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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연구
고대서부터 떼배로 항해…한무제 고조선 침공 이후 연안항로 활성화
떼배 탐험과 해양문화⑤…고대항로
2019. 09. 20 by 채바다

 

12. 발해를 건너다

원봉 2(BC 109) 한 무제가 수군 5만 명을 거느리고 산동반도를 출발하여 발해를 건너 고조선을 치도록 하였다. 이 항로가 당서(唐書)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산동반도의 등주를 시작으로 동북방으로 대사도, 구음도 등을 지나 조호도를 건너 요동반도 선단의 마석산에 이르고 대련만 입구에서 요동반도 연안을 따라 압록강과 대동강을 경유하여 황해도의 목숙도와 풍천 그리고 마전도와 득물도(덕적도)를 지나 당은포(경기 남양)에 이른다.

이 항로는 산동반도와 요동반도의 최단거리인 노철산수도(老鐵山水圖)사이 섬들을 따라 항해하는 연안항로이다.

당시에 행해와 항로를 알게 된다. 이처럼 연안항로를 이용한 해상문화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항로는 그 후 중국이 한반도에 침공할 때마다 모든 수군(水軍)의 기본 루트가 되었다.

6세기부터 7세기에 걸친 수나라 수군의 고구려 침공도 이 연안항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당나라는 신라를 지원하기 위해서 13만 군대를 동원하여 1천척의 선박으로 백제를 공략하였으니 당시 중국의 항해력(조선, 항해술)을 가늠하게 된다.

 

이러한 항로에서 연안항로를 이용한 문화 이동의 큰 흐름들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서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연안 항해는 복잡한 해안선으로 인하여 해류와 조류를 활용하여 항해가 이루어졌다.

이 지역들은 간만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어서 많은 항해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졌던 해안들이다.

연안항해는 조류가 심한 곳에서는 조류 때를 잘 맞추어 항해를 해야 만 목적지에 도착 하게 된다. 이처럼 고대 항해는 목표를 정해 출발하지만 예기치 못한 표류가 많았다.

제주와 일본 열도 간은 지문항법을 이용할 수 있는 시인거리는 아니지만 전남 해안에서 연안을 따라 추자도를 거치는 동안 제주 연안에 도착하기 전에 일본 열도인 오도(五島), 대마도 아끼섬으로 항해와 표류 사례들이 드물지 않게 벌어졌다.

이와 같은 일들은 범선 항해시대 종종 발생했다. 제주와 일본 열도 사이의 문화 이동은 가깝다고는 하나 많은 조난 사고와 표류로 인하여 큰 고통들을 주고 있다. 연안항해라 할지라도 사고는 언제나 예측 불허의 사고들을 불러 오는 것이 해상 활동이다. 시시각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돌변 상황들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나무껍질로 만든 원시의 쪽배. 노 대신 손으로 이용했다. /채바다 제공
나무껍질로 만든 원시의 쪽배. 노 대신 손으로 이용했다. /채바다 제공

 

13. 주형토기(舟形土器)와 독목주(獨木舟)

한국 선사시대의 배에 대한 문헌 기록들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물들을 통하여 우리나라 배의 발달을 살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배의 발전 경로를 살펴보게 된다.

또한 해안과 강 유역에서 발굴되는 배의 유물들에서 그 당시 배의 형태를 찾아 보게 된다.

서포항 원시 유적 발굴 보고서에 보면 함경북도 서포항 유적 4기층에서 고래뼈로 된 노가 출토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3000년 이전에 배가 출현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창원 비봉리에서 발굴된 통나무배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발굴 보고서에 의하면 무려 이 배의 역사를 9천년으로 보고 있다. 당시 고래 뼈로 만든 노까지 발굴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 울주 대곡리 반구대의 암벽화에서 보는 비와 같은 구조선이 출현하고 있으며, 가야시대에 이르면 매우 발달된 선박모형이 등장한다. 반구대나 가야시대 구조선보다 앞섰던 선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들 배의 바닥 형태는 통나무로 만들어 져 있어서 더욱 눈길을 끌게 된다.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주형토기들은 당시 선박의 구조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유물들이다. 주형토기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2점이 소장되어 있는 것을 비롯하여, 홍익미술관에 3, 이화여대박물관에 1점 호림박물관에 1, 국립경주박물관에 1점이 각각 소장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4~6세기 것으로 독목주에서 구조선으로 발달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서 공통적으로 독목주의 원형과 비슷하게 보인다.

 

바퀴달린 독목주 반구조선(호암미술관 주형토기) /채바다 제공
바퀴달린 독목주 반구조선(호암미술관 주형토기) /채바다 제공

 

또한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방인 옛 고조선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이래 사용했던 독목주가 출토되었다. 중국 요령성 단동(丹東)에서 BC 4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형토기(舟形土器), 대련 장해현 청록도에서 BC 3000년경 것으로 추정되는 주형도기, 반대련순(半大連順)에서 BC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현도기가 출토되었다.

이들은 모두 바닥이 평저(平底)로서 삼국시대 주형토기와 일맥상통함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이는 고조선시대 선조들이 일찍부터 사용했던 독목주로 알려지고 있다.

3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두만강, 압롱강, 강계 등지에서는 독목주가 사용되고 있었다. 그 크기는 두만강 독목주의 경우, 길이 35피트, 59피트로 매우 큰 것이다. 이것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삼림지대에 풍부한 선용 재목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주형토기의 선체는 하부구조가 기본적으로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배와 전남 완도군 조약도에서 발굴된 배와 같은 것으로 알려 졌다. 한국 배의 시원을 알 수 있다.이들 배의 밑바닥 저판(底板)은 떼배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한국 고유의 독특한 병선인 거북선도 평탄한 저판구조 이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적인 배들은 주종과 연대여하를 막론하고 떼배처럼 통나무를 이용하여 두껍고 평탄한 저판을 깔고 있어서 이들을 평저선(平底船)구조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 배의 선형(船形)과 구조는 이처럼 독특한 떼배의 구조에서 찾게 된다.

고대 문명국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유한 원시선박과 다양한 배의 발달을 가져온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진평왕 9(서기 587)에 신라의 두 청년이 떼배를 타고 남해에서 멀리 떠났다는 내용이 있다. 또 한 예로써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영락 6)은 서기 39610월 백제로부터 392년에 장악한 관미성에서 4년 동안 수송선단을 건조하여 경기만 해안지역을 따라 남하작전을 감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때에 큰 규모의 선박들의 출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 신라 본기 진지왕 9년 조에는 떼배를 타고 항해한다고 했다. 항해용 떼배의 존재를 강력히 사사하고 있다. 물론 이 시기는 구조선이 발달한 시기였지만 떼배의 등장은 의외이다.

앞으로 떼배에 대한 시원들뿐만 아니라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선박들에 대한 조선기술과 항해력들에 관하여 폭 넓게 조사 연구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본다.

오랜 배의 역사를 간직한 원시배들은 오늘날 인류의 해양문화 발달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형토기나 독목주에서 나타난 유물들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의 해양 진출과 활동은 물론 고대 선박들에 대한 원형들이 햇빛을 볼 날을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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