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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호텔의 어원…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교통사고로 전사
낙동강전선 수호의 주역, 워커 장군 70주기
2020. 11. 22 by 박차영 기자

 

서울 지하철 1호선 도봉역에서 길을 건너면 조그마한 기념비가 있다. 8군 초대사령관으로 부임한 월튼 해리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 중장이 사망한 곳이다. 기념비에는 전사지라고 되어 있다.

19501223, 워커 중장은 이들 샘 S. 워커(Sam Sims Walker) 대위의 은성무공훈장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이 곳에서 대한민국 육군 제6사단 소속 차량과 추돌해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순직했다. 당시 행정구역은 양주군 노해면, 현재는 도봉구 도봉동이다.

올해로 그의 순국 70주년을 맞는다. 그의 시신은 아들에 의해 수습되어 미국 본토로 운구되었다. 이듬해 195112,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대장 계급이 추서되었다.

 

월튼 H. 워커 장군 /위키피디아
월튼 H. 워커 장군 /위키피디아

 

워커 장군은 1889123일 텍사스주 벨턴에서 태어나, 1912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다. 그후 멕시코 베라크루스에 원정에 참여하고 미국-맥시코 간 국경을 순찰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제5보병사단 기관총대대 중대장으로 참전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제3기갑사단장으로서 유럽 전선에 참전했다. 조지 패튼 장군 휘하에서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공훈을 세우고 중장으로 승진했다. 종전 후 제5군 사령관을 거쳐 1948년 주일 8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아들 월튼 S. 워커 /위키
아들 월튼 S. 워커 /위키

 

6·25가 발발하자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명령으로 미8군 사령관으로 713일 한반도에 파견되었다.

그는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면서 방어선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방어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는 낙동강 전선을 시찰하며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며 부하들을 독려하며 낙동강 방어에 성공했다. 그의 무모한 명령에 대해 미국 의회에서 비난이 일었지만, 맥아더 사령관이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라는 말로 워커 중장을 옹호했다.

미군이 증파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워커의 미 8군은 38선을 돌파해 195010월에 압록강에 도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월튼 워커 중장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제8군 사령관직은 매슈 리지웨이 중장이 후임으로 취임했다. 그의 아들 월튼 S. 워커는 6·25 전쟁에서 일선 소총중대장으로 참여했고, 이후 미군 역사상 최연소 대장으로 진급하게 된다. 미 육군 역사상 유일하게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대장에 진급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월튼 워커 장군 전사기념비 /박차영
월튼 워커 장군 전사기념비 /박차영

 

그는 1983년 대한민국 국방부에 의해 6.25 전쟁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4대 명장으로 선정되었다.

후에 미군이 M41 워커 불독(M41 Walker Bulldog)이란 경전차를 개발했는데,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은 워커 장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서울 아차산에 워커힐(Walker Hill)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워커힐 호텔의 어원이 여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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