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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
영국, 오스만투르크, 러시아에 의해 이용당해…이번엔 미국이 배신
숱하게 강대국들의 배신에 좌절한 쿠르드족 독립
2019. 10. 11 by 김현민 기자

 

중동의 쿠르드족(Kurds)은 강대국에 의해 오랫동안 배반과 좌절을 당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이번처럼 미국에만 배신당한 게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쿠르드족은 오스만 투르크, 영국, 러시아에게서도 배신을 당했다. 강대국들은 쿠르드족을 이용하려고만 했다. 그들은 헌신짝 버리듯 쿠르드족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 없이 떠돈 민족으로 이스라엘을 꼽고 있다. 그들이 중동정세의 핵심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대인은 미국 사회의 핵심이고, 이스라엘이 기독교의 발원지라는 점이 친밀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쿠르드족의 비극에 대해 깊이 알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슬람이고, 그 민족 출신의 유명인도 없고, 세계정세에 미치는 영향력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쿠르드족 전사 /위키피디아
쿠르드족 전사 /위키피디아

 

쿠르드족은 중동을 비롯해 전세계에 3,300만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를 갖지 못한 최대의 민족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중동의 화약고였고,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결이 분쟁의 또다른 원인이었다면 쿠르드족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이라 할수 있다.

쿠르드족은 터키 아나톨리아반도 동남부와 이란, 이라크, 시라아의 국경지대에 주로 거주한다. 한반도의 1.5배나 되는, 30면적의 쿠르디스탄(Kurdistan) 지역에 거주하는 이 종족은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지며,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쿠르드족 거주지역 /위키피디아
쿠르드족 거주지역 /위키피디아

 

쿠르드족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사람은 12세기에 이집트와 시리아의 술탄으로 3차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살라딘(Saradin)이다. 그는 아이유브 왕조를 창건해 중동과 이집트를 잇는 대제국을 형성했다.

살라딘은 쿠르드족을 통합하지 못했다. 그땐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없었고, 살라딘은 이슬람의 깃발 아래 중동을 통합했을 뿐이다. 쿠르드 거주지의 서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살라딘을 따랐지만, 동쪽에 살던 사람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아이유브 왕조가 1250년에 망한 이후 쿠르드족은 셀주크 투르크와 그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다.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의 영토 /위키피디아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의 영토 /위키피디아

 

쿠르드족 민족주의는 오스만 투르크 통치시절인 19세기에 불붙기 시작했다. 초기 자치운동은 쿠르드 귀족과 대지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오스만은 쿠르드 민족주의를 탄압하는 한편 적절히 이용했다.

1877~1878년 러시아와의 전쟁 직후에 오스만은 1880년에 카프카즈 지역에 자그마하게 쿠르드 공국을 독립시켰다. 이 공국은 사실상 오스만의 보호국이었는데, 러시아가 카프카즈 이남에 아르메니아 주를 설치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 공국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웃나라의 침공으로 합병되었다. 오스만은 쿠르드족을 방패막이로 이용한 것이다.

민족주의가 대두된 이후 첫 번째 봉기는 1888년 세이크 우베이둘리(Sheikh Ubeydullah)라는 쿠르드 부족장이 주도해 일어났는데, 오스만의 술탄이 그를 중앙정부의 요직에 앉히면서 무마되었다. 민족주의자들은 귀족 중심의 봉기에 한계를 느끼고 대중적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세브르조약에 의한 터키 분할 /위키피디아
세브르조약에 의한 터키 분할 /위키피디아

 

1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오스만 투르크는 독일의 편에 섰다. 영국은 후방에서 오스만을 교란하기 위해 쿠르드족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스만이 붕괴되면 쿠르드족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부추김은 오스만 내에서 독립운동을 치열하게 벌이라는 것이었다. 러시아 인류학자들은 쿠르드족이 유럽인종이며 아시아족(돌궐족)에서 기원한 투르크족과 다르다는 점을 주장하며 쿠르드족을 흔들었다.

1차 대전을 주도하던 터키의 청년투르크당은 쿠르드족 탄압에 나섰다. 그들은 인종청소를 명분으로 쿠르드족을 학살하고, 민족 대이동을 밀어붙였다. 한 조사에 따르면 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70만명의 쿠르드족이 남쪽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고 한다.

 

터키 동부의 아라라트산 /위키피디아
터키 동부의 아라라트산 /위키피디아

 

1차 대전이 끝나고 오스만투르크는 독일과 함께 패배했고, 제국은 해체되다 시피했다. 1920년 체결된 세브르 조약(Treaty of Sèvres)에서 강대국들은 터키 서부에 쿠르드족 자치국가를 약속했다. 쿠르드 독립을 가장 강력하게 지원을 약속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하지만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가 이끄는 터키 독립세력은 쿠르드족 독립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7년 쿠르드족은 19271028일 터키 동부지역에 꿈에도 그리던 독립을 선언하고 국명을 아라라트 공화국(Republic of Ararat)이라고 했다. 수도는 쿠르드와 아르메니아족이 동시에 숭배하는 아라라트산 기숡의 쿠르드 아바(Kurd Ava)로 정했다. 케말 파샤가 이끄는 터키 공화국은 아라라트 공화국을 반군으로 규정했다.

독립국 지도부는 강대국과 국제연맹, 그리고 이라크와 시리아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터키 정부의 강력한 압박에 영국과 프랑스가 쿠르드 독립국을 지지하지 안았다. 전쟁이 끝났으니, 쿠르드족이 소용없었던 것이다. 19309월 터키 공화국은 군대를 보내 아라라트 공화국을 무너뜨렸다.

 

이라크에 세워졌던 쿠르디스탄 왕국 /위키피디아
이라크에 세워졌던 쿠르디스탄 왕국 /위키피디아

 

이라크 쿠르드족 지역에서는 쿠르드 지도자인 마흐무드 바르잔지(1Mahmud Barzanji)1919년과 1922년에 두 차례에 걸쳐 봉기를 일으켰다. 영국은 무력을 동원해 쿠르드족 반란을 진압하고 바르잔지를 인도로 추방했다. 그러자 이라크 지역 62개 부족장들이 영국의 위임통치 하에 독립을 요구했다. 영국은 마지 못해 추방한 마흐무드를 복귀시켜 자치정부 수반에 올려 놓았다. 터키 독립운동 세력과의 완충지대를 형성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하지만 바르잔지는 19229월 쿠르디스탄 왕국(Kingdom of Kurdistan)의 독립을 선언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바르잔지도 오래가지 못했다. 또다른 쿠르드 지도자인 샤이크 카드리야(Qadiriyyah)가 두달만에 바르잔지 정권을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쫓겨난 바르잔지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1923년 영국군에 패배했다. 이로써 쿠르디스탄 왕국은 종말을 고했고, 1926년 국제연맹은 영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왕국을 이라크 위임통치령으로 이관했다.

 

소련이 수립한 마하바드 공화국 /위키피디아
소련이 수립한 마하바드 공화국 /위키피디아

 

이란 지역에 또다른 쿠르드 국가가 잠깐 등장한 적이 있다. 이 나라는 소련의 위성국가였다.

2차 대전 직후에 소련은 이란 북부를 점령하고 쿠르드 지역에 길쭉하게 마하바드 공화국(Republic of Mahabad)을 수립했다. 1946122일 수립된 인구 4만의 쿠르드족 공화국은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그해 1215일 문을 내렸다. 1년도 되지 않은 이 공화국은 행여 소련이 이 땅을 차지하면 괴뢰국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이란과의 협정에 이해 되돌려 준 것이다.

 

쿠르드인의 45%가 터키에 살고 있고, 이란에 23%, 이라크에 18%, 시리아에 6% 살고 있다.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는 오랜 역사 과정에서 전쟁을 벌이며 대립했지만, 쿠르드족 문제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다. 쿠르드족 지역이 4개국 국경이 접하는 고산지대이므로, 한곳이 뚫려 독립을 하게 되면 다른 쪽 민족에 동요가 생기기 때문이다.

터키의 청년투르크 민족주의자들은 쿠르드족 자치를 허물었고, 이라크에 사담 후세인 정권이 집권할 때에 쿠르드족이 이란 첩자 노릇을 한다며 무려 10만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이란에 이슬람 혁명이 성공해 시아파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섰을 때 그들은 수니파를 믿는 쿠르드족의 자치를 불허했다.

 

이제 쿠르드족은 시리아에서 독립을 희망했다. 2015년 이슬람 극단세력인 IS가 이라크·시리아에 창궐했을 때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인민수호대(YPG: Yekîneyên Parastina Gel)를 결성해 싸웠다. 쿠르드족은 4년간 11천여명의 희생자를 내며 IS 진압작전의 선봉에 섰고, 마침내 IS로부터 락까를 해방시키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쿠르드 민병대과 동맹을 맺고 군사적 지원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강대국으로부터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 쿠르드 지역에서 철군을 단행했고, 그 공백을 이용해 터키가 쿠르드족을 공격한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터키의 군사공격이 진행된 이틀째 수만명의 쿠르드족이 피난하고 수십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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