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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시대
코크스 활용으로 철 용융시켜…강철 제조 노력으로 오늘날 철구조물 가능
새로운 철기시대 연 다비와 베세머의 공법
2019. 12. 09 by 김현민 기자

 

금속마다 녹아서 액체가 되는 온도가 다르다. 이를 용융점(溶融點, melting point)이라고 한다. 납은 600°C, 1,234°C, 1,337°C, 구리 1,357°C. 이에 비해 철은 1,811°, 다른 금속에 비해 용융점이 높다.

인류가 처음으로 철()을 사용한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隕石)이라고 한다. 그후 순도 높은 철광석을 녹여 가공하면서 철기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인류가 오랫동안 철을 사용하면서 철을 녹이는 온도(용융점)까지 열을 가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고직 몇백년에 불과하다. 목재에서 숯을 만들어 통풍구로 바람을 불어 넣어 은과 금, 구리를 녹여내는 온도까지는 체득했지만, 철광석을 녹여 액화하는데 필요한 1,800도 이상의 열을 얻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하기 위해 연료로 목재를 썼다. 하지만 숲이 줄어들면서 목재 가격이 상승하고 목재의 열에너지가 철광석을 녹이지 못한다는 단점이 제철업자들을 괴롭혔다. 물렁물렁한 상태에서 숱하게 망치질하고 담금질하는 초보적 단계에서 한단계 더 진화하려면 높은 온도를 얻어야 하고, 강철을 만들어내야 했다.

 

에이브러햄 다비의 코크스 제철소가 콜브룩데일 철강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에이브러햄 다비의 코크스 제철소가 콜브룩데일 철강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철을 용융시키는 방법은 1708년 영국의 콜브룩데일(Coalbrookdale)이라는 곳에서 에이브러햄 다비(Abraham Darby, 1678~1717)에 의해 개발됐다.

콜브룩데일은 석탄산지였다. 그곳에서는 석탄의 불순물을 녹여내 점결탄(coking coal)을 만들어 맥주 공장에 썼다. 점결탄은 자연상태에서도 만들어 진다. 점결탄은 소금 제조에도 사용되었는데, 맥주 가공에 사용하면 냄새가 고약하다.

다비는 그곳에서 조그마한 공장을 차려 맥주 원료인 맥아(麥芽) 제분사업을 하다가 구리 제조와 제철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제철 과정에서 오늘날 코크스(cokes)라 불리는 점결탄을 용광로에 넣어 철을 녹여 보았다. 코크스는 높은 온도를 내기 때문에 철을 용융시킬수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가 맥아 제분업을 하면서 점결탄을 사용해본 경험을 활용해 철 제련과정에 고농도의 석탄 결정체를 사용는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불운하게도 그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특허도 내지 않았다. 그의 코크스 사용법은 구전으로 전해져 50년 후에 제철업자들에 의해 기념비적인 기술임이 인정된다.

 

헨리 코트의 연철법 공정 /위키피디아
헨리 코트의 연철법 공정 /위키피디아

 

코크스를 연로로 한 제철은 콜브룩데일에서 이용되고 있었지만, 서서히 제철업자들 사이에 대중화되고 있었다.

헨리 코트(Henry Cort, 1740~1800)는 해외에서 철을 수입하는 무역상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은 목재 가격이 싼 러시아와 스웨덴에서 철강재를 수입해 왔다. 헨리 코트는 철을 수입해 해군에 납품하면서 영국산 철의 취약성을 관찰하게 되었다.

1775년 무역대리점 사업을 포기하고 포츠머스 항의 폰틀레이에 제철공장을 건설하고, 그는 선철을 연철로 만들 것을 시도했다. 그는 국내에서 질이 좋은 철이 만들어져 내수로 활용한다면 막대한 이윤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전까지 철광석이 용광로에서 용해되면 모래 고랑으로 배송되어 곁가지 고랑으로 이동하면서 선철(무쇠)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었다. 그 설비가 아기돼지에게 젖을 먹이는 암퇘지의 모습과 닮았다 해서 선철을 ‘pig iron’이라 불렀다.

그는 1784, 그는 퍼들 로(puddling furnace)라고 불리는 일종의 반사로(反射爐)를 발명했다. 이 공정은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모래 고랑으로 보내지 않고 큰 철 탱크에 모아 반죽 형태로 서서히 냉각시키는 방식이었다. 그후에 쇠 반죽을 저으면 푸른 불꽃을 내면서 황이 배출되고 무쇠보다 강한 연철(wrought iron)이 만들어졌다. 퍼들 로에서 빠져나온 쇳덩어리를 증기압연기로 압력을 가하면 불순물이 빠져 나가고 조강(條鋼)이 만들어졌다. 이 덩어리를 수요업체가 가져가 필요한 물건을 만들게 된다.

연료는 석탄을 사용했다. 헨리 코트의 새 철강법은 성공했다. 퍼들 제철법에 의한 조강은 수요가 증가해 연철을 풍부하게 생산했다.

그러나 코트는 특허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 경쟁자들이 첩자를 보내 설계도를 훔쳐 간데다 자금을 댄 친척이 자금유용 문제에 휘말리면서 특허권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코트의 퍼들 제철법은 영국의 제철기술을 혁신했고, 연철과 압연기라는 개념은 후에 베세머 공법 개발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된다.

 

1847년 디 브리지 붕괴사고 그림 /위키피디아
1847년 디 브리지 붕괴사고 그림 /위키피디아

 

그런데 헨리 코트의 제철법으로 만든 연철도 물렀다. 1825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스톡턴-달링턴 구간에 철도가 건설되면서 철도 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사고도 잦았다. 1847년 선철(銑鐵)로 만든 디 브리지(Dee Bridge)가 기차 하중에 무너져 인명피해가 났다. 1860년에는 우턴 브리지(Wootton bridge)와 불 브리지(Bull bridge)가 무너졌다. 둘 다 무쇠로 만든 다리였는데 하중을 버티지 못했다.

강한 철강재를 만들지 못하는 한 철도는 무용지물이 될 형국이었다. 이 무렵인 18568월 헨리 베세머(Henry Bessemer, 1813~1898)가 영국학술협회에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는 자신이 최근 발견한 제철기술이 실려 있었다. 용해된 선철에 공기를 불어 넣으면 지금까지 발견한 어떤 철강재보다 강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논문을 제출한후 곧바로 더 타임스(The Times)는 그의 논문을 요약해서 실었다. 영국의 제철업자들이 서로 그 논문을 받아갔다. 웨일즈의 오래된 제철소 다우레이사(Dowlais Co.)는 특허를 사갔고, 곧이어 수많은 제철업자들이 베세머 공법의 특허를 인정했다.

하지만 제철소에서 그의 공법 실험은 실패했다. 논문대로 철강을 생산했지만 강철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베세머는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헨리 베세머의 전로 공정도 /위키피디아
헨리 베세머의 전로 공정도 /위키피디아

 

많은 욕을 얻어먹었지만, 베세머는 자신의 견해가 틀리지 않았다고 고집했다. 그는 자신의 공정을 완성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다. 그는 2년간의 연구 끝에 철광석에 함유된 인(, Phosphorus) 성분이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실험에 착수했을 때 철의 함량이 높은 스웨덴 철광석을 사용했는데, 영국산 철광석에는 인의 함유량이 높았다. 베세머의 결점을 로버트 머셰트(Robert Forester Mushet)라는 제철사업가가 해결해 주었다. 망간을 조금 넣으면 인으로 인한 결함을 개선시킬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베세머는 제철업계의 공인을 받지 못했다. 한번 속은 사람들이 더 이상 베세머에게 속지 않으려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공장을 만들어 경쟁사보다 3분의1 낮은 가격으로 강철을 생산했지만, 아무도 그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특히 녹은 철에 공기를 투입하는 방식은 위험하기도 했다. 베세머가 자신의 공장에서 생산한 강철도 공기 투입이 균일하지 못해 때로 무르거나 금이 간 부분이 나오기도 했다.

 

헨리 베세머의 전로 /위키피디아
헨리 베세머의 전로 /위키피디아

 

베세머 공법이 정착되는데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후에도 많은 기술자들이 강철 제조에 도전했다. 1866년 독일의 카를 빌헬름 폰 지멘스(Karl Wilhelm von Siemens, 1823~1883)와 피에르 에밀 마르탱(Pierre Emile Martin, 1824~1915)이 평로 제강법(open-hearth process)을 발명했다. 곧이어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 1778~1829)가 탄소 아크(arc)를 이용하여 전기로 제강법(electric furnace method)을 개발했고, 1899년 에루 식 아크 전기로(Héroult electric arc furnace)가 폴 루이 투생 에루(Paul Louis Toussaint Héroult, 1863~1914)에 의해 개발되었다.

 

철 제련공학은 급속하게 진보했고, 아직도 개선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도시의 거대한 마천루, 교량, 대형선박, 철도, 지하철도 강철재가 없으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다비의 코크스 제련법은 당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고, 베세머 공법도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았다. 하지만 다비와 베세머의 기술이 축적되면서 오늘날의 강철이 만들어진 것이다.

강철을 만들려는 끊임 없는 노력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가속화했다. 또 그 강철과 증기동력을 결합한 선박이 동양의 제국 청()나라를 굴복시켰으며, 대량살상용 기관총 개발로 이어져 19세기 제국주의 광풍을 몰고 온다.

역사가들은 청동기 다음 시기를 철기시대로 분류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철기시대는 산업혁명으로 시작된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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