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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사랑과 죽음을 번민하는 가슴저린 사연들…무라카미 하루키의 출세작
1960년대말 일본풍 연애소설 ‘노르웨이의 숲’
2022. 07. 04 by 박차영 기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즉는 것, 또다른 이성을 사랑하는 것들이 성적 감수성이 팽창하는 17~20세 사춘기의 고통이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은 성적 성장기에 있는 청춘들의 사랑과 죽음, 이별과 만남을 가슴저리게 터치한 연애소설이다. 작가 자신의 대학시절 경험을 소설로 녹여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소설 속 즉 와타나베 토오루가 같은 연대기를 공유하는 점에서도 작가와 주인공이 오버래핑한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작가가 38세가 되는 1987. 37세가 된 주인공 와타나베는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한 보잉 747기 기내에 흐르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을 듣고 18년전 그 노래에 얽힌 사연을 회상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주인공 는 나오코와 미도리 두 여성을 사랑하던 18년전 대학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나오코는 친구 기즈키의 어릴 적 소꿉친구이며 연인이다. 기즈키가 자살하고 홀로 남은 나오코를 와타나베가 사랑을 하게 된다. 내성적인 성격의 나오코는 20세가 되던 생일날에 마음의 문을 열고 와타나베와 성관계를 맺는다. 그후에도 나오코는 자살한 애인과 언니에 대한 어두운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교토의 깊은 산속에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립대학 연극과에 들어간 와타나베는 같은 수업을 듣는 미도리를 만나게 된다. 미도리는 외향적이고, 자존심이 강하고 발랄한 여자다. 주인공은 나오코를 사랑하면서 미도리에게도 애정을 느끼게 된다. 와타나베에게 이중 연애감정이 교차하는 과정에 나오코와 미도리 두 여성의 삶에 중대한 변화가 온다. 나오코의 정신적 불안정은 점점 악화하고 미도리는 아버지를 잃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위키피디아
무라카미 하루키 /위키피디아

 

소설엔 1960년대말 일본 대학가의 상황이 녹아 있다. 패전의 수렁에서 벗어나면서 대학가는 운동권단체 전공투(全共闘)의 소요에 휘말리고 서구의 자유연애주의가 밀려온다. 일본 젊은이들은 비틀스에 빠지고 미국·유럽의 반전운동과 프리섹스주의에 함몰한다. 패전과 평화, 경제성장이 흘려놓은 자유의 찌꺼기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에도 다가온 것이다.

노르웨이의 숲에는 죽음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관념이 스며들어 있다. 작중 흐름에 다섯명이 죽는다. 그중 넷은 자살이고, 하나는 병사다. 친구 기즈키, 주인공이 사랑한 나오코, 나오코의 친언니, 나가사와 선배의 애인 하쓰미가 스스로 생을 끊는다. 뇌종양으로 사망하는 미도리의 아버지도 내용 전개에 중요한 반전을 만든다.

 

소설의 흐름을 만드는 단초는 기즈키의 자살이다. 그의 죽음은 나오코의 죽음과 연쇄고리를 형성한다.

나오코는 기즈키를 회상한다. “우리는 보통 남녀관계와는 많이 달랐어. 몸의 어떤 부분이 그냥 달라붙은 것 같은 관계였지. 나와 기즈키가 연인 같은 관계가 된 건 정말로 자연스러웠어.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성장해 온 거야. 둘이서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보통 성장기 아이들이 경험하는 성의 중압감이나 자아의 팽창이 가져다 주는 고통 같은 것도 거의 모르는 채 우리는 성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열려 있었고, 자아에 대해서도 서로가 서로를 흡수할수 있었어.” (223~224p, 민음사)

나오코와 기즈키는 일찍부터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었지만 성적 좌절감을 겪게 되었다. 둘 사이엔 마음의 문이 열려 하나가 되었지만, 몸이 열리지 않은 것이다. 몸이 열리지 않으면서 둘 사이의 괴로움은 커진다.

나오코는 돌이켜본다. “아마도 우리 세상에 빚을 갚아야만 했을 테니까.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우리는 지불해야 할 때 대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청구서가 이제 돌아온 거야. 그래서 기즈키는 그런 선택을 했고, 지금 나는 이렇게 되었어. 우리는 무인도에서 자란 벌거벗은 어린아이 같은 존재였어.” (224p)

 

기즈키가 자살한 후 소식이 끊겼던 나오코는 와타나베가 도교의 대학에 들어간 이후 지하철 주오선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아무런 대화 없이 도쿄 거리를 걸었고, 나오코는 20살 생일날, 간단한 피티를 한 후에 와타나베에게 몸을 열었다. 애인에게 열리지 않은 몸이 애인의 친구에게 열린 것이다.

그후 나오코는 잠적한다. 나오코는 친언니의 자살이 겹치는 바람에 정신적 불안정함이 불거져 부모에 의해 강제로 교토 산골에 있는 요양시설 아미료에 격리되었다.

 

나오코에 비해 미도리는 다른 성향의 여자다. 그녀는 와타나베와 포르노 영화를 보기도 했다. 나오코는 무라카미가 대학시절 애인이자 결혼에 이른 요코에게서 유추한 인물이라고 한다. 외향적인 성격, 거침없는 언행 등이 작중 미도리는 부인 요코와 닮았다고 한다.

나오코의 죽음은 와타나베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는 한달간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마음을 정리를 한다.

그런 식으로 그녀의 이미지가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와 내 몸을 기묘한 장소로 밀어갔다. 그 기묘한 장소에서 나는 죽은 자와 함께 살았다. 거기에서는 나오코가 살아서 나와 말을 누누기도 하고 끌어 안기도 했다. 그 장소에서는 죽음이 삶을 정리하는 감정적 요인이 아니었다. 거기에서는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는 죽음을 머금은채 거기서 살아갔다. …… 죽음이란 건 그냥 죽음일 뿐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그것은 분병 진실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452~454p)

 

주인공 와타나베가 나오코와 미도리의 사이에서 고민할 때 해답을 준 사람은 나오코의 요양원 동료인 레이코다. 나오코가 죽은 후 레이코는 요양원에서 하산해 와타나베를 만나 충고했다.

내 충고는 간단해요. 당신이 미도리라는 사람에게 강하게 이끌린다면,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지극히 단연한 일일 거예요. 사랑이란 원래가 그런 거니까. 사랄에 빠지면 거기에 몸을 내밑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죠.”

 

소설엔 와타나베가 관찰자적 관점에서 본 두 여인의 삶이 등장한다. 레이코는 성적 상실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반면에 하쓰미는 사랑을 얻지 못해 결국 생을 끊는다.

레이코는 젊은 시절에는 피아노 신동으로 불릴 만한 천재였는데, 어느 날 손이 굳어 피아노를 못 치게 되었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력이 있다. 피아노 레슨을 받던 여중생이 어느날 레이코를 애무하며 유혹한 적이 있었다. 레이코는 어린 애를 때리고 동성애를 중지시켰는데, 이 여학생이 레이코가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레이코는 억울하게 레즈비언으로 몰려 정신병이 도졌고, 그 결과로 남편하고 이혼하고 딸과도 헤어지게 되었다. 레이코는 나오코와 와타나베와 함께 하며 새로운 생의 의지를 갖게 된다. 레이코는 와타나베를 만나 성관계를 한 후 먼 곳으로 가서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다.

이에 비해 하쓰미는 나가사와 선배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가 어느날 자살한다.

 

책표지(민음사) /네이버책
책표지(민음사) /네이버책

 

무라카미는 와세다대 연극과에 들어갔는데 소설도 와세다대 연극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젊은 시절에 신주쿠에서 레코드 가게를 열고, 재즈 찻집에 드나들다가 요코와 학생신분으로 결혼했다. 후에 위대한 개츠비등 구미 문학을 번역했다. 그의 경험들에 소설에 어떤 형태로든 녹아 있다.

노르웨이의 숲은 무라카미의 출세작이다. 소설은 36개국 이상 국가에서 번역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8'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으나 판매가 부진했고,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어 히트를 쳤다. 무라카미의 인기가 올라가며 원제목을 요구하는 독자들이 늘면서 '노르웨이의 숲'라는 제목을 다시 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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