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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대량 학살…그레나다에 공산정권들어서자 1983년 미국 침공
카리브해의 소국들④…콜럼버스가 없었다면
2019. 04. 26 by 김현민기자

 

카리브해의 섬나라들이 서양인의 눈에 띤 것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1492년부터 1502년까지 네차례에 걸쳐 아메리카를 항해하면서부터였다. 서양인들 또는 아메리카 대륙의 유럽인 후예들은 콜럼버스를 신대륙의 개척자라고 추앙한다.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는 잔인한 살육자요, 정복자에 불과했다.

14921012일 그가 도착한 곳은 현재의 바하마 제도(Bahamas)의 과나하니 섬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그 섬을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구세주의 섬)이라 칭했다. 그후 콜럼버스는 2, 3, 4차 항해를 떠났고, 1506년 죽을때까지 자기가 발견한 땅을 인도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가 발견한 섬들을 서인도제도(West Indies)라고 한다.

 

콜럼버스 항해 노선 /위키피디아
콜럼버스 항해 노선 /위키피디아

 

하지만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대륙의 발견은 원주민들에겐 재앙의 시작이었다. 서양의 사탄이 몰려온 것이다.

1493년 이뤄진 2차 항해에서 콜럼버스가 다시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보니, 식민지 개척자로 남겨두었던 선원들이 원주민들에게 몰살당해 있었다. 콜럼버스는 분노로 들끓었다. 선원들은 무자비하게 원주민을 약탈하고 강간했다. 원주민들도 저항하며 서양인들을 공격했다.

콜럼버스는 식민지 행정관으로서 스페인인들에게 토지를 분할해 주고 인디언들에게 금 공납과 부역을 명령했다. 그들은 금에 미쳐 있었다. 하지만 컬럼버스가 말한 금은보화가 그곳에 없었다. 선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식민지는 난장판이 되어 갔다.

역사가들은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를 '홀로코스트‘(집단학살)라고 명명했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조직적으로 노예화되고 살해되었다. 수백 명이 유럽으로 팔려갔고 다수는 항해 도중에 죽었다. 나머지 인디언들은 금을 가져오게 하여 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수족을 잘랐다. 실제로 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많은 원주민들은 도망갔고, 스페인인들은 이들을 사냥하듯 죽였다. 원주민들은 저항했지만 스페인의 우월한 무기에 역부족이었다.

유럽에서 옮아온 전염병은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절망 속에서 원주민들은 자식과 함께 집단자살했다. 25만 명에 달하던 타이노 원주민의 수는 2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나머지는 노예화되고 사망률이 높은 대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한지 60년후에 타이노 원주민은 수백 명만이 남았고, 100년 후엔 손에 꼽을 인구만 남았다.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에게 잔혹한 정복자였다.

콜럼버스는 두 번째 항해부터는 서서히 몰락했다. 왕과 여왕은 콜럼버스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15025월 마지막 항해를 떠났다. 동참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콜럼버스는 이 항해에서도 금은보화를 찾지 못하고, 1년 동안 자메이카 해안에 갇혀 고생 하다가 1504년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그는 좌절감과 관절염에 시달리다가 15065215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 왕실에서는 아무도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1983년 10월 그레나다를 침공한 미군 /위키피디아
1983년 10월 그레나다를 침공한 미군 /위키피디아

 

그레나다(Grenada)

1498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 섬에 상륙해 콘셉시온(Concepcion)이라 불렀다. 다른 탐험가들이 이름을 그레나다로 고쳤다. 1650년 프랑스가 식민지로 삼아 원주민들을 학살했다.

영국은 이 섬도 욕심을 내 1763년 파리조약으로 영유권을 획득했다. 그후 프랑스가 다시 빼앗았으나 1783년에 다시 영국에 내주었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들어왔고, 1900년대 중반에 영국은 그레나다의 자치권을 주었다.

1974년에 영연방 일원으로 독립했다.

1979년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인 모리스 비숍(Maurice Bishop)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쿠바와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모리스 비숍은 19831023일 강경파에게 살해당했다. 이틀후인 1025, 미국이 그레나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침공했다. 미국의 공격에 대해 영국, 캐나다, 카리브 국가들이 비난했고, 유엔총회에 미국 비난결의안이 회부되어 10827로 미국이 패했다. 유엔 안보리에서도 11개국이 미국에 반대했으나, 미국이 비토권을 행사했다.

면적은 344로 서울의 절반쯤 되고, 인구는 11만명 정도다. 수도는 세인트조지(St.Georges)이다.

흑인이 84, 혼혈이 13이며, 언어는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 주민의 53가 가톨릭교를 믿으며, 33%가 개신교, 13.8가 성공회를 신봉한다. 주요산업은 농업과 관광업이며 바나나·코코아·사탕수수 등이 생산된다.

입헌군주제의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5년의 상원(13)과 하원(15)으로 구성되어 있다.

섬에는 향기 있는 풀이 많아 향료의 섬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계곡, 온천, 화구호 등이 많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터링바의 축제가 유명하다.

 

바베이도스 의회 건물 /위키피디아
바베이도스 의회 건물 /위키피디아

 

바베이도스(Barbados)

1536년에 포르투갈의 항해가인 페드루 캄푸스(Pedro a Campos)가 이 섬을 발견해 상륙했다. 1625년 영국인 존 파웰(John Powell)이 도착해 1627년에 식민지를 세웠다. 초기에는 담배를 주로 생산했으나, 후에는 사탕수수를 주로 재배했다. 1816년 노예들이 봉기하고, 1834년에는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19661130일 영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다.

영국 여왕을 국가수반으로 하는 입헌군주국으로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며넉은 430, 인구는 27만명 정도. 수도는 브리지타운(Bridgetown)이다. 종족구성은 흑인 80, 아시아 및 혼혈인 6, 백인 4로 되어 있고, 영어가 공용어다. 종교는 성공회 67를 차지하며, 가톨릭교는 4%이다.

석회암으로 이뤄진 삼각형의 작은 섬에 90이상이 평원이다. 설탕산업과 관광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수도 브리지타운엔 17세기에 건설된 유럽풍 도시 모습이 잘 남아 있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팝 가수 리한나(Rihanna)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영국식 의회민주주의가 발달해 있는 안정된 나라로 사탕수수가 서인도제도에서는 최초로 재배되었다.

 

트리니나드 토바고의 석유정제산업 /위키피디아
트리니나드 토바고의 석유정제산업 /위키피디아

 

트리니나드 토바고(Trinidad and Tobago)

카리브해 서인도제도의 소국들 중에서 아시아의 인도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다.

1498년 콜럼버스가 황금의 땅(엘도라도)을 제3차 항해에 나서 발견했으며, 1532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1700년경 스페인의 통치에 항거하다가 멸족당했다. 프랑스인들이 토바고 섬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면서 식민화했다.

1797년 영국의 랠프 아버크롬비(Sir Ralph Abercromby)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트리니나드 섬을 점령했다. 1802년 아미앵 조약에 의해 스페인이 트리니다드 섬을 영국에 할양했고, 1814년 파리 조약에 의해 프랑스가 토바고 섬을 영국에 할양해 두 섬 모두 영국령이 되었다.

1833년에는 트리니다드 섬과 토바고 섬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영국은 1888년부터 두 섬을 통합하여 관리했다.

1950년 독립 운동이 전개되어 1962년 영 연방내 자치국으로 독립했다. 독립당시 의원내각제였지만, 1976년에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이 되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지리상으로 남미와 가깝지만, 문화적으로는 북미로 분류된다.

트리니다드 섬과 토바고 섬은 이 나라의 가장 주된 두 개의 섬이며, 그 밖에 21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베네수엘라의 해안으로 1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면적은 5,128로 제주도의 세배쯤 된다. 절대 다수의 인구가 트리니다드에 산다. 수도는 포트오브스페인(Port of Spain)이다.

정식 국가 명칭은 트리니다드토바고 공화국(Republic of Trinidad and Tobago)이며, 인구는 136만명(2018)으로, 서인도제도에서는 비교적 큰 섬나라다.

이 나라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생산·처리, 관광업 등으로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번영한 국가에 속한다. 캐리비안 카니발로 유명하며 스틸 밴드(Steel band), 칼립소(calypso) 뮤직, 림보춤(limbo) 등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영국이 식민통치할 때 흑인 노예를 해방한 이후 인도인을 많이 데려온 바람에 인도계가 40%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아프리카 흑인 37.5%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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