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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
독립과정에서 조지아와 격한 증오심…러시아군 보호로 독립 유지하는 미승인국
인종청소로 인구 절반으로 준 압하지야
2019. 07. 15 by 이인호 기자

 

압하지야(Abkhaziya)는 카프카즈 산맥 서쪽, 흑해 연안의 작은 나라다. 면적은 8,660으로, 전라북도보다 약간 넓다. 인구는 2015년 현재 243천명 정도. 수도는 흑해 연안의 수후미(Sukhumi), 고대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디오스쿠리아스(Dioscurias) 식민도시에서 출발했다. 수흐미 인구는 6만여명으로, 압하지야 인구의 4분의1이 이 도시에 거주한다.

이 작은 나라가 1990년에 조지아(Georgia, 러시아어로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러시아의 군사력이 배경이 되어 독립을 했기 때문에 조지아는 물론 미국·유럽 등 서방진영에서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나라의 독립을 승인한 나라는 유엔 회원국으로 러시아,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나우루, 시리아이며, 같은 처지에 있는 남오세티야, 트란스니스트리아, 아르차흐 등의 미승인국들이다.

국제적으로는 조지아 트빌리시로 망명한 압하지야 자치공화국 정부가 다수의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지만, 러시아 군대가 국경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감히 영토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압하지야의 정부는 소련이 뒷배경이 된 정부이고, 트리빌리시의 정부는 조지아가 미는 망명정부인 것이다.

 

압하지야의 흑해 해변 /위키피디아
압하지야의 흑해 해변 /위키피디아

 

이 나라가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배경은 역사적 뿌리에 근거하고 있다.

압하지야에는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헌법에는 압하지야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으나, 많은 주민들이 러시아를 사용하기 때문에 현지정부는 2004년에 압하지아어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인정했다.

역사적으로 압하지야는 그리스, 로마,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8세기에 압하지야 왕국이 세워졌다. 왕국은 조지아의 중앙부까지 합병하며 번성했다.

이후 오스만 투르크와 러시아의 통치를 받았고, 1917년 러시아 혁명기에 조지아가 독립할 때 조지아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1921년 소련이 조지아를 침공해 조지아를 합병해 조지아 소비에트공화국으로 재편하면서 소련내 조지아공화국의 자치주로 편성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 소련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조지아 공화국이 소련으로부터 이탈하려 하자, 압하지야 민족주의자들은 1990년 조지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압하지야 국기 /위키피디아
압하지야 국기 /위키피디아

 

19914월 조지아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이어 19928월 조지아는 자국내 자치주였던 압하지야의 분리독립을 인정할수 없다며 압하지야를 침공했다.

초기엔 조지아군 3천명이 비무장상태인 압하지야를 손쉽게 장악했다. 조지아군은 압하지야 점령후 곧바로 약탈, 폭행, 살인행위를 저질렀고, 이러한 행동은 카프카즈 산맥에 은신해 있던 소수민족들의 불법무장단체들을 격분시켰다. 이들 무장세력이 압하지야에 들어와 분리주의자와 연대투쟁을 벌이면서 전황은 교착상태가 되었고, 이들이 조지아군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조지아인에 대한 대규모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19927월에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서로의 증오는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압하지야측이 협정을 깨고 조지아인들을 대량학살했다. 2주간 진행된 테러에서 수천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전쟁은 대치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조지아군이 철군하고, 러시아를 비롯한 CIS 군대가 평화유지군으로 투입되면서 서서히 가라앉았다.

당시 조지아인이 압하지야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고, 압하지야인은 인구의 5분의1에 불과했다. 소수인이었던 압하지야인들은 조지아군의 폭압에 대한 보복으로 대대적인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압하지야인들은 자기 경계 내에 살고 있는 조지아인,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기타 소수민족에 대해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다. 조지아인들이 소유하던 2만개 이상의 부동산이 파괴되고, 수백개의 핵교, 유치원, 교회, 병원, 역사기념비들이 훼손되거나 파괴되었다. 대규모 추방이 이뤄져 압하지아 인구는 1989525천명에서 216,000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25만명의 조지아 피난민들이 압하지야 갈리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그중 수만명이 1998년 갈리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면서 다시 추방되었다.

 

조지아 내 압하지야 /위키피디아
조지아 내 압하지야 /위키피디아

 

이 나라는 아직도 치안 상태가 불안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여행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흑해 연안에는 아름다운 해변 관광지가 있어 러시아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통화는 러시아의 러블화를 사용하고 있디/ 2009년 러시아 관광객 수가 100만명에 달했다.

종교는 그리스정교가 주류이며, 소수의 수니파 이슬람들이 있다.

 

압하지야 위치 /위키피디아
압하지야 위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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