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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붕괴
독일 통일⑦…양독 통화 1대1 교환, 동독 기업 경쟁력 약화로 역효과
서독, 동독 흡수하다…독일기본법의 확장 적용
2021. 05. 25 by 김현민 기자

 

1990318일 동독 최초로 복수정당이 참가하는 자유총선이 실시되었다. 서독의 주요정당인 기민당(CDU)과 사민당(SPD)이 후보를 내면서 총선은 사실상 서독 정당과 동독 정당의 대결로 귀결되었다. 동독 총리 한스 모드로는 서독 정당의 동독 총선 참여는 내정 간섭이라고 항의했지만, 저지할 힘이 없었다.

400석 의석을 놓고 벌인 총선에서 기민당이 주도하는 독일 동맹이 192(48.0%), 사민당이 88(21.88%)을 차지했고, 동독 사회주의통일당(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66(16.4%)밖에 얻지 못했다. 선거는 서독 정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서독의 2개 정당(CDU, SPD)은 제4당인 자유민주연합(BFD)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전체의석의 4분의3을 차지하고, 기민당 소속 로타어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ère)를 총리로 선출했다. 아직 두 개의 정부가 유지되었지만, 동독의 정부와 의회는 사실상 서독에 접수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후 독일 통일은 서독의 주도로 빠르게 전개 되었다.

 

통독은 두 개 정권이 대등하게 합병해 제3의 국가체를 구성하는 형태가 아니라,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즉 동독이라는 국가가 멸망하고, 서독의 주권이 동독으로 확장하는 형태였다. 통일을 위한 헌법도 만들지 않았다. 동독의 법률을 폐기하고, 서독 기본법(헌법)과 각종 법률을 동독에 적용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EEC(유럽경제공동체), NATO, UN 등 국제기구에서 서독의 권리는 유지되고, WTO(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의 동독 지위는 소멸되었다.

 

독일 통일을 상징하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위키피디아
독일 통일을 상징하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위키피디아

 

통일에 앞서 우선 시급한 문제는 파산 지경에 이른 동독 경제를 건져 내는 일이었다. 두 정부는 518일 통화, 경제, 사회의 통합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치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서독 정부가 동독 재정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고, 둘째는 동독에 서독 마르크를 통용하는 것이고, 셋째는 동독인에게 서독의 사회보장제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서독은 통일을 준비하지 못했다. 통일이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다가왔다. 따라서 서독 정부는 경제적으로 정교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판단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서독의 마르크화 교환비율 결정이다.

 

서독과 동독은 마르크라는 통화단위를 공히 썼지만, 가치가 달랐다. 동서독 통화의 교환가치는 많게는 201에서 21까지 다양했다. 국가부도 상태에 이른 동독의 화폐는 거의 쓰레기로 전락했기 때문에 21의 교환비율, 즉 동독의 2마르크를 서독의 1마르크로 교환해주는 것조차도 무리였다.

그런데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통일이 되면 동독 인민들에게 동독 화폐를 동일한 액면가의 서독화폐로 교환해 삶의 질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기민당이 동독 총선에서 압승한 것도 이 이슈가 동독인들의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독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콜 총리에게 21의 교환비율이 적정하다고 건의했다. 동서독 마르크의 공식환율도 21이었다. 암시장에서는 41로 교환되었다.

콜 총리는 중앙은행의 요구대로 21의 교환비율로 양독 화폐가 교환될 경우 동독인들의 실망감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 동독 주민들은 통일이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당시 각자의 마르크 단위로 서독과 동독 근로자의 임금비율은 21이었는데, 화폐교환을 21로 하게 되면 동독 근로자의 임금은 서독근로자의 4분의1로 줄게 된다. 이게 맞는 교환비율이었다.

결국 양독 환율 결정은 경제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의해 이뤄졌다. 콜 총리는 서독인이 희생하더라도 동독인의 통일염원을 적극 이끌어 내야 한다고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된다. 콜 총리는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1로 결정, 71일부로 적용하기로 했다. 경제전문가들은 반대했지만, 정치적 결정을 뒤집을 수 없었다.

동독 노동자의 임금과 1인당 4,000마르크 이하의 저축액에 대해선 11로 교환되었다. 하지만 대규모 저축금, 기업 부채, 주택융자금 등은 21로 교환되었다.

동독 지폐 1,000억 마르크, 62,000만 장이 소각되었다. 그 분량은 트럭 300대 분량, 4,500이었다고 한다. 동전은 수거해 용광로에서 녹여 금속으로 재활용했다.

 

1990년 동독 중앙은행에 저장된 구동독 동전이 용광로에 들어가고 있다. /위키피디아
1990년 동독 중앙은행에 저장된 구동독 동전이 용광로에 들어가고 있다. /위키피디아

 

동독 화폐의 고평가는 콜 총리의 정치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동독 주민들의 부()가 하루 아침에 두배 이상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통일은 서독주민들보다 동독 주민들이 더 원하게 되었다. 이 희망의 기대치가 주변 강대국의 질시를 물리치고 독일 통일을 일궈 낸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겼다. 투기꾼은 경제 왜곡을 먹고 산다. 정치적 판단은 투기꾼들의 배를 불려준다. 동독과 서독 국경 지역에는 암거래상이 장사진을 이뤘다. 서독 사람들은 암거래시장에서 급매물로 쏟아져 나오는 동독 마르크를 샀다. 몇 달만 버티면 동독 마르크를 은행에 가져가 가치가 높은 서독 마르크로 바꿀수 있기 때문에 통화가치의 아비트리지(arbitrage)가 생긴 것이다.

이에 비해 동독 기업들은 고사 직전으로 몰렸다. 갑자기 통화가치가 두배 이상으로 절상되면서 물건이 팔리지 않았다. 가뜩이나 국제경쟁력이 약했던 동독 기업들은 독일 내에서도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동독 기업들은 11 교환비율 결정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동독에서 기업들의 연쇄 파산이 진행되었고, 문 닫은 공장에서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동독인들은 통일이 되면 재산이 늘어날 줄 알았는데, 직장만 잃게 되었다.

환율은 양면의 칼이다. 자국 통화가 절상되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득이지만, 수출 기업엔 절대적 손실이 돌아온다. 결국 11 교환비율은 동독 경제를 살지게 한 것이 아니라 피폐하게 만들었다. 동독 주민들의 기쁨은 일시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동독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매각되면서 경제기반이 무너졌다. 동독 주민들은 결국 실업 수당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화폐착시 현상의 무서움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서독 정부도 동독 통화를 고평가하는 바람에 막대한 통일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독일이 통일후 장기불황에 시달린 것은 통화 교환비율의 잘못된 책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1990년 10월 3일 0시, 베를린 제국의회에 독일 3색기가 게양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90년 10월 3일 0시, 베를린 제국의회에 독일 3색기가 게양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화폐교환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나중의 일이고, 서독의 동독 흡수합병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통일후 신헌법을 제정하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통일헌법 제정에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통일은 한시가 급하기 때문에 서독 기본법을 동독에 적용하기로 하기로 했다. 다만 서독 기본법 가운데 통일에 필요한 조항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선에서 낙착되었다.

 

1990823일 동독 의회는 독일민주공화국(GDR, 동독)의 주권을 독일연방공화국(FRG, 서독)에 이양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틀후 동독 의회의장은 서독 의회의장에게 결의안 내용을 송부했다.

동독은 서독과의 합의에 따라 14개로 편성된 주를 5개로 재조정했다. 분단 이전의 주 체제로 복귀한 것이다. 원래대로 돌아간 주는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Mecklenburg-Vorpommern), 작센(Sachsen), 작센-안할트(Sachsen-Anhalt), 튀링겐(Thüringen) 5개 주다.

830일 양독 정부는 독일통일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920일 동과 서의 의회에서 표결절차를 밟았다. 표결 결과, 양독 조약은 서독 의회에서 44247, 동독 의회에서 29980의 압도적인 표차로 비준되었다. 서독 의회도 923일 기본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통일조약은 103일에 발효되었다. 19901030, 구독일 제국의회에 흑--황의 서독 황색기가 올라갔다. 같은 시각 동부 5개 주가 독일 연방에 신규 가입했다. 동독 메지에르 총리의 권한은 효력을 잃고, 서독 헬무트 콜 총리의 권한이 동독까지 확대되었다. 독일은 103일을 통일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참고자료>

Wikipedia, 1990 East German general election

Wikipedia, German reunification

Wikipedia, East German mark

Wikipedia, New states of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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