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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보스포루스 해협에 면해 건축…마지막 6명 술탄의 거처
오스만의 마지막을 장식한 돌마바흐체 궁전
2019. 09. 24 by 김현민 기자

 

보스포루스 해협을 앞에 두고 프랑스식 베르사이유 궁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 아름다움은 쇠약해 가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마지막 빛이었다.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çe Palace)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연안에 동로마제국 시절에 작은 항구였던 지역을 메워 지은 술탄의 별장이다. 돌마바흐체라는 이름은 땅을 메워 만든 정원이란 뜻이다.

 

궁전내 정원 /김현민
궁전내 정원 /김현민

 

원래는 목조건물로 17세기에 세워졌는데 1814년 대화재로 불타버렸고, 술탄 압둘메지트 1( Abdülmecid I)가 유럽풍의 석조건물로 다시 지었다. 1843년에 착공해 1859년에 완공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했다.

외국 귀빈이 배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와 궁궐 접안시설에 내려 술탄을 접견할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압둘메지트 1세는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 4명의 아버지로, 어린 시절부터 서구 교육의 영향을 받아 유럽식 개혁을 꿈꾸던 인물이다.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사용했을 뿐 아니라, 서방문화에 매우 심취해 있었다. 그는 유럽 궁전들을 본떠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 아르메니아의 유명한 건축가 발얀 집안이 바로크 양식과 오스만 양식을 결합해 설계했으며, 파리의 오페라극장을 설계한 프랑스인이 궁전 내부 장식을 맡았다.

궁전을 완공한후 술탄 압둘메지트는 톱카프 궁전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15년 정도 살았으며, 이후 오스만 마지막 5명의 술탄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궁전안은 유럽에서 주문한 가구와 샹들리에, 외국 왕실에서 보낸 선물들로 호화롭게 꾸며졌다. 285개의 방과 43개의 살롱, 6개의 욕탕등을 꾸미기 위해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궁전 입구 /김현민
궁전 입구 /김현민

 

궁전앞의 모스크는 압둘메지트 1세의 어머니인 베즈미 알렘 술판의 명령으로 지은 것이다. 설계자 니코스 발얀이 건축한 것으로, 코린트 양식의 미나레게 아름답다. 모스크 북쪽에는 바로크 양식의 시계탑도 니코스 발얀이 1854년에 만든 것이다.

셀람륵은 술탄이 대사들을 만나고 정무를 보던 곳으로, 남자들만 축입이 가능했다. 술탄의 거처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각국에서 보내온 선물들이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36m의 천장과 56개의 장식기둥을 자랑하는 홀이다. 웅장한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데, 무게는 무려 4.5톤이며 750개의 전구로 장식되어 있다.

1923년 터키공화국을 수립한 케말 아타튀르크가 서거할 때까지 사용했던 방도 그대로 남아 있다. 궁전 안의 모든 시계는 1938111095분으로 맞춰져 있는데, 그 시각은 케말 파샤가 죽은 시간이다.

하렘의 입구는 정원 북동쪽에 깊은 곳에 있다. 술탄 가족들의 공간인 하렘은 수수하고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바라본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사이트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바라본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사이트
셀람룩 /위키피디아
셀람룩 /위키피디아
궁전내 샹들리에 /위키피디아
궁전내 샹들리에 /위키피디아
케말 아타튀르크가 죽은 침대 /위키피디아
케말 아타튀르크가 죽은 침대 /위키피디아
궁전의 모습 /돌마바흐체 궁전 사이트
궁전의 모습 /돌마바흐체 궁전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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