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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 파산
러시아 파산 이후 손실 눈덩이…버핏 등 큰 손들에 손 벌렸으나 실패
[1998 LTCM 위기 ⑪] 원군을 찾아라
2019. 09. 22 by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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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루블화를 절하한지 4일째 되는 금요일이었다. 뉴욕 월가는 러시아를 진앙지로 한 범세계적 지진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인 커네티컷주 그린위치도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대는 아니었다.

찌는듯한 무더위가 미국 동부를 휩쓸고 있었다. 대리석과 유리로 다듬어진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의 본사 건물도 여름에 묻혔다. 건물앞 분수에 먹이감을 찾는 청동 독수리상은 한가하게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긴장감이 돌았다. 펀드매니저들과 회원들이 컴퓨터 앞에서 자지러지게 놀랐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된 게 아니었다.

미국 재무부채권(TB)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고, 이에 연동되어 움직이던 다른 채권 가격은 TB와 상관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우존스 지수는 반나절만에 283 포인트나 폭락했다. 유럽채권 시장도 폭락했다. LTCM의 밥줄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상오 11, LTCM은 두 개의 전화회사 주식에서 15,000만 달러를 날렸다. 존 메리웨더는 두 전화회사가 합병한다는 정보를 듣고 주식을 샀으나, 두 회사의 합병이 무산되면서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가 미국 재무부채권 시장에 걸어놓은 컨버전스 트레이딩에서 또 1억 달러를 날렸다. 영국 거래에서도 1억 달러를 날렸다.

하오 4, 뉴욕 증시가 폐장하고, 이날 하루 동안 허공에 날려버린 금액은 모두 5억 달러나 됐다. 이날은 메리웨더의 헤지펀드가 사상 최악의 손해를 본 날이었다. 연초에 42억 달러나 되던 펀드의 자산이 며칠만에 10억 달러 이상이 허공에 날아가 31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

파트너들이 개인 사무실에서 나와 트레이딩룸으로 몰려 웅성거렸다.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았으나, 그래프와 숫자는 믿기지 않은 쪽으로 움직였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투자자들의 문의 전화가 쉬지않고 걸려 왔다.

회장인 메리웨더는 그때 중국 북경에 가 있었다. 파트너들은 메리웨더를 찾아 상황을 전달했다. 메리웨더는 일정을 바꾸어 가장 빠른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메리웨더의 야전사령관 격인 로젠펠드는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도 부인과 아이들을 휴양지에 남겨두고 밤 비행기를 타고 그린위치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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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오 7시 정각.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메리웨더와 로젠펠드, 그리고 접근 가능한 파트너들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동경과 런던의 파트너들로부터 현지의 긴급 상황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다.

시장이 말라버렸다. 사는 사람도 없고, 파는 사람도 없다. 대형 거래를 할수 없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메리웨더와 파트너들이 내린 결론은 우선 돈 있는 사람들로부터 가능한 자금을 얻어보자는 것이었다. 일단 부도는 막아야 한다. 가장 큰 임무가 로젠펠드에게 떨어졌다. 그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을 만나 도움을 얻어내기로 했다.

그날 저녁 로젠펠드는 아이오와주로 날아가 버핏을 만났다. 양자간 협상이 시작됐다. 로젠펠드는 LTCM의 포트폴리오를 살 것을 제의했다.

버핏은 일단 튕겼다. 그는 흥미는 있지만, 월가의 다른 증권사로 가보는게 좋을 것 같다며 로젠펠드를 돌려 보냈다.

 

워런 버핏 /위키피디아
워런 버핏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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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 되면서 전 파트너들이 자금을 모으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월가에는 LTCM이 부도가 났다는 루머가 돌아다녔다. 파트너들은 월말에 8월중 실적이 발표되기 전에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실적이 나쁜 것을 알면 자금을 빌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었다.

메리웨더는 메릴린치 증권의 앨리슨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앨리슨에게 도와달라로 했다.

우리는 돈을 좀 많이 잃었다. 그렇지만 기회는 분명히 있다.”

메리웨더는 시장이 위축돼 손해를 보았지만, 자금만 조금 더 있으면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실제 LTCM은 구제금융을 받아 살아난후 큰 이익을 냈다.)

메리웨더는 메릴린치에게 3억 달러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뉴욕 월가는 비정한 동네다.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월스트리트는 얼음처럼 차디찬 가슴의 소유자들이 모여서 돈을 만지고,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곳이다. 메릴린치는 메리웨더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메릴린치가 이때 3억 달러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한달후 뉴욕 연중의 지시로 구제금융이 이뤄졌을 때 그에 상응하는 투자를 해야만 했다.)

로젠펠드는 월가에서 중소 투자회사인 페인웨버에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메리웨더는 미국 최대 헤지펀드인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에 손을 내밀었다. 퀀텀 펀드는 LTCM의 경쟁 헤지펀드가 아닌가. 사정이 급한데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메리웨더는 퀀텀 펀드의 야전사령관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를 찾았다. 메리웨더는 5억 달러만 도와달라고 부탁했지만, 드러켄밀러는 시장이 너무 위험하다며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메리웨더는 미국 2위의 헤지펀드인 타이거 펀드를 찾았다. 줄리안 로버트슨(Julian Robertson) 회장은 대답을 피했다. 뉴욕 바닥에서 큰 손으로 알려진 지프(Ziff) 형제도 찾아갔지만, 메리웨더는 퇴짜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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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오 10, 로젠펠드는 또다시 버핏과 전화 접촉했다. 이번엔 메리웨더가 동참했다. 메리웨더와 로젠펠드는 전화를 통해 버핏에게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며 사람을 오마하에 보낼테니 도와달라고 했다.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해서웨이사는 아이오와주의 오마하에 있었다. 이번에도 버핏은 희망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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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웨더는 심복인 로렌스 힐리브랜드(Lawrence Hilibrand)를 오마하로 보냈다. 힐리브랜드는 버핏에게 4시간 동안 회사 사정을 설명하며 구걸했으나, 버핏은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백전 노장인 버핏이 메리웨더와 같은 애송이에게 당할리 없었다. 시간은 버핏에게 유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메리웨더의 헤지펀드는 값이 떨어진다. 거꾸로 메리웨더는 하루에도 몇억 달러씩 잃고 있었다. 버핏은 나는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숄스 교수도 뛰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의 동료이자, 노벨상 수상자였던 윌리엄 샤프(William Sharpe) 교수에게 부탁했다. 샤프 교수는 백만장자들에게 투자 자문을 하고 있었다. 숄스는 돈이 필요했다.

숄스는 이달에 큰 손해를 보았지만, 포트폴리오는 건실하다고 강조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가 있다는 점도 곁들였다. 그러나 샤프 교수는 도대체 어쩌다가 실패했는가라며 호기심에 가득차 이론적 의문사항만 물어볼뿐 투자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는 봉급쟁이 직원들이 동요했다. 그들은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게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고, 그들은 이러다가 봉급도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를 걱정했다. 경상비조로 3,800만 달러를 빌려 일단 회사를 정상적으로 가동시키고, 직원 동요를 진정시켰다. 이 돈은 투자한 돈에 비해 푼돈에 지나지 않았다.

채권 은행들도 아우성이었다. 결재은행인 베어스턴스사는 메리웨더가 돈을 떼먹을까를 걱정해서 직원들을 보내 LTCM의 거래를 일일이 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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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8월 실적을 투자자들에게 공개했다. 한달동안 자산이 44%(18억 달러)나 줄어 들었다. 메리웨더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정도의 대규모 손실은 우리 모두에게 쇼크라고 인정하고, 수수료를 할인하겠으니, 성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헤지펀드보다 비싼 수수료를 받으며 도도했던 메리웨더도 부도를 목전에 두고 고개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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