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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 파산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월가 은행들 휘청…최악의 금융위기 예고
[1998 LTCM 위기⑩] 방아쇠 당겨졌다
2019. 09. 21 by 김현민 기자

 

뉴욕 월가의 투자은행 JP 모건(Morgan)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 모라토리엄 이후 LTCM에 대한 구제금융이 결정되기 전까지의 5주일 동안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본 손실이 모두 950억 달러에 이른다. 월가 굴지의 은행들마저 손해를 보았고, 부채 비율이 높아 재무구조가 나쁘거나, 작은 투자기관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메리웨더의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도 그중 하나였다. 크레딧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 은행은 4억 달러의 적자를 냈고, 뱅커스트러스트 은행의 3분기 장부도 35,000만 달러의 빨간 글자가 새겨졌다. 미국 최대증권사이자, 보수적인 투자로 유명한 메릴린치도 13,5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당시 데이비드 코만스키(David Komansky) 메릴린치 회장은 우리는 글로벌 시장의 어두운 면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재미 다이먼(Jamie Dimon) 회장은 러시아는 성냥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성냥에 대화재가 발생할 정도로 시장은 건조해 있었다고 말했다.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세계는 50년만에 최악의 금융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7년 블랙먼데이 때 골드만 삭스 회장을 지냈던 그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심각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그해 여름까지만 해도 월가의 투자자들은 러시아 투자를 안심했다. 아시아 위기가 러시아에 미칠지를 전연 생각지도 못했다. 러시아 정부는 국채 수익률을 연 50%나 보장해 주었으니, 설사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채권 증서만 가지고 있으면 1년에 50%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땅짚고 헤엄치는 장사였다. 골드만삭스, 체이스맨해튼 등 월가 굴지의 은행들이 러시아 국채를 대량 매입했고,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오메가 펀드의 레온 쿠퍼맨(Leon Cooperman) 등 헤지펀드의 대부들도 러시아에 투자했다. 다른 투자자들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8월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정정이 불안해지고, 경제 문제가 곪아터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러시아 당국자들은 절대로 루블화를 절하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다.

맥기니스 어드바이저스(McGinnis Advisors)라는 헤지펀드의 매니저 다나 맥기니스(Dana McGinnis)는 러시아 정부의 말을 굴뚝같이 믿었다. 그는 러시아가 만의 하나로 루블화를 절하하더라도 현재의 환율로 달러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의 선물환 계약을 체결해 놓았다.

그러나 월요일인 817일 러시아는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깼다. 루블화를 절하하고, 400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과 은행의 대외채무 이행을 연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뉴욕 월스트리트 표지판 /김현민
뉴욕 월스트리트 표지판 /김현민

 

러시아가 폭탄선언을 한 시각은 미국 동부시간으로 월요일 새벽 3. 뉴욕 월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러시아에 투자한 매니저들은 유럽에서 걸려오는 요란한 전화소리에 선잠을 깼다. 긴가민가하며 온라인을 열어보니 사실이었다.

일본 노무라 증권의 뉴욕 현지법인은 러시아에 3억 달러나 물렸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다나 맥기니스씨도 그런 부류였다. 그는 선물환 계약을 해놓았으므로 일단 안심했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은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지급불능 상태가 된 계약에 대한 선물환 계약을 이행할 수 없다고 나왔다. 투자회사들은 은행의 주장이 애매모호하다며 항의했으니, 법적 절차를 따지며 돈을 회수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은행들이 신용을 죄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모라토리엄의 영향은 러시아에 투자한 기관투자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헤지펀드들이 러시아 투자로 많은 손실을 보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은행들은 여신 회수에 급급했다. 은행들은 채무자인 투자회사에 마진콜(margin call)을 눌렀다. 이는 은행이 채무자에게 빌려간 돈을 조기에 갚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담보를 늘리라는 증거금 청구를 말한다.

펀드들은 은행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현금을 확보해야 했다. 러시아 채권은 아예 시장에 매각되지 않았다. 모두 팔자는 사람뿐이고 사자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설령 팔리더라도 헐값이었다. 펀드들은 하는 수 없이 미국 주식등 값나가는 물건을 내놓았다. 하나의 펀드가 아니고 월가 대부분의 펀드들이 주식을 팔자고 내놓으니 미국 증시가 연일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831일 다우존스 지수는 1987년 검은 월요일에 이어 사상 두 번째인 512.61 포인트(6.37%)나 폭락했다. 뉴욕 증시가 연일 폭락하자 월가 투자자들 사이에는 8년째 지속되어온 미국 경제 호황이 종식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으로 가득 찼다. 비관론자들은 뉴욕 증시 폭락세가 1929년 대공황과 같은 상황을 재연할 것으로 우려했다.

앞서 예로 든 맥기니스 펀드의 경우를 보자. 이 헤지펀드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1억 달러의 러시아 국채를 사두었다. 모라토리엄이 발발하자 선물환 계약도 무용지물이었다. 시티코프, 레만 브러더스등 채권은행들은 마진콜을 요구했다. 가지고 있는 유가증권 모두를 내놓았으나, 주식 가격이 폭락했으니, 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맥기니스 펀드는 8월말 연방 파산법 11조에 따라 정리 절차를 밟아야 했다.

당시 러시아 채권은 액면가의 10분의1의 헐값에 거래됐고, 한국, 그리스, 터키, 멕시코, 브라질등 이머징 마켓의 채권도 폭락했다.(가산금리는 폭등)

투자자들의 유일한 도피처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 재무부 채권(TB)이었다. TB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망하기 전까지는 돈을 떼먹을 일이 없을 안전한 금융상품이었다. 투자자들이 TB에 몰리는 바람에 TB 가격은 뛰고, 수익률은 급락했다. 정크본드로 불리는 이머징 마켓 채권들은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채권시장이 크게 동요하면서 채권 거래로 돈을 벌었던 메리웨더의 헤지펀드는 큰 타격을 입었다. 9월 중순들어 LTCM이 부도 위기에 몰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월가의 채권은행들은 빚독촉을 해댔다.

미국 달러는 미국 재무부 채권과 마찬가지로 전쟁이나 세계 공황등 천재지변에 가까운 위기가 발행하면 강세로 돌아선다.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는 군중심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 사태 이후 달러도 뒤죽박죽으로 움직였다. 일본 엔화에 대해 강세를 유지해야 할 달러가 약세로 돌아선 것이다. 8월 중순 1달러당 147엔까지 치솟았던 달러 강세는 러시아 사태 이후 슬금슬금 꼬리를 내렸다.

위기는 기회라고 판단, 상당수 헤지펀드들은 달러 강세에 베팅을 걸었다. 그게 큰 실수였다. 헤지펀드들은 금리가 싼 엔화 차관을 빌려다 달러표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라는 투자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러시아 사태가 터지자 일본 은행들도 대출 회수에 나섰다. 빚독촉에 시달리던 헤지펀드들이 엔화 차관을 갚기 위해 달러 자산을 매각했다. 외환 시장에 엔화 공급량이 늘자 엔화는 강세로 돌아섰다. 107일엔 엔화가 하루만에 11.49(8.8%)나 폭등, 1달러당 118엔까지 가는 변괴가 발생했다.

줄리안 로버트슨이 운영하는 타이거 펀드의 경우 엔화 폭등으로 하루만에 21억 달러를 날렸다. 타이거 펀드는 엔화 폭등을 예측하지 못하고 거꾸로 투자했었다. 즉 엔화를 팔고 달러를 샀던 것이다. 이날 하룻동안의 손해는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가 92년 영국 파운드 투기에서 하루만에 10억 달러를 챙긴 전설적인 사례에 비견될만한 실패 사례다. 당시 타이거 펀드는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와 빚독촉에 시달리면서 250~300억 달러의 자산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재적인 투자집단인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라고 예외일수는 없었다. 천재들은 자신의 머리를 너무 과신한다. 위기 시에는 과학적인 두뇌보다 살기 위한 생존의 본능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메리웨더의 LTCM은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출신 박사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공식을 신뢰했다. 그러나 시장은 그 공식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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