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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
아르메니아가 6년 전쟁을 통해 아르제바이잔으로부터 빼앗아 독립시킨 나라
아르메니아의 괴뢰국 아르자흐 공화국
2019. 07. 16 by 이인호 기자

 

카프카스 국가들 가운데 아르메니아(Armenia)와 아르제바이잔(Azerbaijan)은 서로 이웃해 살면서도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은 나라다. 아르메니아에서는 기독교 계통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아르제바이잔에서는 이슬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종적으로도 아르메니아에는 고대 로마시절부터 독자적인 왕국을 이룬 아르메니아 인이 주류인데 비해 아르제바이잔인은 터키와 동족인 투르크 족이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는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인 다대오(Thaddaeus)와 바돌로매(Bartholomew)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고대 아르메니아왕국은 로마제국에 앞서 서기 301년에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다.

 

아르자흐의 마을 풍경 /위키피디아
아르자흐의 마을 풍경 /위키피디아

 

이 두나라 사이에 아르자흐 공화국(Republic of Artsakh)이 있다. 유엔 회원국 가운데 어느 한 나라도 승인해주지 않는 미승인국가다. 다만 같은 처지에 있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와 같은 미승인국들이 동질감을 느껴 국가로 승인하고 있다.

이 나라는 한마디로 아르메니아가 이웃 아제르바이잔에서 빼앗아 수립한 괴뢰국가다. 인종족으로 아르메니아인이 95%를 차지하고 있다.

면적은 11,400, 경기도보다 약간 넓고, 산악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인구는 면적에 극히 적은 15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아르메니아인 인종분포 /위키피디아
아르메니아인 인종분포 /위키피디아

 

역사적으로는 아르메니아 왕국의 땅이었다.

분쟁의 불씨는 1921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게 넘겨주면서 시작되었다. 소련으로서는 역사적 전통이 있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아르메니아를 약화시키고, 이웃 터키와 잘 지내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르메니아 북쪽의 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은 코카서스 지역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아르메니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소련은 이 고원지대를 아르제바이잔 공화국의 자치주로 편성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라고 불렀다.

소련 시절에도 아르메니아 공화국은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지만, 위세에 눌려 그럭저럭 넘어갔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련이 흔들리고 연방내 민족들이 곳곳에서 독립 운동을 벌이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 대표들은 19882월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을 선포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은 자치주를 없애고 그 지역을 직할 통치했다.

이때부터 아르메니아와 아르제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을 놓고 6년 전쟁을 벌였다.

그때 카라바흐 지역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벌어졌다. 아르메니아측은 아르제바이잔이 자행한 것이라 주장했고, 아르제바이잔은 아르메니아계가 폭동을 일으켜 인명피하가 났다고 변명했다.

198912월 아르메니아 소비에트(의회)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합병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련이 해체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련은 공화국의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없었다. 그해 아르메니아인은 자국내 17만명의 아르제바이잔인을, 아르제바이잔은 35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서로 추방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그해 92일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114일 아르제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해 경제 봉쇄를 단행했다. 카르바흐는 19911210일 국민투표를 거쳐 199216일 독립을 선포했다.

19922월 호잘르(Xocalı)시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벌어졌다. 마침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군이 충돌해 전면전으로 확산되었다.

인구로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에 비해 3배나 많고, 바쿠 유전도 확보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병력도 아제르바이잔이 더 많았다.

하지만 전투와 외교에서는 아르메니아가 이겼다. 아르메니아군은 파죽지세로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진입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 내 체첸 반군,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까지 지원을 받았지만, 연이어 전투에서 패했다. 6년 전쟁에서 아르메니아측은 4,592명이 전사했는데 비해 아제르바이잔은 25~3만명이 죽어 나갔다.

1994년 러시아와 프랑스가 중재에 나서 그해 5월 비슈케트 조약을 체결해 전투는 휴전하게 되었다. 그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제바이잔으로부터 독립했다. 아르제바이잔은 영토의 20%를 잃게 된 것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소련시절 면적이 4,400였으나 전쟁 후에 두배 이상 넓은 11,500로 넓어졌다.

 

아르자흐 공화국의 영토변화 /위키피디아
아르자흐 공화국의 영토변화 /위키피디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승인하지 않고, 속국 형태로 방치하고 있다. 정식국가로 승인하면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등도 승인해야 하기 때문에 조지아와의 관계가 악화될 우려가 있고, 더욱이 아르제바이잔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눈치를 보고 있다. 아마도 어치피 통일할 바에야 굳이 국가로 승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러시아도 CIS 회원국인 아르제바이잔을 의식해야 하므로,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에 대해 국가로 승인했지만,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아르자흐(왼쪽)와 아르메니아 국기 /위키피디아
아르자흐(왼쪽)와 아르메니아 국기 /위키피디아

 

1992년에 제정된 국기는 아르메니아와 동일한 삼색을 취했지만, V자 모약의 계단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르메니아 영토에서 분리된 지역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나라는 20172월 국민투표를 통해 국명을 터키어에서 유래한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에서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미승인국이어서 국제적인 경제지원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1인당 GDP6,000달러로 가난하다. 목축업이 주요 산업이다.

 

아르자흐 공화국의 위치 /위키피디아
아르자흐 공화국의 위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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