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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대학 2년때 쓴 데뷔소설…전후 집단 사고에서 벗어나 자기세계 추구하던 시대 반영
김승옥 ‘생명연습’에 비친 개성과 삶의 희망
2023. 08. 05 by 박차영 기자

 

김승옥의 생명연습은 그의 첫 소설이다. 서울대 문리대 2학년 재학중에 동료 이청준과 모의해 자신의 글을 세상이 얼마나 알아 줄까, 궁금해서 한국일보에 투고한 작품이라고 한다. 대학 2학년에 이런 글을 썼다니, 그는 천재적 소설가임은 분명하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개념이 잡히지 않는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난해하기만 했다. 자기 세계가 어떻다느니, 극기를 한다느니 하는 게 잘 정리되지 않고, 생명연습이란 제목을 달았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럴 땐 작가의 상황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1962,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끝나지 9년때 되는 해다. 죽음의 시대가 불러온 공포와 기억이 사라지고 삶의 의욕이 조금씩 싹을 틔우는 시절이다. 4·19도 있었고 5·16도 있었다.

대학생 김승옥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10대초반이었다. 전쟁 속에 속에 어린시절을 보냈다. ‘생명연습의 화자, 는 김승옥 자신의 세대다. 아버지가 전쟁 통에 죽었다. 어머니 혼자서 어린 아들과 딸 셋을 키우고 살았다. 그런 와중에 그는 대학생이 되었다.

책표지
책표지

 

생명연습은 전쟁의 환청과 죽음의 시대를 벗어나 삶의 의지를 찾는 시절의 얘기다. 전쟁은 개인을 빼앗아 버린다. 개인은 자신이 소속된 국가에 생명을 바치고, 국가와 사회를 이탈하는 개인주의는 허용되지 않는다. 개인은 자기의 세계를 만들지 못한다. 그럴 여유도 없고 그런 것을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다.

생명연습은 자기세계를 강조한다. “‘자기세계라면 남의 세계와는 다른 것으로서 마치 함락시킬수 없는 성곽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성곽에서 대기는 연초록빛에 함뿍 물들어 어른대고 그 사이로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만 웬일인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자기세계를 가졌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성곽에서 특히 지하실을 차지하고 사는 모양이다. 그 지하실에는 곰팡이와 거미줄이 쉴새 없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모두 그들이 가진 귀한 자산처럼 생각된다.”

모두들 소외된 세계에서 나와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집단적 사고에 매몰된 시대에서 개성의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자기세계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등장인물들이 추구한 자기세계는 보잘 것이 없었다. 영수는 여자를 정복하는 자기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많은 여자를 정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그는 언젠가 자기와 성관계를 맺었던 여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닫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만화를 그리는 오선생은 자로 직선을 그리지 않는 것을 자기세계에 넣었다.

자기세계는 비밀의 세계이기도 하다. ’생명연습은 화자()와 한교수의 대화, 나의 회상이 반복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한교수의 비밀은 어제 사망한 박교수의 부인이 과거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정순이었다는 사실이다. 둘을 사랑하는 사이였고, 한교수가 유학을 떠나려 하자 정순은 반대했다 시대는 일제강점기, 봉건적 관념이 강하게 남아 있을 때였다. 동갑인 정순은 애인이 유학 갔다 오기 전에 부모님이 어떻게든 시집을 보낼 것이라 판단하고, “배암과 같은 이기심을 발휘하여그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한교수는 고민을 하다가 정숙을 범한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정이 떨어졌다. 한교수는 유학을 떠냈고, 정순은 남의 여자가 된 것이다.

화자의 비밀은 어머니의 외도와 형의 죽음이다. 어버지가 돌아간 이후 어머니는 외간남자를 집에 끌어들였다. 형은 폐병이 걸려 죽어갔고, 가부장으로 어머니의 외도를 참지 못하고 때려버린다. 여기서 화자는 생명을 찾는다. 어머니도 여인이다. 40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새로운 남자를 찾았다. 죽어가는 형은 고집스럽게 구습에 매달렸지만 누나와 화자는 어머니를 받아들였다. 나와 누나는 애란인(아일랜드인) 선교사가 바닷가에서 홀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행위를 몰래 보면서 생명의 모습을 발견한다. 성스러워야 할 종교인이 수치스런 행위를 하는 것, 그것이 생명의 한 부분이고, 어머니가 바람을 피우는 것도 생명의 한 모습이다. 누나와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누나는 글을 써 형을 설득했지만 형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화자와 누나는 어머니와 형의 갈등 속에 어머니를 선택한다. 형을 물에 빠뜨렸는데도 살아나 돌아오지만 결국 형은 죽음을 선택한다.

우리가 꾸며놓은 왕국에는 항상 끈끈한 소금기가 있고 사그락대는 나뭇잎이 있고 머리칼을 나부끼는 바람이 있고 때때로 따가운 빛을, 쏟는 태양이 떴다. 아니, 이런 것들이 있었다기보다는 우리들이 그것을 의식하려고 애쓰고 있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그러한 왕국에서는 누구나 정당하게 살고 누구나 정당하게 죽어간다. 피하려고 애쓸 패륜도 아예 없고 그것의 온상을 만들어 주는 고독도 없는 것이며 전쟁은 더구나 있을 필요가 없다. 누나와 나는 얼마나 안타깝게 어느 화사한 왕국의 신기루를 찾아 헤매었던 것일까.”

 

소설엔 1960년대 초 대학가의 문화가 엿보인다. 남자들이 여자를 정복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극기란 행동도 있었다. 잘난 척하고 남을 위협하는듯한 행동이다.

김승옥이 왜 이 단편소설의 제목을 생명연습이라 했는지 나중에야 조금은 이해되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헤어나와 삶을 준비했다. 60년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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