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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이야기
조선조, 세곡선 안전항해 위해 태안반도 잘라…마도 앞바다 안흥량은 못 피해
안면도가 섬이 된 까닭…조선조, 최초 운하 건설
2019. 05. 10 by 김현민기자

 

충청남도 태안반도 앞바다는 물길이 거세고 암초가 많아서 예로부터 험난한 바다로 악명을 날렸다. 아무리 노련한 뱃사람이라도 잠시 한눈을 팔다가 암초를 만나 난파되기 쉬운 곳이었다.

그 중에도 신진도와 마도 주변의 해역은 물살이 거세어 해난사고가 잦았던 곳이다. 사람들은 물길이 험하다고 해서 이 해역을 난행량(難行梁)이라고 부르다가, 이름이 불길하다 하여 안흥량(安興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이 해역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주요 연안 항로였다. 영호남에서 올라오는 세곡(稅穀, 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실은 배(조운선)가 지나는 길목이었다. 특히 조운선의 무덤으로 유명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392(태조 4)부터 1455(세조 1)까지 60여 년 동안 200척에 달하는 선박이 안흥량에서 침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안 마도 지역 전경 /문화재청
태안 마도 지역 전경 /문화재청

 

태안반도에선 쌀썩은여라는 지명이 있다. 안면읍 신야리 바닷물 속에 있는 암초다. '()'는 썰물 때에 바닷물 위에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바다에 잠기는 바위를 말한다.

이런 이름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크게 두가지 속설이 있다.

첫째, 조선조에 전라도의 세곡을 서울로 운송하다가 세곡선 감독관이 쌀을 빼내 부당하게 사복을 채우다가 안면도에 이르렀을 때 세곡이 몇섬 남지 않았다. 감독관은 세곡선을 암초에 고의로 부딛쳐 파선시켜놓고 사고라고 호위로 보고했다. 조정의 조사반이 파견되었지만 고의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더 이상 문책하지 않았다고 한다.

둘째, 실제로 많은 세곡선이 암초에 부딛쳐 파선되어 싣고 있던 쌀이 물속에 가라앉아 썩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지역은 항해가 어려운 지역이었다. 태안(泰安), 안면(安眠)이라는 지명도 이 지역을 지나는 해상수송이 태평하고 안락하게이뤄져 잠을 편히 자길원한다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네이버 지도
네이버 지도

 

태안군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이었다. 태안반도가 길게 이어진 뭍이었는데, 조선 인조때 뭍의 좁은 허리부분을 파서 운하를 만들면서 섬이 되었다.

이 곳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고려시대 때부터 운하를 파는 작업이 이뤄졌다. 태안반도를 돌지 않고 내륙으로 운하를 파면 변화무쌍한 물길과 암초를 피할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 인종 12(1134)에 서해 태안 쪽의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굴포운하의 개착을 시도했다. 공사는 무려 500여년간 중지와 재개를 10여 차례 반복하며 파들어갔으나 결국 7km 4km 정도만 파고 중지되었다. 당시 기술로 공사 중 드러난 암반층을 뚫고 물길을 낼 기술력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해 5곳의 갑문을 설치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실행되지 못했다.

이 실패한 운하(굴포운하) 공사는 현재 태안군과 서산군의 경계를 지나도록 설계되었다. 지금의 장비와 기술로 공사한다면 1년이면 충분히 완공시키지 않을까.

차선책으로 선택된 것이 조선 인조때 안면읍 창기리와 태안군 남면 신온리 사이를 파내는 공사였다. 이 공사가 성공해 1638년에 판목운하가 완공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운하(運河)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운하의 개설로 안면곶이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한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가 되었다. 태안군의 면적이 504.94이므로, 굴포운하를 완공했다면 섬은 거제도(378.795)보다 크고 제주도보다 작은 국내 두 번째 섬이 되었을 것이다.

안면도를 육지에서 분리해 수로를 만들었지만, 조운선은 마도 앞바다 안행량을 비껴갈 방법이 없었다. 그저 하늘과 바다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1970(연장 200m) 태안반도와 안면도를 연결하는 연육교가 개통되었다. 330년만에 끊어졌던 곳이 다시 연결된 것이다. 2002년 꽃 박람회가 열리면서 다리를 하나 더 만들어 지금은 두 개의 다리가 나란히 놓여 있다.

 

조운선의 무덤이었던 이 험난한 해역이 이젠 우리 역사의 자료를 발굴하는 보고가 되었다.

태안 해안에서는 2007년부터 고려 시대 태안선과 마도123호선, 조선 시대 조운선인 마도4호선(2015)이 잇달아 발견되었다. 현재가지 발굴된 고선박은 14척이다.

지난해 발견된 마도4호선은 조선시대 선박인데, 그 곳에선 분청사기, 목간세곡, 선원들의 생활용품등 유물 300여점이 발굴되었다. 목간에는 나주광흥장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광흥창(廣興倉)은 나주에 있던 관아로 파악되고 있다.

마도해역에서는 2007년부터 고려 시대 선박인 마도123호선, 조선 시대 선박 마도4호선과 유물 총 3,500여 점이 발굴되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10일 개수제(開水祭)를 시작으로 6월 말까지 태안 앞바다 마도(馬島) 해역에서 2019년 수중발굴조사를 진행한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유물이 발굴된 암초 주변해역에서 남서쪽 방향 약 4,000범위에서 약 2달간 이루어 진다.

지난해 이 해역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고려·조선 시대 청자, 분청사기, 닻돌 등 총 90여 점의 수중유물과 더불어 중국 푸젠 성(福建省)에서 제작된 중국 송원(宋元)대 도자기, 북송(北宋)대 동전인 원풍통보(元豐通寶), 묵서명(墨書名) 도자기 등을 발견해 인양했다. 특히, 선박의 정박용 도구인 닻돌(닻에 매다는 돌)15점 출수되어 마도 해역이 풍랑을 피해 대피하던 곳이자 정박지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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