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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정복고기 귀족사회의 해이와 황금만능주의…고리오와 두 딸 통해 묘사
‘고리오 영감’이 그린 앙시앙레짐의 타락
2023. 07. 14 by 박차영 기자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의 주요 등장인물은 고리오 영감과 외젠 드 라스티냐크, 보트랭이다. 이 세 주인공이 드러내는 욕망의 드라마가 1819년의 일정 시점을 장식한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몰락한지 4년째 되는 해다. 혁명과 전쟁의 격랑에 쫓겨 허겁지겁 외국으로 달아났던 부르봉 왕가와 귀족들이 당당하게 귀국해 권력을 거머쥐었다. 민중의 시샘에 감히 드러내지 못한 귀족들은 전보다 더 사치에 빠졌고, 혁명가들은 숨죽이며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파리 시민의 4분의3이 기초생활도 못 누리던 시절에 귀족들은 부를 독점하고 향락에 빠졌다.

주인공 고리오는 프랑스 혁명의 주체로 부르주아였다. 왕정복고의 반혁명에 사위들이 등을 돌리고 사치풍조에 말려든 두 딸에게 뒷돈을 대주다 재산을 날려버린다. 남부 농촌에서 올라온 20대 청년 라스티냐크는 사교계에 입문해 귀족 여인들의 등을 치는 방법으로 입신출세를 노린다. 강제노역을 하던 탈옥수 보트랭은 허구와 가식의 세계를 꿰뚤어 보는 냉혈한이다. 이 세 주인공이 파리의 빈민가 뇌브생트 주느비에브에 있는 허름한 하숙집에 몰려든다. 하숙집 주인 보케르 아줌마는 돈에 환장한 노예다.

​책 표지(민음사)​
​책 표지(민음사)​

 

발자크는 소설 입구에 이 드라마는 허구도 아니고 꾸며낸 얘기도 아니다. 모든 것이 사실이다.”고 했다. “드라마는 너무도 사실과 일치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한테나 어쩌면 자기 마음 속에서 이 드라마의 요소들을 인정할 게다고도 했다. 작가가 앙시앙 레짐 시기의 귀족사회 타락과 부패를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했음을 드러낸 말이다.

제면공장 직공이었던 고리오는 1789년 대혁명이 일어나자 희생 당한 주인의 자산을 사들인 후 특유의 수완으로 떼돈을 벌었다. 그는 돈의 힘으로 두 딸을 귀족가문에 시집보낼수 있었다. 큰 딸 아나스타지는 레스토 백작과, 둘째딸 델핀은 알사스의 실업가 뉘싱겐 남작과 결혼시켰다. 지참금을 두둑히 보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안통치 시절에 고리오는 사위들의 존경을 받았다. 사위와 그 가족들은 어쩌면 장인의 도움으로 단두대에 끌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폴레옹 시절에도 고리오는 그럭저럭 사위와 사돈의 대우를 받았다. 딸들도 아버지에게 아양을 떨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대서양의 고도로 유배가고 루이 18세가 망명지에서 돌아오고 귀족들이 득세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두 사위는 장인에게 얼굴을 돌렸다. 반동의 시기에 두 딸은 아버지에게 사업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고리오 영감은 사위의 눈치와 딸들의 요구를 받아들어 사업을 정리하고 생활비가 적게 드는 보케르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숙집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시골에서 올라온 법대생 라스티냐크가 있었다. 이 젊은이는 공부를 해서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가기보다는 귀족들과 교제해 상위 계단으로 껑충 뛰어오르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사돈의 팔촌을 뒤져 보니 보세앙 자작부인이 사교계의 터주대감 노릇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라스티냐크는 보세앙 부인을 통해 고리오 영감의 두 딸을 알게 된다.

보트랭은 징역형을 살다가 탈옥해 하숙집에 흘러들었다. 그는 세상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꿰뚫어 보았고, 라스티냐크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발자크는 도형수로 복역하고 출옥후 사설탐정을 하던 실제인물 외젠 프랑수아 비도크(Eugène François Vidocq)를 보트랭의 모델로 삼았다. 작가는 1834년 비도크를 만나 상세한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소설에서 불사신이란 별명을 가진 보트랭은 처세술의 대가였다.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귀족 부인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다니다간 돈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함께 하숙하는 처녀 빅토린과 결혼할 것을 권한다. 이 탈옥수는 빅토린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그녀의 오빠와 결투를 벌여 제거할 것을 제안했다. 빅토린은 라스티냐크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트랭은 감옥에서 탈옥한 자크 콜랭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경찰에 꼬리가 잡혀 체포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헤메던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 델핀을 사랑하게 된다.

 

오노레 드 발자크 /위키피디아
오노레 드 발자크 /위키피디아

 

고리오 영감은 두 딸의 사치를 위해 모은 재산을 다 써버리고, 마지막 남은 은그릇마저 팔아 딸의 드레스 비용을 대준다. 두 사위는 딸들의 지참금을 빼앗아가려 한다. 이 불쌍한 아버지는 졸도해 생사를 헤멘다. 딸은 아버지를 찾지 않는다. 죽음에 임박해서 고리오는 딸들의 비정함을 깨닫는다.

돈은 모든 것을 다 준단 말이야. 심지어 딸까지도. ! 내돈, 어디에 있느냐? 물려줄 보물들이 나에게 있다면, 그 애들은 나를 치료하고 간호할 테지. 나는 그 애들의 얘기를 들을수 있다고, 그 애들 모습을 볼수 있을 텐데.”

딸들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장례비도 대주지 않는다. 고리오의 죽음과 딸들의 비정함을 보고 라스티냐크는 깨닫는다. 작가는 이렇게 써내려갔다. “그는 이 사회를 거창하게 나타내는 세가지 표현을 보았다. 복종과 투쟁과 반항. 즉 가정과 세상과 보트랭이다. 그런데 그는 결심할수 없었다. 복종은 귀챦고 반항은 불가능하며, 투쟁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주인공이 라스티냐크다. 그는 결심한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다.”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는 입헌군주제와 카톨릭을 떠받드는 왕당파 지식인이었다. 그는 인생의 행복과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 두 개의 기둥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귀족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고리오 영감은 그가 배척해야 할 부르주아였고, 그의 두 딸은 귀족사회 타락의 상징이었다. 젊은 청년 라스티냐크는 한때 방황하지만 사회를 개혁할 젊은 양심으로 그려졌다. 보트랭은 현실에 불만을 가진 반체제 인사쯤으로 인식하면 될 것 같다.

 

1897년판 ‘고리오 영감’의 삽화 /위키피디아
1897년판 ‘고리오 영감’의 삽화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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