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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공부
킬리만자로 때문에 꺾인 국경선…빅토리아 여왕이 외손주 빌헬름 2세에 선물
영국 여왕이 독일 황제에게 선물한 킬리만자로산
2020. 06. 11 by 김현민 기자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탄자니아와 케냐가 접한 국경이 중간 쯤에 꺾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꺾여진 탄자니아 국경내에 킬리만자로 산(Mount Kilimanjaro)이 있다. 킬리만자로 산은 해발 5,885m로 아프리카 최고봉이며, 세계 최대의 휴화산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아프리카 열대 지방에서 만년설이 덮혀 있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탄자니아와 케냐 국경 /위키피디아
탄자니아와 케냐 국경 /위키피디아

 

그러면 킬리만자로 산은 왜 탄자니아에 속하게 되었을까.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할 때 인종이나 지형을 구분하지 않고 자를 대 직선으로 경계를 삼던 시절에 왜 이곳만은 튀어나오게 금을 그었을까. 사연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부인으로 킬리만자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랍인이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Oman) 사람들이 17세기말 탄자니아의 잔지바르(Zanzibar) 섬을 차지하고 내륙으로 들어가 노예무역을 했다. 아랍인들은 내륙지방에 흰 산을 보았고, 그 산을 대상의 산’(Mount of Caravan)이라고 지었다. 현지 스와힐리족들은 킬리만자로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양인 가운데 이 산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조하네스 레브만(Johannes Rebmann)이라는 독일 선교사였다. 레브만은 1846년 이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아침에 멀리서 하얀 구름에 뒤덮여 있는 산을 발견했다. 현지인들에게 물으니 그곳은 매우 추운 곳이라고 했다.

 

킬리만자로 산 /위키피디아
킬리만자로 산 /위키피디아

 

이 때까지만 해도 동아프리카는 유럽 열강의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후 1871년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고 빌헬름 1세가 황제에 올랐다. 독일은 뒤늦게 식민지 진출에 나서 탄자니아를 독일 식민지로 만들었고, 영국은 케냐를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1885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분할을 협의할 때 영국과 독일은 지도를 놓고 탄자니아와 케냐의 경계를 일직선으로 그었다. 그때 킬리만자로는 케냐에 속해 영국령에 포함되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독일 빌헬름 2세 황제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독일 빌헬름 2세 황제

 

1889년 독일 등반가 한스 마이어(Hans Meyer)가 최초로 킬리만자로 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당시 독일 황제는 빌헬름 2(Wilhelm II)였다. 빌헬름 2세의 어머니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맏딸인 빅토리아 공주(Victoria)였고, 따라서 빌헬름 2세는 영국 여왕의 외손자였다.

빌헬름 2세는 영국이 아프리카에서 두 곳의 설산을 가지고 있는데, 독일은 하나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케냐 산(해발 3,825m)과 킬리만자로 산이 아프리카에선 설산인데 두 곳 모두 영국령이었다. 게다가 독일 등반대가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했으니 그 산은 독일령이 되어야 한다고 빌헬름 2세는 생각했다.

빌헬름 2세는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에게 편지를 보내 킬리만자로를 독일에게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외손주의 청원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에 영국 여왕은 독일황제의 생일 선물로 킬리만자로 산을 주었다.

그후 영국과 독일 외교관들은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선 협상을 다시 벌여 킬리만자로를 탄자니아 영토로 넘겨 주었다.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이후 탄자니아(당시는 탕가니카)는 영국령이 되었으며, 2차 대전 이후 케냐와 탄자니아가 각각 영국에서 독립했다. 두 나라가 독립한 이후에도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맺은 국경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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