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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낙규 여행기
피노체트,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 전복…신자유주의 추진, 빈부 격차 심화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리는가?…강낙규의 칠레 여행③
2019. 10. 31 by 강낙규 전 기술보증기금 전무

 

3. 산티아고 (Santiago)

 

최근 칠레에서 지하철 요금을 50원 올리자 시민들이 시위를 하며 사망자가 11명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이후 시위는 점점 격화되어 산티아고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임금 인상과 연금, 의료보험, 교육 개혁에서 더 나아가 피녜라 대통령의 사퇴까지 요구하고 있다. 피녜라 대통령은 내각 전면교체와 함께 전기요금 인상안 철회, 기초연금 인상, 최저임금 인상, 의료비 부담 완화 등의 대책을 내 놓지만 사태가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다.

 

산티아고에서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가던 중 도심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425) 도로는 폐쇄되어 더 이상 차가 갈 수가 없다. 중도에서 내렸는데 주먹보다 큰 돌이 날아오고 가로수와 타이어에 불이 붙어 시커먼 연기가 도심을 뒤덮는다. 경찰에게 공항 가는 길을 묻자 경찰도 모른다고 한다. 캐리어를 끌고 작은 배낭을 메고 최루탄을 맞아 눈물 콧물을 흘리는 걸 본 대학생이 치약으로 눈 주위를 발라주면서 오백 미터 떨어진 지하철역으로 가서 두 정류장 지나 버스나 택시를 타라고 알려준다.

왜 시위를 하느냐고 물으니 대학등록금 인하와 교육개혁이라고 하는데 요구사항에 비해서 시위가 좀 과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지하철카드를 사고는 물어물어 지하철을 탔는데 거구의 백인이 이리저리 계속 몸을 부딪친다. 왜 이러냐고 소리치자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순간 아차하고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핸드폰이 없다. 늘 바지와 윗도리는 지퍼로 잠그는데 시위대를 만나 정신없이 지하철카드를 사면서 순간적으로 방심했다. 악마 같은 천사다!

 

대학등록금과 교육개혁 그리고 지하철 요금의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아옌데와 피노체트를 만나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보자.

 

남영주 사진작가
남영주 사진작가

 

<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

 

선거로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 대통령,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쿠데타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대통령.

빈곤과 질병, 범죄는 과도한 착취와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다. 아옌데는 사회주의를 통하여 부의 재분배와 합리적 사회 재편으로 경제적,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1952년 사회당과 공산당의 연대체인 인민전선(Frente del Pueblo)의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5.6%의 득표에 머물지만 아옌데의 이름이 처음으로 전국무대에 알려진다.

1958년에는 사회당, 공산당, 인민사회당이 모여 결성한 인민행동전선의 대선후보로 지명된다. 구식 증기기관차를 검은 색으로 칠하고 기관차의 목적지는 수도 산티아고 - 최남단 푸에르토몬트 - 대통령궁 라모네다로 정한다. 승리의 열차에는 음악가, 예술가, 지식인과 정치인이 올라탔다. 투표결과 3% 차이로 패배한다.

1964년 대선에서도 아옌데가 인민행동전선의 대선후보로 지명된다. 이번에도 패배하자 아옌데는 걱정 말게. 1970년 대선에선 우리가 이길 거야.” 그러면서 살바도르 아옌데, 미래의 칠레 대통령 여기 잠들다.” 자신의 묘비에 이런 글귀가 쓰일 것이라고 웃어넘긴다. 하지만 당내에선 선거를 통한 집권방식을 망상이라 여기며 무장투쟁을 통한 권력 장악으로 기울어진다. 하지만 아옌데는 민간차원의 경쟁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만 무장투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체 게바라의 말을 상기 시키면서 대중운동이 선거를 통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단계에 거의 다가섰다고 주장한다.

1969109일 새로운 선거연합체인 인민연합(Popular Unity)이 공식출범한다. 급진당과 기독민주당을 탈당하여 모인 마푸(MAPU), 독립진보연합, 인민행동전선 소속 정당이 참여한다. 파블로 네루다를 대선후보로 내세운 공산당이 공개적으로 아옌데를 지지 선언하면서 아옌데는 4번째로 대선 후보에 나선다. 197094일 아옌데는 마침내 칠레 대선에서 승리한다. “칠레의 혁명은 파괴가 아닌 건설을 뜻한다. 철거가 아닌 건축이 시작될 것이며 제2의 독립, 칠레 경제의 독립을 이루어 낼 것이다.”고 천명한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1972년) /위키피디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1972년) /위키피디아

 

아옌데는 사회주의를 향한 칠레의 길(La via chilena al socialismo)을 선포하고, 먼저 구리, 질산염, 요오드, 철광석, 석탄산업과 금융, 무역 그리고 독과점 부문의 국유화를 실시한다. 이어서 사유 재산의 1/5에서 1/4을 몰수하여 국유화하는 토지개혁을 시행하고, 농민에게 토지소유권을 부여 한다.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배격하고 미국과 맺은 모든 불평등한 협약과 조약을 개정 또는 폐기하기로 한다. 공교육제도가 입안되고 남녀동일임금제, 사회보장제도확대, 전 국민대상 예방치료 의료보장을 제시한다. 영양실조로 병든 어린이에 대한 무료 우유 배급과 아침 급식을 제공한다. 구리산업 국유화법이 발효된 1971711일을 국가 존엄의 날로 선포한다. 아옌데 임기의 첫 1년 동안 확대 재정정책의 성과로 산업 성장은 12%, GDP8.6%으로 성장하며, 인플레이션은 34.9%에서 22.1%로 줄었고 실업률도 3.8%로 떨어진다.

천연자원의 국유화로 확보한 예산으로 교육과 공공서비스를 개선한다.

 

미국계 다국적기업 아나콘다는 칠레 구리 광산 지분의 16.6%를 투자해서 전체 이윤의 79.2%를 가져갔다. 엄청난 이윤을 제공하는 구리 광산의 독점적 운영권을 잃고 싶지 않았던 초국적 기업 케네코트, 아나콘다, ITT, 포드 자동차, BOA, 시티은행 등은 월리엄 로저스 국무장관을 찾아간다. 남미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부가 민주선거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미국은 1970116일 닉슨 미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여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킬 방안을 논의한다. 이들 기업과 함께 칠레에 대한 경제 봉쇄를 단행한다. 미국 내 비축 구리를 시장에 공급하면서 구리가격을 크게 떨어뜨린다. 칠레 수출의 절반 이상인 구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출 감소로 칠레 경제는 어려워진다. 1970년 톤당 66달러에 이르던 구리 가격은 1971-72년에는 48달러로 곤두박질친다.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1971년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줄 분유를 사고 싶다는 아옌데 정부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칠레 경제계에서의 특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칠레의 모든 대외경제, 금융 분야의 협력을 봉쇄하기 위한 자본가들과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옌데 대통령이 19733월 전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아 다시 당선되어 개혁정치가 계속될 것이 분명해지자 19739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참모총장 피노체트는 육군, 공군, 해군을 총동원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다. 작전명은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그날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라디오에서는 계속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고 방송을 하면서 쿠데타가 발발하였음을 알린다.

피노체트 측이 망명을 권유하며, 헬기를 준비했지만 아옌데 대통령은 이를 거절, 마지막 라디오 대국민 연설을 남기고, 쿠바의 카스트로가 건네 준 소총으로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에게 남은 건 오직 노동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사적 변천 과정에 처해서 저는 일생 동안 인민들에게 충성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 말씀 드립니다. 제가 수많은 칠레인들의 양심에 뿌린 씨앗이 영원히 시들어버리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무력이 있고 우리를 지배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사회의 진행은 범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인민들이 역사를 만듭니다.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 제가 여러분께 연설할 수 있는 이 마지막 순간, 저는 여러분이 교훈을 잘 활용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외국 자본, 제국주의가, 반동세력과 함께, 군부로 하여금 자신들의 전통을 깨뜨리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사실에서 말입니다...

역사가 그들을 심판할 겁니다.

내 조국의 노동자들이여,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반역이 지배하려고 하는 이 어둡고 모진 순간을 극복할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체 게바라는 아옌데에게 <게릴라의 교범>을 선물하면서 똑같은 목적을 나와 다른 수단을 통해 추구하고 있는 살바도르 아옌데에게란 문구를 적었다. 폭력이 아닌 선거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대를 모색한 아옌데의 길은 서유럽과 아메리카의 좌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프랑스에서는 미테랑의 주도로 사회당과 공산당이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집권하게 되며, 베네수엘라를 비롯하여 여러 라틴아메리카국가들이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창출하는 좌파물결(Pink Tide)에는 아옌데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남영주 사진작가
남영주 사진작가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

 

자유시장과 사적소유를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

쿠데타 다음날인 1973912통행금지를 어기는 사람은 사살당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어서 이 나라에선 나뭇잎 하나라도 내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라며 17년 동안 철권통치를 펼친다.

민주주의란 때론 피로 목욕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망언을 증명하듯 20159월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피노체트 집권 기간 인권탄압 피해자는 4만여 명, 사망·실종 인사는 3,225명에 이른다.

 

영화 실종(missing)’은 쿠데타 전후의 만행을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실종된 아들을 찾으러 나선 아버지(잭 레먼)와 며느리를 통해 쿠데타에 미국 정부의 개입 정황을 볼 수 있다. 미국 관료들이 시카고에 갱들이 싸우는 사이에 누군가 얼쩡거리다 죽으면 그게 정부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자 아버지는 당신들은 내가 준 세금으로 내 아들을 죽이는 일을 했다.”며 절규한다. 아카데미 각본상과 칸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잭 레먼)을 수상한다.

 

피노체트는 밀턴 프리드먼의 조언을 받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시행한다. 금융개방과 통화정책을 중시하는 시카고 대학 유학파 출신들을 경제 관료로 중용한다. 아옌데 정부의 구리광산 국유화나 의료체계 개편과 같은 사회주의적 개혁 정책들을 폐기하고, 주요 국영기업의 민영화, 규제 철폐, 무역장벽 완화 등의 정책을 실시한다.

고정환율제와 고금리 정책은 수출 농산물 업계와 산업 부문의 몰락을 부르고, 금융시장 자유화 정책은 대기업과 연계된 금융기관들의 무분별한 해외 차입과 부동산·금융 투기를 초래해 81년 중반 외환위기에 몰린다. 자유시장과 사적소유 수호라는 쿠데타 명분을 무색하게 칠레 군부는 부실한 금융기관 6개를 인수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 금융 협정을 맺은 831월 이후에는 금융 산업의 80%를 정부 통제 아래 둔다. 제조 부문에 대한 보조를 부활해 수출 증대를 지원하는 한편 불황으로 감소한 재정수입과 민간 부채마저 떠안은 정부는 해외에서 자금 지원을 받으며 공무원 임금 삭감, 공기업 매각 등으로 재정 적자를 메워 간다.

정부는 국유화했던 은행을 다시 매각했고, 교육 재정도 신자유주의 정책이 적용되면서 사립학교의 비중이 대폭 증가하고 민영화된 교육체제로 바뀐다. 이전 국립대학에서는 학부모 소득수준에 따라 대학등록금을 정했다.

현재 칠레의 대학등록금은 1인당 국내총생산의 41%OECD국가 중 가장 높은 반면 국내총생산의 0.5%만을 대학교육에 투자한다. 이는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산티아고 대학교 언론학과를 졸업한 학생이 언론사에 취업하면 20년 동안 총수입의 28%를 대출받은 등록금으로 갚아야 할 정도로 등록금이 비싸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1990) /위키피디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1990) /위키피디아

 

1988년 집권 연장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지지하는 모든 정당들의 집합체인 콘세르타시온’(Concertacion 일치, 협의체제)이 공식 출범한다. 민주주의라는 단일한 깃발 아래 기독교민주당, 사회당, 급진당 등 17개 정당이 모였고, 그해 치러진 105일 국민투표에서 칠레 사람들은 찬성 43%, 반대 54%로 피노체트 독재를 권좌에서 끌어내린다. 이듬해 198912월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파트리시오 아일윈 후보가 당선되면서 피노체트의 독재는 종언을 고한다.

 

199810월 스페인 사법 당국이 피노체트의 재임 기간에 스페인인이 살해된 것과 관련해 발부한 영장의 효력으로 영국 런던에서 전격 체포된다. 20003월 영국에서의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피노체트는 2002년 종신 상원의원직에서 물러난다. 수많은 단체로부터 인권유린 혐의로 기소된 피노체트는 재판정을 피하기 위해 치매나 골절, 기관지염 등 다양한 질병을 내세운다. 하지만 2004년 피노체트의 미국 내 비밀계좌가 폭로되고 같은 해 칠레 법원은 피노체트를 인권유린 혐의로 전격 기소하며 가택연금과 석방을 반복한다.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이 박탈되고 그의 부인과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은 탈세 공모 혐의로 체포된다. 91세 생일을 맞은 지 얼마 안 돼 사망한다.

 

산티아고에는 가난과 불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내렸다.

피노체트 집권기 칠레 경제는 라틴아메리카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웃돌았으며 시장주의는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대담하게 시장 개방을 추진하여 세계 최대의 경제영토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심각한 빈부격차를 낳았다. 지니계수는 약 0.5로 소득불평등이 극단적으로 높으며 OECD국가 중 가장 높다. 상위 10%는 하위 10% 보다 8.5배의 부를 가져 OECD국가 평균 4.3배 보다 거의 두 배정도다. 빈부격차와 공공부문에 대한 지출 축소, 각종 복지정책의 후퇴와 과도한 교육비, 의료비 부담 등이 쌓여 지금의 대규모 시위로 진행되게 된다.

칠레의 현 상황은 콘세르타시온이 피노체트이후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발전시켰으나, 신자유주의원칙에 동조한 나머지 시장근본주의로부터 소외된 시민들의 주장과는 괴리가 발생한다. 전면적인 국가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콘세르타시온의 가능한 것의 정치, 작은 개선의 정치 그리고 주어진 조건 내에서의 정치와의 대결이 칠레를 재탄생시키는 추동력으로 작용할 지가 관건이다.

 

머지않아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리고 이 길로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걸어갈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을 끝으로 산티아고에는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정치안정화를 통한 남미의 스위스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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