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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손길승, 김영삼-최종현 만남에서 포기 설득…선경, 차기 노리며 반납
6공 이동통신선정 논란④…선경의 포기
2019. 12. 25 by 김현민 기자

 

송언종 체신부 장관이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경을 최종선정했다고 발표한 직후인 19928월 중순의 어느날. 최형우(崔泂佑) 의원과 손길승(孫吉丞) 대한텔레콤 사장이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최 의원은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의 오른팔 격이었고, 손 사장은 선경그룹이 21세기주력사업으로 야심찬 의욕을 보이고 있는 이통통신회사의 대표이자 선경의 그룹경영기획실장이었다. 이들은 각각 김 대표 진영과 선경그룹의 실력자들이었다.

최 의원은 최종현 회장이 선경의 이동통신사업권을 반납해 주면 사태가 쉽게 풀릴 것이라며 이동통신을 둘러싼 정치 논쟁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최 의원은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 선경의 최 회장 사이에 교량역할을 자처하고 나온 것이다. 손 사장은 이날 회동에서 오간 얘기를 최 회장에게 보고했다.

선경측은 이에 대해 당시 최 의원은 손 사장에게 사업권을 반납하도록 최 회장을 설득해달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최 의원과 손 사장의 회동이 있은 후인 824, 서울 하얏트호텔. 김영삼 대표와 최종현 회장 극비리에 단독 면담을 가졌다. 김 대표는 최 회장에게 2통사업의 포기를 정식으로 요구했다. 선경 측에 따르면 이날 김 대표는 앉자마자 최 회장, 이유야 어떻든 나는 꼭 대통령이 되고 싶소. 국민들이 저렇게 반대하니 날 좀 도와주시오.”라고 요청했고, 최 회장은 직접적으로 사업포기의사를 밝이지 않았으나 선경과 선경가족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고 완곡하게 포기할 때의 어려움을 말했다고 한다. 이날 최 회장은 김 대표와 만난 뒤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바로 워커힐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갔다. 최 회장은 이날 내내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정정당당하게 따낸 이동통신을 고집할 것인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여론에 따라 사업을 반납할 것인가.

 

김 대표가 최 회장을 만나던 날, 청와대 김중권 정무수석은 선경의 반납 명분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고, 반납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 오늘 저녁 노 대통령과 김 대표, 김종필, 박태준 최고위원의 4자회동을 통해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희망하고, 또 그렇게 끝날 것 같다고 말해 막후 대화에서 의견이 접근되어 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날 오후 630분 청와대. 김 대표는 사업의 추진에 있어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해달라며 그동안의 발언에 관한 오해가 있었음을 사과했다. 노 대통령은 나에게 맡겨 달라며 수습의 실마리를 풀어 나갔다. 회담이 끝난 후 김 정무수석은 두 분 사이의 오해는 완전히 씻겼으며, 두 분의 신뢰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825일 노대통령은 예정대로 민자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이틀후인 28일 김 대표가 총재에 취임한다.

이 무렵 선경측은 최 회장의 의중에 따라 제2이통사업권 반납 방침을 굳혔으나 마땅한 반납 방법과 사후대책을 고민하고 있었다. 사업권 반납만 선언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정치권의 단순한 생각과는 달리 선경으로서는 반납하더라도 새로운 문제에 봉착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우선 선경이나 최 회장은 사업권반납을 선언할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사업주체는 유공을 비롯한 대한텔레콤 참여업체 16개사이기 때문에 선경이 선언한다 해도 다른 회사들이 원인무효라고 법적으로 대응할 경우 빠져나갈 구멍이 없고 대한텔레콤 자체가 아직 법적 구성이나 이사회 구성을 하지않은데다 상법상 권한과 법적 대표권이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16개 참여업체 전원합의에 의한 사업권반납이 이상적이지만 어려울 것이 당연했고, 선정권자인 체신부가 선정무효 및 보류를 결정해 주었으면 하는 게 선경 측의 바램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최 회장을 제외한 선경의 대부분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반납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사장단 회의에서도 최 회장 앞에서 절대로 반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서슴없이 나왔다. 이동통신사업에 관여했던 선경의 한 간부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회장이 대통령과 사돈이면 사돈이지 왜 선경이 사업을 반납하느냐, 회장이 선경을 떠나면 되지 않느냐는 등의 불만이 직원들 사이에서 노골적으로 제기됐어요. 체신부도 그 정도 비난을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왜 사업에 참여했느냐며 질타했지요.”

 

19928월 하순은 선경의 최종현 회장에겐 그 어느 때보다 괴로운 시기였다. 선경이 공정한 경쟁과 절차를 겉쳐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정치권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당해야 했다.

사업자선정후 4일째인 824일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로부터 사업권반납을 권유받은 이후 공식석상은 피해온 최 회장은 학계에 있는 미국 시카고대학 동문을 두루 만나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를 물어보았다. 동문 중 일부는 정정당당하게 따낸 만큼 사업권을 반납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했지만 대체로 자진반납을 권했다. 비록 정치권의 직간접 압력이 좁혀오고는 있지만 최 회장이 고집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는 악화된 여론은 물론 사돈인 노태우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 사업권 자진반납을 결심하게 된다.

사업자선정 일주일만인 827, 최회장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그동안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을 발표했다. “선경의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으로 사회적 물의가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권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나 선경이 정보통신사업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그날로 대한텔레콤의 손길승 사장은 체신부를 찾아가 포기각서를 제출했다.

 

선경의 자진반납으로 사태가 마무리되자 그동안 국책사업이 정치논리에 밀려서는 안 된다며 강행을 건의해왔던 청와대 비서실과 체신부등 정부 부처는 허탈감에 빠졌다. 그리고 정치권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렸다.

정부가 정해진 절차를 거쳐 선정작업을 마쳤고 더구나 최고통치권자가 강력히 뒷바침하는데도 어이없게 번복되니, 이것이야말로 공권력 부재가 아닙니까. 정치란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것아닙니까. 공장 하나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자들이 행정을 뭘 안다고 그럽니까.”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고 법률에 의한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신시장 개방에 대비, 빨리 서둘렀고 엄정하게 했으나 근거도 없는 불신의 파고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죠. 야당의 타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의혹과 불신의 눈으로 보았으니, 국민들이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질 않습니까.”

이는 당시 정부부처의 관리들의 입에서 나왔던 말들이다. 관료들이 눈에 비친 당시의 상황은 충분히 흥분할만 했다. 사실 이동통신 자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누가 하든 간에 정부가 과감히 지원해야 할 국책사업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필요성을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제2이동통신을 둘러싼 해프닝은 한 국가의 행정절차 면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이동통신사업자선정작업을 맡았던 체신부고위층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대학교수와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충남 도고에 있는 통신사 휴양소에서 평가작업을 했는데, 우리(체신부측)가 행여 말이라도 붙이면 참견말라고 했어요. 당시 심사위원들은 지금도 그때의 선정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선정에 일말의 의혹이 있었다면 체신부관리들이 새 정부가 들어선후 제대로 살아날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당시의 실무진이 개혁을 부르짖는 새 정부에 들어와서도 모두 온전하고 윤동윤(尹東潤) 차관이 새 정부에서 장관까지 하는 것을 봐도 의혹인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동통신문제는 결코 경제문제가 아닌 정치적 사건이었다. 집권 여당의 후계자라고 할수 있는 대통령 후보의 문제제기에 의해 정치적으로 뒤집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문제에 관한한 노 대통령과 선경의 최 회장은 정치권에서 문제제기한 사돈 사이를 이용해서 서로 어떤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 1992년의 제2이통사업자 선정이 체신부의 주장대로 공정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보기에는 의혹을 갖기에는 맞아떨어지는 주제였고 상황배경도 그러했다. 선경의 최회장은 6공기간 선경그룹 회장으로서가 아닌 사돈으로서 대통령에게 경제적인 이슈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건의했고 중요한 몇가지는 관철시키기도 했다.

최 회장의 사업권반납은 선경그룹내부에서도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직원들은 대통령은 물통령, 회장은 물회장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98일 최 회장은 사업권반납당시 기자회견에서 천명한대로 이동통신사업의 재도전을 공식선언했다. 그는 그룹 임직원에게 새로운 각오와 패기로 세계일류 종합정보통신기업 대비해야라는 제하의 문건을 보냈다. 최회장은 그 문건을 통해 사업권반납결정이 선경의 경영이념과 사업취지에 어긋난다는 판단에서 이뤄졌으며, 2천년대 세계일류 종합정보통신기업으로 성장하려는 그룹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재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는 반납이후 허탈해 하는 그룹 임직원을 달래는 대내용 호소문의 성격을 띠었지만 글귀의 내용 면면에는 반드시 사업권을 되찾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이때 차기 대통령후보와 최회장간에 묵계가 있었다느니,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다음 정권에서 선경이 사업권을 내락받았다느니 하는 풍문이 시중에 떠돌았다. 선경측은 사업권 반납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를 소문으로 엄청난 이미지 훼손을 당해야 했다.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잡음은 정부의 대외공신력을 떨어뜨렸다. 구미기업의 시각으로 볼때 한국정부의 정책발표는 언제든지 뒤집어질 위험이 있었고 한국정부 또는 기업과의 합작투자에 대해 불신의 눈으로 볼수밖에 없었다.

단적인 예로 이동통신파문으로 국내가 시끄러울 때 베트남 동남방에 위치한 빅베어 해저유전개발계획의 한국기업 입찰참여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해저유전은 매장량 8백억 배럴로 20세기에 개발된 유전중 단일규모로는 세계최대였다. 유개공, 쌍용, 현대, 삼성, 럭키금성, 대성, 대우, 삼환등 8개기업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입찰에 참여했다. 그런데 베트남 정부는 한국정부를 믿을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 정원식 총리가 베트남의 반 키에트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협조요청을 해야 했다.

 

아무리 실무자들이 공정한 선정이고 특혜는 없었다고 강변해도 임기를 앞둔 대통령이 사돈기업에게 이권을 넘겨주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안 는다는 정치권의 주장에는 당할 수 없었다. 그 무렵 TV에서는 사랑이 뭐길래라는 주말연속극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었다. 국민정서가 뭐길래, 선경의 최 회장은 참여사와 임직원들의 반발을 사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다 따놓은 이동통신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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