더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자수하면 살려주겠지 하는 심정이었으리라.

그러나 메리웨더는 부정을 참지 못했다. 아니, 부정을 안 이상 숨기는 것 자체가 죄일른지 모른다. 월가 트레이더들의 세계는 살벌하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정글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다. 메리웨더는 직속 상관인 굿프렌드와 토머스 스트라우스(Tomas Strauss)에게 모저의 부정을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그들은 감독기관인 연준(Fed)이 언젠가 이 사실을 눈치챌 것이라고 결론을 냈으나,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4개월후인 8월 마침내 연준(Fed) 조사팀이 들이닥치고, 살로먼은 부도덕한 투자회사로 낙인이 찍혔다. 부하의 부정을 감독하지 않았고, 또 사실을 알면서도 자진신고를 하지 않은 굿프렌드와 스트라우스는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시장은 살로먼을 처벌했다. 투자자들이 부도덕한 회사에서 돈을 빼내갔고, 살로먼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월가의 금융황제로 불리우는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사의 워런 버핏(Warren Buffett) 회장이다. 메리웨더와 버핏의 운명적 관계는 여기서 시작된다.

버핏은 망해가는 살로먼을 인수하고, 회장에 올랐다. 메리웨더의 운명은 버핏의 손에 달려 있었다. 메리웨더도 굿프렌드나 스트라우스처럼 모저의 부정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살로먼에 있는 경쟁자들은 메리웨더도 잘못이 있으므로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버핏에게 말했다. 그러나 버핏은 메리웨더가 직속 상관에게 보고한 사실을 중시, 그를 살려두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탁월한 재능을 활용하고 싶었다.

그러나 메리웨더는 스스로 사표를 냄으로써 버핏을 떠나고 말았다. 차제에 자신의 펀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버핏은 그때 메리웨더를 붙잡지 못했다. 두 사람의 기구한 인연은 10년후 메리웨더의 LTCM이 몰락했을 때 다시 연결된다. 버핏은 메리웨더의 펀드를 통째로 인수하기 위해 덤벼들었지만,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머리 속에 살로먼 브러더스의 채권 사기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 갔다. 메리웨더는 실업자 신세가 됐다. 살로먼의 옛동료들이 메리웨더를 복직시키자고 회사에 요구했으나, 살로먼의 최고경영자들은 거절했다. 그러자 메리웨더의 부하 6명이 줄줄이 살로먼에 사표를 내고 메리웨더에게 동참, 실업자 대열에 가담했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에릭 로젠펠드도 그중 하나였다.

실업자로 전락한 메리웨더와 그의 부하들은 할일없이 2년간을 빈둥거렸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무엇을 할까, 머리를 싸매고 궁리했다. 살로먼이 아닌 다른 투자은행에 파트너로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보험회사나 상업은행에 용역을 제공하는 일을 할 것인가. 궁리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자본, 즉 사업 밑천이었다. 그들은 사업 밑천을 구걸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다.

 

메리웨더는 우선 워런 버핏이 도와줄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살로먼을 떠날 때 버핏이 메리웨더를 아까워하지 않았던가. 월가의 금융황제로 불리우는 버핏이 도와준다고 소문이 나면 다른 투자자들도 벌떼처럼 몰려올 것이다.”

워렌 버핏은 뉴욕 월가에서 가장 천재적인 투자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투자방법, 인생을 서술한 책만해도 여러 권으로 미국의 어느 서점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열성적인 팬이 많다는 얘기다. 버핏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곳,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생기는 곳에 투자를 한다. 그가 은 시장에 투자하면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은 가격이 폭등한다. 버핏은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는 혜안의 소유자이며, 그가 투자한 곳에 손해가 없다는 신뢰가 월가에 깊숙히 깔려있다.

메리웨더는 로젠펠드를 데리고 버핏을 찾아갔다. 버핏의 본거지는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였다. 그러나 버핏은 냉정했다. 돈의 시장은 인정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버핏을 만나 자신들의 계획을 설명하며 투자를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버핏은 관심이 없었다.

메리웨더는 이때 버핏에게 무척 서운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몇년후 버핏이 LTCM을 매입하겠다고 제의했을 때 메리웨더는 단호히 거절했다. 버핏은 메리웨더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 싶어했지, 독립적인 경쟁상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역으로 메리웨더는 버핏의 도움을 바랬지만, 그의 휘하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둘의 자존심 대결은 평행선을 그렸다.

버핏에게서 바람을 맞은 메리웨더 일행은 스위스 취리히로 날아가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를 찾아갔다. 그들은 장래 포부와 계획을 밝히고 투자를 요청했으나, 보수적인 스위스 은행가들은 월가의 첨단 투자기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월가에서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유럽 바닥에서는 냉대를 받기 일쑤다. 메리웨더라고 다를리 없었다.

 

레이먼드 배어 /유튜브 캡처
레이먼드 배어 /유튜브 캡처

 

무거운 발길을 돌려 뉴욕으로 돌아오려는데 메리웨더는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길 하나를 두고 UBS 은행 건너편에 있던 율리우스 배어(Julius Baer) 은행의 실세 레이몬드 배어(Raymond Baer) 전무의 전화였다. 그는 살로먼에 근무한 적이 있어 메리웨더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배어 전무는 메리웨더가 헤지펀드를 차리면 돈을 투자하겠다고 선선히 나왔다. 2년째 굶주린 하이에나로서는 백만 대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들은 곧바로 헤지펀드 설립 준비에 착수했다. 이름하여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였다.

그들은 헤지펀드의 본부를 커네티컷 그린위치에 두고, 등록지는 카리브해 해상의 섬인 케이만 군도(Cayman Islands)로 했다. 케이만 군도는 영국 자치령으로 인구 36,000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그러면 왜 메리웨더가 이곳을 등록지로 했을까. 바로 세금 도피와 비밀 보호 때문이었다.

예금자의 비밀과 세금을 감면해줌으로써 많은 예금을 예치하려는 정책은 멀리 18세기에 스위스에서 시작됐다. 이른바 스위스 비밀 구좌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독재자, 마피아, 악덕업자들의 더러운 돈도 스위스 은행에서는 받아주었다. 그런데 2차 대전후 스위스는 더 이상 예금자 보호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수 없게 됐다. 카리브해 해상의 케이만 군도, 바하마등도 스위스가 했던 방식을 취해 미국의 많은 돈을 예치받았다. 우리나라의 과거 대통령들이 이런 사실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퇴임 직전에 스위스로 갈 필요도 없이 미국 방문길에 케이만 군도나 바하마에 들러 잠시 머리를 식히며 국정 구상을 한다는 쇼를 연출할수 있었을 텐데.

케이만 군도에는 1998년말 현재 5,000억 달러의 예금이 예치돼 있었다. 이는 4년 전의 두배에 해당하며, 뉴욕에 예치된 예금보다 많은 규모였다. 케이만 군도의 주민이면 갓난이까지 합쳐 1인당 평균 1,400만 달러의 돈을 예치하고 있는 셈이다. 유령 회사와 은행도 많다. 서류상으로 등록해놓은 페이퍼 은행이 575, 페이퍼 컴퍼니가 2만 개에 이른다. 그중 하나가 LTCM이었다.

케이만 군도등 해외에 서류상으로 등록해놓은 금융기관을 역외 펀드(off-shore fund)’라고 한다. 헤지펀드는 물론 뮤추얼 펀드도 대개가 역외 펀드를 두고 있다. 나중에 뉴욕 연준이 LTCM을 구제했을 때 케이만 군도 국적의 펀드를 구해줄 이유가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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