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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 파산
워런 버핏, 골드만 삭스, AIG 등이 짜고 LTCM 인수 시도
[1998 LTCM위기⑫] 늑대 무리들
2019. 09. 23 by 김현민 기자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무너지는 짧은 시간도 크게 두 시기로 나눌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국제금융시장이 아수라장이 됐을 때다. LTCM은 막대한 손해를 보고 파산 위기에 몰렸다. 두 번째 시기는 LTCM의 파산 루머가 시중에 유포되면서 월가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이 헤지펀드를 거져 먹으려고 덤벼들었을 때다.

8월말까지 LTCM15억 달러의 손해를 냈고, 메리웨더는 15억 달러만 있으면 충분히 재기할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포트폴리오가 건실하기 때문에 태풍이 지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메리웨더는 월가의 큰 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사의 워런 버핏(Warren Buffet), 중동의 거부인 알왈리드(Alwaleed bin Talal) 사우디 왕자, 헤지펀드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등에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무도 거덜떠 보지 않았다.

LTCM을 재기불능의 나락에 떨어뜨린 것은 금융시장의 회오리바람이라는 외적 상황 변수만이 아니다. 월가 경쟁자들의 욕심이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했다. 경쟁자가 죽어갈 때 그 위를 덥치는 것이 정글의 논리다. 월가는 정글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월가의 맹수들이 동료의 목을 조이는 1주일 간의 싸움을 정밀하게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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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웨더와 그의 동료들은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의 존 코자인(Jon Corzine) 회장을 만나 자금을 빌려달라고 제안했다. 메리웨더와 코자인은 시카도 대학 동문이었고, 월가에서 15년동안 일하면서 잘 아는 사이였다. 월가에서는 친구란 없다. 철저히 이익을 따지는 세계에서 이익을 나눠주지 않고는 친구로서의 관계가 유지될수 없다.

메리웨더는 골드만 삭스가 LTCM의 회원사로 가입하는 조건으로 돈을 투자하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되면 골드만 삭스는 LTCM의 일정 지분을 얻게 된다.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코진 회장은 이 제안에 살을 붙였다. 그는 돈을 투자하는 대가로 감독권을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 15억 달러 정도를 구해서 빌려줄수 있다고 말했다.

메리웨더는 흔쾌히 승낙했다. 감독권을 주더라도 자신과 동료들이 5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경영권을 확보하는 조건이라면 충분히 받아 들일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펀드 운영에서 나오는 수수료와 수익금이 있질 않는가.

골드만 삭스와 같은 투자은행들은 자신의 돈으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 은행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남의 돈을 내 돈처럼 운영하며 돈놀이를 하는 사업이 바로 은행이라는 장사다. 돈장사꾼인 골드만 삭스는 LTCM에 투자할 사람을 찾았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컴퓨터 제조업체인 델 컴퓨터(Dell Computer)의 마이클 델(Michael Dell) 회장을 포함해 몇 명의 투자자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15억 달러를 넘는 거금을 마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존 코자인 /위키피디아
존 코자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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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자인은 뉴욕 연준의 윌리엄 맥도너(William McDonough)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LTCM이 도와달라고 한 사실을 보고했다. 요지는 LTCM이 지금은 어렵지만, 자금을 구하면 충분히 회생할 수 있다는 것.

그무렵 뉴욕 연준도 LTCM의 위기를 파악하고 있었다. 일요일인 20일에 피터 피셔(Peter Fischer) 부총재를 커네티컷의 그린위치로 보내 실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골드만 삭스는 중앙은행에 보고를 해놓고 LTCM은 내것이라고 점찍어 두었으나, 막상 적당한 투자자를 찾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LTCM을 살리려면 15억 달러는 필요했다.

코자인도 결국 버핏에게 손을 내밀었다. 혹시 버핏이라면 해결 수 있질 않을까. 코자인은 그날 저녁 골드만 삭스의 파트너인 피터 크라우스(Peter Kraus)씨를 아이오아주에 있는 버핏의 사무실로 급파했다.

버핏은 이미 메리웨더와 그의 특사격인 로젠펠드의 요구를 몇 차례 거절한 터여서 LTCM에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골드만 삭스의 특사가 찾아온 게 아닌가. 크라우스는 버핏에게 15억 달러만 있으면 되는데, 버핏이 도와주면 투자자들이 덤벼들 것이라고 말했다. 버핏은 이번에도 튕겼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버핏은 본심을 드러내고, 크라우스에게 큰 그림을 그려주었다. 인수자금은 자신이 대고, 경영은 골드만 삭스가 한다는 내용의 공동인수 방안이었다.

버핏은 빌 게이츠와 함께 미국 최대의 갑부였다. 게이츠의 돈이 주식에 묻어져 있기 때문에 당장 거금을 현금화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에 비해 버핏은 돈놀이를 하는 금융업자였고, 자신의 투자회사를 통하면 쉽게 돈을 융통할수 있다는 점에서 게이츠보다 더 부자라고 할수 있다. 버핏은 메리웨더의 포트폴리오가 충실하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다.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려 순간적으로 위기에 봉착했지만, 든든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태풍이 지나갈때까지 조금만 버티면 충분히 제값을 받을수 있는 회사라고 판단했다. 월가 대부격인 골드만 삭스에게 경영을 맡겨두면 자신의 투자는 명확하게 이익을 남길수 있다. 골드만 삭스도 버핏의 돈과 LTCM의 포트폴리오를 이용, 많은 이익을 남길수 있다.

버핏과 코자인의 특사는 LTCM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버핏은 인수회사에 회장인 메리웨더를 제거한다는 결정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버핏은 LTCM의 포트폴리오에 관심이 있지, 메리웨더에겐 조금도 미련이 없었다.

버핏은 손녀딸의 생일잔치에 간다며 크라우스와 헤어졌고, 크라우스는 반가운 소식을 코자인에게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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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연준의 피터 피셔 부총재가 커네티컷의 LTCM 본사를 찾아, 이 헤지펀드가 허리케인의 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과정은 앞장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 간단히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버핏과 코진의 합의와 별도로 뉴욕 연준이 자체 방안, 즉 월가 은행들의 컨소시엄식 구제금융안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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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뉴욕 증시가 개장하면서 LTCM 부도설이 월가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루머는 사실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실을 몇배나 부풀려 확산됐다.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패닉이 모두 LTCM의 탓으로 돌려졌다. LTCM과 메리웨더는 월가 경영진과 펀드매니저들의 실패를 해명하는 구실로 이용됐다. 뉴스전문 채널인 CNN의 경제뉴스 진행자인 루 답스(Lou Dobbs)는 특정 주식의 하락을 LTCM 때문이라고 해설했다. 언론들은 월가에서 주워들은 풍문을 사실처럼 보도했다.

골드만이 LTCM 인수에 참여할 투자자들을 모았지만 모두 나자빠졌다. 투자자들은 한결같이 상황이 나쁜데 어떻게 투자하겠느냐며 말을 듣지 않았다.

커네티컷의 LTCM 본사는 전시와 다름없었다. 여기저기서 마진콜(Margin Call: 담보를 더넣지 않으면 자금을 상환하라는 채권은행의 요구)이 쇄도했다.

LTCM 부도설에 월가는 크게 동요했다. 월가의 경영진들은 LTCM이 금융자산을 헐값에 처분할 것을 두려워했다. 월가 투자회사, 펀드들은 메리웨더의 천재적 투자를 많이 모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LTCM이 투자한 곳에 많은 돈을 부어넣고 있었다.

결제은행인 베어스턴스(Bear Stearns)LTCM의 자산이 5억 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더 이상 금융 거래를 결제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이제 LTCM의 파산은 시간문제였다.

LTCM을 먹으려는 버핏과 골드만 삭스의 공세가 시작됐다.

메리웨더는 골드만 삭스가 LTCM의 포트폴리오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팔려고 하는 채권과 주식을 동시에 팔아제꼈다고 판단했다. LTCM을 죽기직전까지 몰아부쳐 거져 먹겠다는 심사였다. 살겠다고 퍼덕거리는 하이에나의 목줄을 끊으려는 늑대들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메리웨더의 동료들은 골드만 삭스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죽이려 했다는 심증을 갖고 있었다. 골드만의 한 파트너는 LTCM 부도설로 재미를 보았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버핏과 골드만 삭스와 공동전선을 편 또다른 늑대는 미국 최대의 보험회사인 어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 American International Group)’이었다.

AIG의 모리스 그린버그(Mauris Greenberg) 회장은 버핏과 오랜 교분을 유지해온 돈독한 관계였다. 그린버그는 이때 버핏의 권유로 골드만 삭스와 공동으로 LTCM 인수에 나서기로 약속을 해놓고 있었다. 메리웨더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날 메리웨더는 사상 최악의 날이었다. 하루에 5억 달러를 잃었다. 러시아 사태 직후인 821일에 잃은 돈보다 많은 자금을 날렸다. 그나마 남은 자산이 거의 거덜날 지경이었다. 그 배후에는 AIG가 있었음을 메리웨더는 나중에 알았다.

메리웨더는 이날 5년 만기 증권 옵션을 매각했는데, 누군가 큰 손이 같은 물건을 대량으로 시장에 퍼냈다. 당연히 옵션 가격은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날 늦게 메리웨더는 옵션 매각을 중계한 JP 모건사와 스위스의 UBS 은행으로부터 숨이 넘어갈듯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AIG가 같은 물건을 내놓고 있다는 급보였다. AIG가 손해를 보며 옵션을 팔아제끼는 이유를 메리웨더는 몰랐다. 나중에 AIG가 버핏과 골드만 삭스와 한패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IG는 손해를 보더라도 LTCM을 초죽음으로 몰아 넣어 회사를 매각하지 않을수 없도록 하자는 고단수의 패를 던졌다고 메리웨더는 믿었다.

(메리웨더와 함께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거짓말장이의 포커게임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메리웨더와 그의 동료를 만나 들은 이야기를 1999124일자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자세히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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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30, 뉴욕 연준의 피터 부총재는 월가에서 내로라는 은행가들을 불러 모았다.

피터 부총재는 조찬 모임에서 LTCM을 살려야 금융시장의 파국을 막을수 있으며, 월가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구제금융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 연준의 컨소시엄 방안에 대해 골드만 삭스의 코자인 회장은 불만이었다. 골드만 삭스는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AIG와 공동으로 LTCM 인수에 나서기로 밀약을 해놓고 있었다. 코자인은 10여개 은행중 하나로 끼어들기보다는 버핏의 후원을 얻어 LTCM을 독식하고 싶었다.

이날 하오 버핏은 LTCM3억 달러를 투자하겠으니, 골드만 삭스 3억 달러, AIG 7억 달러 등 모두 40억 달러를 만들자고 코자인 회장에게 제의했다.

 

하오 6, 뉴욕 연준은 LTCM에 돈을 빌려준 월가 채권은행의 대표 10여명을 또다시 불렀다. 연준 10층 상황실에서 열린 회의는 피셔 부총재가 주재했다. 그는 LTCM이 파산할 경우 월가 금융시스템에 큰 혼란이 올 것임을 강조했다. 피셔는 참석자들에게 종이 한장을 나눠주었다. 모두 40억 달러를 모금하자는 내용이었다. 연준이 모금하는 돈의 규모와 버핏이 투자하겠다는 금액은 똑같았다. 금융감독권을 동원해 헤지펀드의 장부를 조사한 중앙은행의 과학적인 계산과 큰손의 주먹구구식 산수가 일치했다는 사실은 버핏의 능력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16개 은행에 각각 25천만 달러씩 배당하면 40억 달러가 나온다.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모두 똑같은 규모의 돈을 빌려준게 아닌데 어떻게 같은 액수를 내놓으라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순간, 연준이나 골드만 삭스를 제외한 15개 채권은행들은 버핏이 무슨 작전을 꾸미고 있는지를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코자인은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다른 은행들 속에 끼어 있었다. 그때 코자인은 점잖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 헤지펀드의 장부를 일일이 조사해 은행별 대출 규모를 조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따라서 누가 더 많이 돈을 빌려주었고, 적게 빌려주었는지를 파악할 여유가 없질 않습니까.”

코자인 회장의 말에 메릴린치, JP 모건, 스위스의 UBS등 큰 은행들이 25,000만 달러씩 내겠다고 동의했다. 그들은 각자 배당받을 구체적인 액수를 내일 아침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밤 11시에 해산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버핏은 막판 승부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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