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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가 부르며 이성계의 역심에 반발, 역모로 처형…원주 변씨의 시조
억울하게 죽은 고려의 충신 변안열
2023. 04. 20 by 박차영 기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변안열 장군은 고려말에 이성계, 최영 장군와 어깨를 겨루며 전공을 날린 장군이다. 다만 그는 이성계의 권력 찬탈에 반발했고, 역모죄로 사형당했다. 정몽주의 단심가는 널리 전해졌지만, 변안열의 불굴가는 최근에야 확인되어 알려지고 있다.

변안열(邊安烈, 1334~1390)은 원나라 만주 중심부였던 선양(瀋陽)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나라 사신으로 따라간 변순의 손자였는데, 변순은 원나라에 머물며 장수가 되었다. 팍스 몽골리아 시대에 고려 사람도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원나라 사람이 고려에 관직을 얻기도 했다. 변안열은 원나라 과거시험에서 무과 장원급제를 했다고 한다.

 

변안열은 선양에 인질로 잡혀 있던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모시고 고려에 들어와 정착했다. 고려에 온 그는 원주 원씨와 혼인하고, 원주 변씨의 시조가 된다. 원주 변씨는 황주 변씨에서 갈라졌다. 황주 변씨는 남송말에 고려로 귀화한 변려(邊呂)인데, 변려의 후손인 변순이라는 사람이 원나라 사신을 따라 원으로 건너가서 장수가 되었고 변순의 손자 변안열이 원주 변씨를 만든 것이다. 변씨는 몇 대를 거쳐 남송, 고려, , 고려로 옮겨가며 종파를 확대시켰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소재 변안렬묘역 /문화재청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소재 변안렬묘역 /문화재청

 

변안열은 용맹한 무장이었다. 1362년 홍건적이 개경까지 쳐들어오자 안우와 함께 홍건적을 격퇴하고 개경을 수복하는 공훈을 세웠다. 1374년엔 최영과 함께 탐라(제주)에서 일어난 목호(牧胡)의 난을 진압하고, 1380년엔 이성계와 함께 지리산 근처 치른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는 전공을 세웠다. 그는 계속되는 승전에 힘입어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에 봉해지고 지위가 판삼사사(判三司事), 영삼사사(領三司社)에 이르렀다. 변안열은 1388년 이성계와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위화도 회군에 동참했다. 여기까지는 이성계와 함께 했다.

 

하지만 이성계의 사심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변안열은 이성계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군사적 정치적 힘이 급성장했다. 이에 변안열은 이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당시 변안열의 사병이 2만명에 이르러 이성계에 대적할 유일한 군벌이었다.

1389년 이성계와 변안열은 갈라졌다. 이성계 생일 연회에서 변안열과 정몽주가 초대되었다. 이성계의 아들 방원은 정몽주와 변안열의 속내를 짚어보기 위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더하리하며 하여가(何如歌)를 불렀다.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라며 단심가(丹心歌)를 불렀다. 변안열은 불굴가를 부르며 자신의 심중을 드러냈다.

가슴에 궁글 둥시러케 /왼ᄉᆞᆺ기를 눈 길게 너슷너슷 ᄭᅩ와 그 궁게 그 ᄉᆞᆺ 너코 /두 놈이 두 긋 마조 자바 이리로 흘근 져리로 흘젹 흘근흘젹 ᄒᆞᆯ 져긔는 /나남즉 ᄂᆞᆷ대되 그는 아모로나 견디려니와 /아마도 님 외오 살라면 그ᄂᆞᆫ 그리 못 ᄒᆞ리라.”

한역으로 변역한 글도 전한다. “穴吾之胸洞如斗 貫以藁索長又長 前牽後引磨且戛 任汝之爲吾不辭 有慾奪吾主 此事吾不屈

변안열은 불굴가를 부르며, 이성계와 그 아들이 구상하는 역성혁명에 반대의 뜻을 명확하게 표시했다. 변안열을 이성계와 등을 돌린 후 자신의 호를 고려에 은혜를 입었다는 의미로 대은(大恩)으로 바꿨다. 변안열은 우왕의 복위를 모의한 김저의 옥사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당했고 한양에 유배된 뒤 이듬해인 1390년 처형되었다.

그가 죽고 2년 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의 여말 3(三隱)이 공히 변안열을 기리는 제문을 썼다. 하지만 그는 조선조가 출판한 고려사에 간신으로 기록되었다. 정몽주가 나중에 누명을 벗고 충신으로 복권한 것과 대조적이다.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원주변씨간재종택 및 간재정 /문화재청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원주변씨간재종택 및 간재정 /문화재청

 

변안열은 남양주 진건읍 용정리에 묻혀 있다. 순절 직후 경기도 양주 주엽산에 묻혔으나 인근에 세조의 광릉이 들어서며 1468년 현재의 위치로 이장되었다. 변안열 묘역은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한편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는 변안열의 후손들이 사는 종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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