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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낙규 여행기
탱고 선율 따라 항구 도시를 느끼다…짙게 배어나는 음악과 문학, 역사의 향취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좋은 공기…강낙규의 아르헨티나 여행②
2019. 10. 18 by 강낙규 전 기술보증기금 전무

 

2.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좋은 공기)

 

< 라 보카(La Boca , 입구) >

 

라 보카는 라 플라타강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라 보카는 아르헨티나 최초의 항구다. 부에노스아이레스사람들은 스스로를 포르테뇨’(Porteño 항구의 사람)라 부른다. 마치 파리사람들이 파리지앵이라 부르듯이 그들의 부두 사랑을 보여준다. 라 보카의 가장 유명한 곳은 까미니토(Caminito 작은 골목길)거리다. 조선소에서 쓰고 남은 페인트로 양철과 벽돌집을 원색의 강렬한 색으로 칠하여 독특한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 보카 출신 화가 베니토 킨켈라 마르틴이 라 보카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겨 더욱 유명해졌다. 해안가에는 그의 미술관이 있다. 지금도 많은 화가들이 화려한 벽화를 그리고 있고,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마라도나, 에바 페론, 카를로스 가르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형과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야외미술관이다. 거리 곳곳에는 레스토랑과 야외 카페 그리고 기념품가게가 들어서 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300만 명의 유럽인이 이민을 온다.

애니메이션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19세기 중엽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재정이 어려워 결국 엄마는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간다. 이후 소식이 끊기자 12세 소년 마르꼬는 혼자 아르헨티나로 떠나 고생 끝에 마침내 엄마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가난하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만큼 당시 아르헨티나는 유럽에서 아르헨티나드림이 유행할 정도로 부유했다.

 

보르헤스가 탱고는 라 플라타강의 아이다라고 했듯이 라 보카는 탱고(Tango 만지다. 가까이 다가서다)의 발상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땅고라고 발음한다. 탱고는 가난한 이민자인 선원과 부두노동자 그리고 도축장 인부들이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낯선 환경에서의 설움을 술과 함께 고된 노동의 애환을 달래려고 만들었다. 아프리카 앙골라의 칸돔베(Candombe)를 모방하여 4분의 2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춤음악과 쿠바 아바나에서 발생한 아바네라가 섞여 탱고로 발전하게 된다.

다리 사이의 전쟁, 네 개의 다리와 한 개의 심장이라는 탱고는 외설스럽고 하층민의 춤이라 여겨 아르헨티나 중상류층은 외면한다. 독일 황제 빌헬름2세는 탱고가 예의범절을 모욕하고 도발적인 춤이라고 비난하며 독일 장교들에게 탱고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탱고가 프랑스로 넘어가 화려하고 세련된 춤으로 파리 중상류층에서 유행하자 콘티넨탈 탱고란 이름으로 역수입된다. 거친 환락가에서의 시원스러운 동작과 정열적인 리듬이 우아한 격식의 예술로 변천하게 되어 아르헨티나의 중상류층도 함께 탱고 붐을 이루게 된다.

초기 바이올린과 플루트, 클라리넷과 아코디언으로 연주되던 것이 1880년 아코디언 대신 반도네온이 추가되고 이후 피아노가 함께하면서 1910년에는 오케스트라로 완성된다. 작곡가이며 가수인 탱고의 아버지 카를로스 가르델이 탱고를 음악장르로 발전시키고, 그의 제자 아스트로 피아졸라에 의해 재즈와 클래식을 접목한 새로운 탱고(Nuevo Tango)로 수준은 격상된다. 이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를 보지 않고 떠나면 범죄라고 한다.

카를로스 가르델의 명곡 여인의 향기OST 뽀르 우나 까베사(Por una Caveza 간발의 차이로)에 맞춰 탱고를 추면서 알파치노가 한 명언이다. “스텝이 엉기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이제 탱고를 배울 차례다.

 

< 피아졸라 탱고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3대 탱고공연장 중의 하나다. 저녁식사와 탱고 교습 그리고 탱고공연과 호텔까지 픽업을 해준다. 저녁식사로 스테이크를 선택한다. 아르헨티나에선 무조건 스테이크다.

저녁식사 후 로비에서 30분간 탱고레슨을 받는다. 30여명의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인다. 간단하게 자기 나라를 말하는데 아시아인은 우리뿐이다. 대다수가 5-60대다. 예상외로 나처럼 몸치여서 다행이다. 갈수록 어려운 동작에 스텝은 점점 꼬여가지만 스텝이 엉기면 그게 바로 탱고라는 알파치노의 명언에 용기를 잃지 않는다.

이제 본격적인 탱고공연이다. 그런데 테이블에 와인이 한 병 놓여 있다. 아르헨티나 와인 맛이 괜찮다. 홀짝홀짝 와인을 한 병 다 마셔버렸다. 까미니또거리와 플로리다거리를 온 종일 걸어 다니는데다 와인 한 병을 다 마셔 깜빡 깜빡 잠이 들었지만, 탱고군무를 추며 파트너들을 공중에서 돌리거나 허리를 꺾고 빙글빙글 도는 동작은 신기에 가까운 묘기다. 기계체조선수처럼 다리를 쭉 뻗으면서 서로를 바라볼 때 무대 조명이 붉은 색에서 점점 파란 색으로 바뀔 때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마지막 탱고를 추고 헤어지는 듯 애달픔이 느껴진다.

저녁 740분 식사를 시작해서 공연을 마치니 밤 1150분이다. 조별로 픽업을 해서 호텔에 도착하니 밤 1220. 일찍 예매하니 할인해줘서 1인당 2,100페소 약 6만원이다.

 

< 산 뗄모(San Telmo) >

 

힘들거나 지칠 때 재래시장을 가면 많은 에너지를 받는다.

산 뗄모지역의 도레고(Dorrego)광장에서 부터 데펜사(Defensa)거리를 걷다 보면 온갖 골동품과 기념품, 노천가게들로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유럽이민자들이 가져온 각종 가구와 일상용품, , 다양한 칼, 뜨개질 옷과 목도리, 장식품등 볼거리가 많다. 특히 일요일에는 훨씬 많은 골동품가게가 열린다. 도레고광장 한편에선 무료탱고공연이 열린다. 전문 공연이 끝나면 관광객의 손을 이끌며 자연스럽게 탱고를 추는데 노련한 할아버지의 자연스런 리드에 관광객은 마치 전문 댄서처럼 보인다. 데펜사거리의 유명한 인형극을 보면 술주정뱅이 인형이 술을 너무 마셔 끌려 나가는데 바로 인형극을 공연하는 연출자와 같은 옷이다.

산 뗄모지역은 한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지역이였는데 전염병이 휩쓸고 간 이후 사람들이 떠나게 된다. 이후 골동품과 미술품을 팔던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탱고가 유행하자 부에노스아이레스시는 이 지역을 예술의 거리로 만들어 세계적인 일요시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남영주 사진작가
남영주 사진작가

 

< 79일대로(Av. 9 de Julio) >

 

1911년 아르헨티나의 독립(181679)을 기념하기 위해 79일 대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세계 경제 5위의 부국으로 발돋움한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로 말하고 프랑스인처럼 살며, 영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이탈리아사람이다. 황금기를 맞이하여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남미의 파리로 건설한다. 1913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미 최초의 지하철이 건설된다. 79일 대로 주변에는 대통령궁, 5월 광장, 꼴론극장, 오벨리스크, 카페 또르또니와 고급 브랜드 상점 등이 모여 있다. 상젤리제를 모델로 했다.

79일대로는 9차선 도로로, 폭이 144m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다. 거의 100년 만에 완성된다.

대통령궁인 까사 로사다(Casa Rosada 분홍빛 저택)는 에바 페론이 국민들을 향하여 연설했던 2층 발코니로 유명하다. 영화 에비타에서 마돈나가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열창했던 바로 그 발코니다.

까사 로사다 뒤쪽에는 5월 광장(Plaza de Mayo)이 있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군사독재시절 9천명에서 3만명의 시민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살해당하거나 실종되는데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라 불린다. 당시 5월 광장에서 자식과 손자를 잃은 어머니들이 모여 흰 수건을 쓰고 침묵시위를 했는데, '5월의 어머니회'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꼴론극장(Teatro Colon)은 유럽풍의 우아한 극장인데, 이탈리아 스칼라극장, 프랑스 국립오페라극장과 함께 세계 3대극장으로 손꼽힌다.

오벨리스크는 19365월 부에노스아이레스 건립 4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높이가 61.5미터이고 내부에는 200개의 계단이 있어 꼭대기에서 조망을 할 수 있다.

카페 또르또니(Cafe Tortoni)는 프랑스인이 1858년 개업을 한 이후 1894년 지금 장소로 이전했다. 여류시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알폰시나 스트리니라는 작은 무대가 있는데 탱고공연이 열린다. 수많은 문인과 화가, 정치가가 다녀갔다. 보르헤스와 카를로스 가르델의 흉상도 있다.

 

< 엘 아테네오(El Ateneo) >

 

19195월에 개장한 이 서점은 원래 오페라극장이었는데 1929년에는 영화관으로, 2002년부터 서점으로 탈바꿈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손꼽힌다. 아르헨티나에는 700여개의 서점이 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서점을 가진 도시로 선정되었다. 보르헤스 살아생전 엘 아테네오가 있었다면 산책하다 이 서점에서 책을 사서 카페 또르또니에서 책을 읽지 않았을까?

 

남영주 사진작가
남영주 사진작가

 

< 보르헤스와 함께 산책하기 >

 

20세기 세계문학의 지배자(호세 카를로스 카네이로), 20세기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 소설을 죽음에서 구해낸 작가, 현대소설의 개척자, 형이상학적 오지 탐험가, 탈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진지한 농담으로 세상을 바꾼 작가. 보르헤스에 대한 수식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와 감독은 그에 대한 존경을 오마주로 표한다. 푸코는 보르헤스 덕분에 <말과 사물>을 썼다고 하고,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보르헤스를 모델로 장님 수도사 부르고스 호르헤를 그리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을 오마주해서 쿠퍼가 블랙홀 가르강튀아에서 떨어져 헤매는 5차원 공간을 수많은 책꽂이 공간으로 표현한다.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드리외 라 로셸은 보르헤스 때문이라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보르헤스의 대표작인 <픽션들>(1944)<알렙>(1949)에 수록된 33편의 단편소설은 철학과 역사, 과학적 지식으로 보편적 진리가 부재하는 세계에서, 탈중심적 사고로 중심과 주변의 대립보다 다양한 중심들의 공존을 그리고 있다. 보르헤스 읽기가 만만치 않아 보르헤스에 대한 강의를 듣고, 해설집을 읽고 나서야 소설이 읽어진다.

<바벨의 도서관>은 하나의 진리와 그것에 대한 비판 없는 숭배가 아닌, 우연과 혼돈, 필연과 질서는 공존하며, 혼돈에서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새로움과 창조적 활력을 기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빌로니아의 복권>에서는 우연의 놀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운명을 사랑하라는 (Amor Fati) 니체의 가르침을 반복한다.

<삐에르 모나드, (돈키호테)의 저자>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모래성을 쌓는 아이처럼 무한한 해석의 놀이를 통하여 스스로의 의미를 산출하는 길을 찾으라고 한다. 인간 개개인은 지적능력과 상상력, 사고체계가 충분히 독립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두 가지 특성인 글쓰기 과정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메타 픽션)과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며 남의 것을 마구 갖다 쓰는 탈구조주의(상호텍스트성)는 보르헤스 소설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느꼈다. 나의 과거이고, 나의 미래이고, 또 나의 현재이다. 유럽에서 산 날들은 하나의 신기루였고, 나는 항상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었고 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을 것이다.” 매일 3시간씩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산책한 보르헤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보르헤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9769월 칠레에서 피노체트로부터 베르나르도 오긴스 훈장을 수상하며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에서는 자유와 질서가 들어서고 있습니다.”라는 수상소감에 좌파성향의 스웨덴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탈락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반어법으로 건넨 농담을 마치 피노체트를 칭찬하는 것처럼 오해를 한 것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보르헤스를 두고 그것은 보르헤스의 수치가 아니라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의 수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보르헤스는 30대부터 집안 병력인 유전적 요인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중 1955년 국립도서관장으로 임명된 이후 완전히 시력을 잃고 만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불행과 패배, 굴욕, 실패도 문학의 도구라며 이때부터 구술하여 받아쓰게 하면서 단편소설과 산문시, 운문시를 쓰게 된다. 그래서 보르헤스를 20세기의 호메로스라고도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문학투어(Buenos Aires Literary Tour)를 신청하면 보르헤스 생가와 그가 산책했던 공원 그리고 영감을 받은 장소와 공원잔디에 앉아, 작가들의 짧은 글을 읽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문학에 대하여 대화를 할 수 있다. ‘책이란 자율적인 실천이 아니다. 책은 수많은 관계의 축이다.’란 말의 실천이다.

www.literaryexperience.com 통해 문학투어를 신청할 수 있으며 최소 2인 이상이 되면 진행한다. 참고로 투어진행자가 신청내용을 즉시 확인 하는 것이 아니므로 5일전에 미리 신청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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