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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시대

두 계급이 힘을 합쳐 앙시앙 레짐에 대항…부르조아 집권후 노동계급 탄압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갈라진 1848년 혁명

2020. 01. 07 by 김현민 기자

1848년 2월 21일,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저 유명한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을 발표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이 연합하여 이 유령을 잡기 위한 성스러운 몰이 사냥에 나섰다.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경찰들이….”

아니나 다를까, 그해 유럽은 어떤 유령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 유령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장한 공산주의 유령은 아니었다. 자유주의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보수반동 질서에 저항하는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역사가들, 사회학자들은 이 해의 혁명운동을 부르조아지 혁명(bourgeois revolutions)이라 규정한다.

1848년, 유럽은 혁명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프랑스에선 2월 혁명으로 마르크스가 언급한 프랑수와 기조(François Guizot) 재상이 실각하고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오스트리아에선 메테르니히(Klemens Wenzel Lothar Fürst von Metternich)가 실각해 영국으로 도망갔다. 독일 프로이센에서도 3월 혁명이 일어나 근대적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고,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 제국과 부르봉 왕조에 대한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이 해의 혁명운동은 전세계 50여개국으로 확산되었다.

이 모든 사건이 서로 연계를 하거나 조직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각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귀족과 시민계급, 노동자계급이 봉기를 일으켰다. 죽은 사람만 수만명이 된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지적처럼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며 지배권력에 저항한 것이다. 역사가들은 이를 ‘1848년 혁명’(Revolutions of 1848) 또는 ‘인민의 봄’(Springtime of the Peoples), ‘혁명의 해’(Year of Revolution)라고 다양하게 규정하면서 그 원인을 규명해 왔다.

가장 먼저 혁명운동이 발발한 곳은 1848년 1월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시칠리아 섬이 나폴리 왕국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부르봉 왕가를 축출했으며, 교황령에서 재상 로시가 암살당했다. 교황은 도피했다가 이듬해 프랑스 군대와 함께 돌아왔다.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와 베니스가 오스트리아의 지배 세력에 맞서 싸웠다. 사르데냐 공국의 카를로 알베르토는 이를 지원하지만 오스트리아 군대에게 패한다.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의 움직임은 20년후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서막이 된다.

그해 2월 22일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무능한 정부는 물러나라, 우리에게 빵을 달라, 선거권을 확대하라”고 외치면서 거리로 뛰어 나왔다. 재상 기조(Guizot)는 다음날 물러나고, 26일 자유주의자들은 왕정을 폐지하고 혁명정부를 세웠다. 루이 필립 국왕이 물러나고 제2공화정이 수립되었다.

프랑스 2월 혁명은 전 유럽으로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3월에는 전 유럽이 혁명의 불길에 휩싸였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의회와 왕궁이 습격당했고, 나폴레옹 전쟁 직후 빈 체제를 주도하던 메테르니히가 쫓겨났다.

불길은 독일로 번졌다. 독일의 정치적 통일과 의회제를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바이에른에서는 영주가 학생들의 봉기로 쫓겨났고, 프로이센 국왕은 입헌제 정부 수립을 약속했다. 550명의 지방 대표로 구성된 독일 의회는 1849년 3월 프랑크푸르트에 모여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을 독일 연방의 황제에 즉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덴마크에서도 1월에 국왕이 죽자 자유주의자들과 농민이 봉기를 일으켜 입헌군주제를 요구했다. 새 국왕 프레데릭 6세는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신헌법을 제정하고 권력을 의회와 나눠가질 것을 약속했다.

덴마크령이던 독일 북부 슐레비히(Schleswig)에서도 독일 민족주의가 등장해 덴마크 왕정에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헝가리 부다와 페스트에서도 합스부르크 왕가에 저항하는 자유주의 혁명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비조직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유럽의 혁명운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프랑스에선 새로 구성된 정부가 파리에 다시 바리케이드를 치고 2월 혁명 때 함께 싸웠던 시위대들에게 총을 겨눴다.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을 줄이고, 실업자 구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 공화국 정부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권력을 잡은 사람은 부르조아들이었고, 그들은 온건한 공화정을 원했다. 노동자들은 다시 무기를 들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지만, 부르조아 정부는 질서와 안정을 내세우며 봉기군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체포되었으며, 체포된 사람들은 알제리로 추방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 황제는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북부 이탈리아도 다시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떨어졌다. 헝가리와 보헤미아(체코)에서도 합스부르크의 반동적 탄압이 전개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능란한 정치적 술수를 발휘해 프로이센 국왕이 독일 황제에 즉위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유럽은 다시 프랑스를 제외하고 다시 복고정치로 돌아갔다.

영국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1838~1848년에 걸쳐 온건한 차티스트 노동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의회정치가 정착하는 바람에 유럽 대륙에서처럼 혁명적 운동이 차단되었다. 영국은 민주화를 통해 급격한 혁명운동의 기운을 서서히 빼나가면서 1848년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낼수 있었다.

1848년에 유럽에서 동시다발적인 혁명운동이 일어난 경제적 배경은 무엇일까.

앞서 1845~46년에 유럽에 대기근이 발생했다. 이상기후로 감자와 토마토에 뿌리가 마르는 병이 확산되는 바람에 대흉년이 들었다. 2013년에 실시된 DNA 실험조사에서 1845~46년에 유럽 각국의 감자 생산이 절반으로 줄었고, 라이보리, 밀 등도 흉년을 기록했다. 아일랜드에선 1백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벨기에와 프로이센에서도 4만~5만명이 기아로 죽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극심한 흉년은 아메리카 신대륙으로의 이민을 자극했고, 남아 있는 농민들의 불만은 높아 갔다.

도시 노동자들의 삶도 비참하고 곤궁했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경제가 성장했지만, 그 부는 부르조아들이 독차지하고, 노동대중의 상황은 악화되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Das Kapital)에서 정의했듯이 자본의 무한축적이 진행되면서 소수의 손에 부가 집중되었다.

이런 가운데 1847년에는 공황이 발생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1만명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해고되었고, 독일 함부르크에선 128개 공장이 파산했다. 경제적 쇼크는 모두 절대왕정의 탓으로 돌려졌다.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자본주의적 공장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노동자들도 급팽창했다. 하지만 도시 노동자들의 구매력은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악화되는 노동조건에 불만을 터트렸다. 노동자 시위는 이미 1831년과 1834년 프랑스 리옹, 1844년 프라하에서 일어났다.

1848년 혁명은 인류역사에 전무후무한 동시 혁명이었다. 이 해의 혁명은 또 부르조아지 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함께 투쟁에 나섰다가 부르조아지가 정권을 장악하고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소외된 혁명이기도 하다. 좌파들은 이 혁명을 실패한 혁명으로 규정했다.

부르조아지들은 혁명 초기에 동참했다가 보수주의와 반동으로 돌아섰다. 2월 혁명에 나선 프랑스 부르조아지들은 4월 선거에서 승리했다. 당선이 확실할 것 같았던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낙선했다. 부르조아지들은 곧이어 6월에 일어난 노동자 운동을 진압했다. 자산가 계급은 권력을 잡은 뒤에 자유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이 위험스러운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의 혁명이 필요 없었다. 자산가 계급은 노동자 계급을 공존할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은 자산가 계급의 보수반동에 불만을 품고 영구혁명론을 외쳤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848년 혁명은 또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민족주의 개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곧이어 독일 통일, 이탈리아 통일이 이뤄지면서 유럽은 영국, 프랑스 중심에서 다극화체제로 전환된다.

1848년 혁명이 끝나고 자본주의 체제는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1850년대에 들어 영국의 면제품 수출물량은 2배로 증가했다. 프로이센에서는 주식회사가 급격히 증가했다. 유럽은 호황기를 맞았다. 같은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금맥이 터지고, 곧이어 호주에서 금광이 연이어 발견되었다. 자본주의는 금광의 꿈처럼 새로운 이상세계를 꿈꾸게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추종자들은 번영하는 자본주의에 대항해 이념을 정돈하고 조직 정비에 나선다. 사회주의자들에게 1848년은 혁명의 싹을 본 해였고, 미완의 혁명이 시작된 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