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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독립 인정안해…코소보, 인터폴 가입 실패후 100% 관세로 보복
독립국 코소보가 독립운동을 펼치는 까닭은?
2019. 04. 09 by 아틀라스

 

발칸 반도의 코소보 공화국(Republic of Kosovo)은 유혈사태를 거친후 2008217일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한때 세르비아는 아직도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세르비아내의 자치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코소보는 유엔에 정식 가입하지 못했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세르비아의 주장을 받아들여 코소보의 가입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지난해말 현재 103개국이 독립을 승인했고, 여기에 미국과 서유럽, 한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중국. 러시아 등이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자치주라며, 독립을 인정치 않고 있다.

코소보는 IMF, 세계은행 등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단체에 가입하고, 이슬람 협력기구(Organization of the Islamic Cooperation)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 독립 인정을 받으려는 코소보와 이를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와의 외교전이 지난해말 국제경찰조직인 인터폴에서 벌어졌다.

코트라 베오그라드 무역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11월에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87차 인터폴 총회에서 코소보의 회원국 가입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었다. 투표에서 68개국이 찬성하고, 51개국 반대, 16개국이 기권해,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코소보의 인터폴 가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코소보는 독립선언을 한 이후, 유엔, EU 가입을 추진하며 독립국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인터폴 가입이었다. 코소보의 인터폴 가입을 반대한 16개국 가운데 12개국이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에 동조해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였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는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종교적으로 그리스 정교, 민족적으로 남슬라브계로 코소보 독립에 대해서는 공동의 의식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코소보는 알바니아계 민족으로,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이다.

보스니아는 1995년 평화협정에 의해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보스니아계가 각각 3년 임기의 대통령을 선출하며, 이중 1명의 대통령 위원장을 뽑는데, 현재 대통령 위원장 도디크(Milodar Dodik)는 세르비아계로, 민족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자료: 위키피디아
자료: 위키피디아

 

코소보는 인터폴 가입이 좌절되자 지난해말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코소보는 지난해 11월에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제품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다음달인 12월에 관세율을 100%로 올렸다. 11월에는 외국회사가 세르비아에서 생산한 제품은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12월에는 이 마저 대상에 포함시켰다.

코소보의 라무시 하라디나이(Ramush Haradinaj) 총리는 관세부과가 세르비아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코소보는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할 때까지 100% 관세를 부과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부치치(Aleksandar Vucic) 대통령은 관세를 100% 부과하더라도 코소보를 나라로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긴 싸움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과 유럽, 유엔은 코소보측에 세르비아에 대한 보복관세를 중지하고 대화에 나설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코소보의 반발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코소보와 세르비아의 분쟁은 오랜 역사를 거쳤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인들에게도 정신적 고향이며, 알바니아인들에게도 민족정체성의 상징이다. 중동의 예루살렘과 같은 격이다.

세르비아 민족의 뿌리인 세르비아 왕국이 1217년 건국할 당시 코소보에 중심을 두었고, 1219년 세르비아 정교회의 초대교주가 코소보에 독립교구를 세웠다. 이에 대해 알바니아인들은 슬라브 민족이 코소보에 정착하기 이전에 코소보의 원주민이었으며, 선조가 생활하던 곳이라고 주장한다. 코소보 주민의 90% 이상이 알바니아인이다.

1차 대전중 1941년 유고를 침공한 독일 나치는 코소보를 떼어 알바니아를 보호령으로 지배하던 이탈리아에게 넘겨주었다.

2차 대전후 독립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티토(Josip Broz Tito) 대통령은 1974년 코소보 자치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붕괴 이후, 신 유고 연방의 대통령이 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는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1990년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코소보 의회를 해산했다.

이에 1991년 코소보 국회의원들이 코소보 공화국 독립을 선포했지만, 세르비아가 군대를 보내 코소보 내 알바니아 민족주의 운동을 탄압했다. 밀로셰비치는 코소보 독립군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1998, 코소보에서 인종청소를 단행해 1만명에 달하는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 주민을 살해했다.

미국과 유럽이 NATO 군을 동원해 개입하면서 19996월 밀로셰비치가 나토와 미국의 평화안에 대해 합의하고 이를 유엔안보리가 통과시킴으로써, 신유고연방군은 코소보 내에서 철수했다.

유엔 합의에 따라, 코소보는 일시적으로 유엔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2006년 초 분리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2008217, 독립선언을 했다.

이에 세르비아는 국제사법 재판소에 코소보 독립선언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 자문 의견을 구했으나, 국제사법 재판소는 재판관 10명 찬성, 4명 반대로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적법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코소보 위치 /구글 지도
코소보 위치 /구글 지도

 

세르비아에 대한 코소보의 무역전쟁 도발은 독립을 인정받기 위한 협상책이라는 분석이 많다. 2011년에도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자국 경유 수출로를 봉쇄해 세르비아를 협상테이블에 올린 바 있다. 현지 언론들은 코소보가 독립을 인정받을 유의미한 협상결과를 이어낼 때까지 100% 관세 부과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세르비아계 인구가 많은 코소보 북쪽 지역에서 100% 관세 부과 중단을 외치는 평화시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모두 EU 가입을 목표하고 있으므로,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를 기점으로 물밑 협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트라 베오그라드 무역관은 코소보에 수출할 때 영문으로 ‘Republic of Kosovo’를 기재할 것을 당부했다. 코소보는 영문 이름으로 독립국가임을 명시하지 않을 경우 수입을 거부하기 때문에 세르비아에서 코소보를 지칭 할 때 쓰는 ‘UNMIK/Kosovo’‘Kosovo and Metohija’를 기재할 경우, 수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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