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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때 일본·소련·독일군을 돌다 미군 포로가 되었다는 인물…여전히 논란
3개국 군대에 복무했다는 양경종, 실존인물인가
2023. 05. 16 by 김현민 기자

 

조선청년 양경종은 2차대전 기간에 일본 제국군, 소련 적군, 독일 나치군의 세나라 군북을 입고 조선 땅에서 멀리 노르망디까지 전쟁터를 옮겨 다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청년은 미국인들이 쓴 역사 다큐멘터리에 소개되었고, 그 내용이 국내에 전해져 알려지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연철 교수(인제대)한겨레신문 기고문에서 양경종을 끌어내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양경종은 실존인물인가.

발단은 미국의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Stephen E. Ambrose)2차 대전에 참전한 로버트 브루어 미 육군 중위를 인터뷰한 기사에서 시작된다. 브루어는 194466일 노르망디 작전에 참가했는데, 그때 독일군 포로 가운데서 4명의 한국인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양경종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앰브로스는 브루어의 인터뷰 내용을 담아 1994년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한 책(D-Day, June 6, 1944)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양경종은 1938년에 일본군에 입대해 이듬해 몽골 국경에서 벌어진 할한골 전투에 투입되어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으며, 이후 소련 적군에 배치되었다. 양경종은 194112월 모스크바 외곽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했다가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 그후 나치군에이 되어 프랑스로 파병되었고, 노르망디 전투에 참가해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연합군의 포로가 된 아시아계 독일군 병사. 한국인 양경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증거는 없다. /위키피디아
연합군의 포로가 된 아시아계 독일군 병사. 한국인 양경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증거는 없다. /위키피디아

 

노르망디 작전에서 포로로 잡힌 아시아계 독일 병사의 사진이 남아 있다. 미군이 포로를 세워놓고 이름을 적는 장면인데, 당시 미군 기록에는 이름이 적시되어 있질 않았다. 다만 젊은 일본인’(young Japanese)이라 적혀 있다.

이 사진과 앰브로스의 서술이 결합하면서 사진의 주인공이 양경종이라는 미확인 정보가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2004년 국내 도깨비뉴스(DKBNews)가 사진을 곁들여 양경종의 스토리를 소개했다. 이 뉴스의 파급력은 강했다. 식민지 청년이 겪은 믿기 어려운 정보가 사진이란 증거를 갖게 되면서 신뢰를 준 것이다.

스토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양경종은 미국으로 건너가 여생을 보내고 일리노이에서 사망했다는 얘기로 전개되었다. 혹간 한국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란 추측도 있는데, 소설의 완성을 위한 억지로 여겨진다.

 

국내 언론들이 팩트체크에 나섰다. 2005년에 제작·방송된 SBS 스페셜 노르망디의 코리안에서는 당시 조선인 포로 기록, 독소전쟁에 참전한 고려인 기록, 독일군 동방부대 관련 기록을 수소문했는데 그런 사람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양경종의 스토리는 소설과 영화의 재료로는 훌륭하다. 소설로는 장웅진의 노르망디의 조선인’(2005), 조정래의 오 하느님’(2007), 이재익의 이버지의 길’(2011), 김병인의 디데이’(2011)의 소재가 되었고, 강제규 감독의 영화 마이웨이’(2011)의 스토리를 제공했다.

역사학계에서는 양경종의 실존 여부를 놓고 논란이 분분히다. 앤터니 비버(Antony Beevor)는 저서 2차 세계대전에 이 소재를 다루며 사실이라고 했고, 스티븐 잘로가(Steven Zaloga)도 비버의 견해에 동조한다. 하지만 마틴 모건(Martin K. A. Morgan)양경종이 실재했다는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실존인물이 아니다고 단정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Yang Kyoungjong

나무위키, 노르망디의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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