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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괴물 모비딕에 대한 선장의 처절한 복수심…멜빌 사후에 인기
주목 못 받다가 미국의 상징적 소설이 된 모비딕
2021. 09. 26 by 박차영 기자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Moby-Dick)1851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일부 작가들만 작품을 인정했을 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189172세에 죽을 때 고작 3,200부가 팔렸을 뿐이다.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의 가치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1919년에 부활했다. 미국 작가 칼 반 도렌은 모비딕을 미국 낭만주의의 정점이라고 극찬했다. 레이먼드 위버의 전기 허먼 멜빌: 뱃사람 그리고 신비주의자’(1921)가 출판되면서 멜빌과 모비 딕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로 올라갔다. 이후 멜빌을 단테나 셰익스피어, 밀턴이나 도스토옙스키와 비교해 그의 위대성을 논하기도 했다. 위버는 모비딕을 “19세기 미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소설적 상상력이라고 극찬했다. 이후 모비딕은 대작으로 평가되었고,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몸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의 하나에 꼽히게 되었다.

 

배를 삼키는 모비딕 /위키피디아
배를 삼키는 모비딕 /위키피디아

 

모비딕의 원제는 ‘Moby-Dick; or, The Whale’(모비딕: 또는 고래). 국내에서는 백경(白鯨)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소설의 첫 문장은 나를 이슈마엘이라 불러달라”(Call me Ishmael)고 시작한다. 화자 이슈마엘인 곧 멜빌이다.

이슈마엘은 매사추세츠 뉴베드퍼드로 와 포경선 피쿼드(Pequod)를 타게 되었다. 선장 에이해브(Abab)는 난폭한 흰 고래 모비딕을 잡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지난날 모비딕을 잡으려다가 한쪽 다리를 잘려 버린 쓰라린 원한이 있었다. 에이해브는 모비딕를 복수하기 위해 배의 마스트에 스페인 금화를 못박아 전시하면서, 흰 고래를 발견한 사람에게 이것을 주겠다여 선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은 그에 자극받아 모험을 하게 된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날 모비딕이 나타났다. 나침반이 고장나 버리고 말았다. 선원 하나가 빠져 죽고 흑인 하인이 미쳐 버리고 말았다. 첫째 날에는 배 한 척이 깨져 버렸다. 둘째 날에도 배 한 척이 부숴지고, 에이해브의 의족이 뜯기고 말았다. 셋째 날, 작살로 모비 딕을 찌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에이해브는 작살줄에 온 몸이 친친 감겨 버리고 흰 고래와 함께 깊은 바닷속으로 잠겨 버리고 말았다.

깨진 배는 점점 기울어져 바다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선원 한 명이 위험을 알리러 돛대 끝에 독수리 깃발을 달았지만, 이 신호를 보고 구조하기 위해 달려오는 배는 없었다. 모든 것이 바다에 휩쓸려가고 이슈마엘만이 바다에 표류하다가 구조되어 살아 남는다. 그 이슈마엘의 회고록이 소설의 내용이다.

 

모비딕과 싸우는 에이해브 선장 /위키피디아
모비딕과 싸우는 에이해브 선장 /위키피디아

 

작가 허먼 멜빌은 뉴욕에서 부유한 무역상 집안의 8형제 중의 셋째로 태어나 유년 시절에 부족한 것 없이 보냈다. 13세에 아버지가 파산상태에 이르고 사망한 후에 학교도 중단하고, 은행·상점의 잔심부름, 농장일, 학교 교사 등을 하며 전전했다.

20세에 상선의 선원이 되어 영국의 리버풀까지 항해했고, 다시 22세에 포경선의 선원이 되어 남태평양으로 나갔다가 1844년 군함 수병이 되어 귀국했다. 그동안 바다일과 선원 경험이 그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1846년 포경선에서 탈주해 남태평양의 마르키즈제도의 식인 마을에 살았던 기구한 경험을 그린 타이피족’(Typee, 1846)의 발표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 모비딕은 이이해브 선장이라는 강인한 성격의 인물이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 도전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노 젓는 작은 보트로 고래를 쫓는 에이해브의 복수전을 통해 인간의 복수심을 그려냈다.

 

허먼 멜빌 /위키피디아
허먼 멜빌 /위키피디아

 

소설이 등장한 1850년대는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다.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손에 들어왔고, 그곳에 엄청난 금이 발견되었다. 미국의 자연은 풍부했고, 바다도 수산물의 보고였다. 매사추세츠 앞바다는 세계 최대어장이었다.

소설은 매사추세츠 포경인들의 얘기를 다뤘다. 19세기 매사추세츠 미국의 포경업계는 큰 번영을 구가했다. 미국의 포경선 수는 전 유럽의 포경선 수의 세 배나 되었다.

당시 석유가 등장하기 이전이어서 고래 기름은 타면서 연기를 내지 않고 밝은 불빛을 발했기 때문에 등대와 가로등, 공공건물, 부자집 가정용으로 많이 쓰였다. 고래기름 수요가 급증하면서 포경산업도 팽창했다. 멜빌의 모비딕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당시 미국은 최대 고래잡이 국가였다.

포경선은 한번 출항하면 2년 정도 바다를 떠돌아 다녔기 때문에 중간에 석탄 연료와 식량을 보급받기 위해 항구를 필요로 했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 일본에 포경선과 선원들의 피항지를 요구했다. 그것이 1850년대 페리 제독의 흑선이다. 일본의 개항은 미국 포경업계의 요구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19세기초, 미국 포경업계에 스타벅(Starbuck)이란 가문이 큰 손으로 자리잡았다. 영국에서 건너온 스터벅 후손들(Starbucks)은 대양을 돌며 수많은 고래를 잡아 유명해졌다. 후손 중 한 명은 태평양에서 새로운 섬을 발견해 스타벅 섬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멜빌이 젊어 포경선을 탈 때 스타벅 후손들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소설 모비딕에서 그 가문의 성을 일등항해사에게 붙였다. 스타벅은 가끔 위압적인 에이해브 선장에 도전하는 평화주의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1971330일 미국 시애틀에서 제리 샌프란시스코 대학 출신의 젊은이 3명이 처음으로 커피점을 열었을 때. 그 이름을 모비딕의 주인공에서 따 스타벅스(Starbucks)로 정했다. 로고는 고래잡이들에게 공포의 상징이자 그리스 신화에 바다 귀신으로 나오는 세이렌(sirens)을 귀엽게 포장했다.

오늘날 도시의 거리에 흔하게 만나는 미국의 상징 스타벅스는 멜빌의 모비딕에서 나왔다.

 
스타벅스 로고 /위키피디아
스타벅스 로고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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