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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연구
두 차례에 걸쳐 전국 섬 탐험…“섬은 영토이자, 자원의 보고”
섬 이야기①…“땅은 좁고, 바다는 넓다”
2019. 09. 14 by 이재언

 

( 이글은 섬 전문가 이재언씨가 20151127일 이사부기념사업회 주최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두회로 요약, 정리한 글이다. )

 

필자는 198011월 고향인 완도군 노화도에 내려가 섬과 인연을 맺었다. 오랜 인고의 나날을 보내면서 이제는 섬 전문가로, 혹은 섬 탐험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팔자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가 장보고 대사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업적을 성취한 인물을 흔히 영웅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바다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을 해상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장보고와 이순신은 한국을 대표하는 해상영웅들이다. 삼별초의 김통정, 하멜 등 바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영웅이라 할수 있다.

 

나는 국내 최로로 1991년 겨울부터 약 3년 동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섬 446개를 직접 배를 타고 돌아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2004년도 봄에 경남 장승포에서 4.5톤짜리 낚시어선을 하나 구입하여 가을에 두 번째 도전을 했다.

사실 처음도 도전은 너무나 무모한 도전이었고 모험이었다. 리스크가 너무 큰일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 그것도 땅에서가 아니라 바다를 달리며 전국의 유인도 총 447개를 탐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전국의 섬 탐사 진행은 돈도 안 되는, 무모한 짓이며 모험도 아주 위험한 모험에 속했다.

누가 이런 영역에 도전하거나 생각했을지 몰라도 섬과 바다의 발전과 미래의 후손들에게 도전을 주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조건이 너무 열악했지만 처음 한 번의 경험을 살려서 시작했기 때문에 한결 가벼운 마음과 설레임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초의 섬 탐사은 1991년 겨울부터 조도 지방을 시작으로 등대호 타고서 혼자서 전국의 섬을 순회하는 것이었다. 그때 풍랑주의보에 걸려서 34일 조도에 잡혀있었다. 그 당시 가족은 물론 저의 소속 단체가 모두 반대했지만, 이 일은 반드시 누군가가 한번쯤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혼자서 배를 타고 다녔다.

먼 바다에 있는 섬들은 객선을 타고 다녔다. 울릉도와 제주도외의 부속섬들, 흑산도와 전북의 어청도, 충남의 외연도, 강화군의 민통선에 있는 보름도 등은 객선을 타고 갔다.

혼자서 배를 타고 섬에 배를 대고 섬사람들을 만났다. 그때 섬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서 섬에 대한 상황을 물어 보았다. 가장 기초적인 전기, 물 사정, 학교, 보건소, 여객선, 인물, 교회와 사찰, 주업, 당산제 등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보면서 그 지역을 답사했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을 보통 제가 배를 타고 다니면서 답사를 했다.

 

2004년부터 2차 전국 섬 탐사에 나섰다.

2차 순회를 앞두고 개인 사비를 들여서 4.5톤 배를 마련하고 조수도 한 사람 데리고 그해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섬 답사를 2차로 시작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나의 섬 답사는 계속도고 있다.

 

2013년 가거도 탐사 모습 /이제언 제공
2013년 가거도 탐사 모습 /이재언 제공

 

그러면 오랜 섬 탐험을 통해 나는 섬의 가치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토적 가치다. 그 실례로 독도나 최남단 가거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섬은 군사 전략적인 가지가 대단하다. 서해 5도인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소연평도의 중요성은 말로 할 수 없다. 북한의 개성, 평양과 가까워 적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적의 활동 근접에서 관찰하고 도청 등에도 유리하다.

자원의 보고다. 해산물, 지하자원, 에너지 자원, 수자원, 무궁무진하다.

관광 자원이다, 거문도 사도 낭도 안도 금오도 우이도 관매도 홍도 백령도 울릉도 독도 등을 가보면 잘 알수 있다.

생태계의 보고다. 새들의 낙원, 식물의 군락지, 오염되지 않는 보고다.

전화(電化) 사업을 할 때 전봇대가 유무인도 거쳐 갈 때 천문학적인 예산이 절약된다.

연육교를 놓을 때 섬을 통과하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절약된다. 서해 행담도, 완도 노화-장사도-보길, 묘도와 광양 다리 중간에 섬이 없으니 천문학적인 돈과 시간이 든다. 부산의 가덕대교는 무인도 유인도를 통과하면서 바다 속을 통과한다.

무인도는 예전에 나무로 밥을 지어 먹던 시절에 연료의 보고였다. 지금은 해산물과 생태계의 보고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섬들은 아름다운 섬, 비운의 섬, 해수욕장의 섬, 여자의 섬, 미역의 섬, 간첩의 섬, 멸치의 섬, 전복의 섬, 김의 섬, 해녀의 섬들의 개념이 담겨 있다.

 

2013년 경기만 탐사 모습 /이재언 제공
2013년 경기만 탐사 모습 /이재언 제공

 

오늘날 우리의 해양활동은 세계 1위의 선박 건조능력, 세계 5위의 해운강국, 그리고 세계 10위권의 수산대국 등의 지표를 자랑한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어선이나 여객선 등 국내에서 해양활동을 하는 데는 아직도 선진국과는 거리가 말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사대부나 양반들에 의해 뿌리 깊은 뱃놈과 섬놈으로 천대 받고 자학하다 보니 선원들과 그 가족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기도 했다.

이렇게 아직도 바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섬의 환경은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 이제 우리의 공간인식은 다분히 육지 중심에서 벗어나 우리의 공간인식을 섬과 바다로 확대할 필요가 절실하다.

섬을 통해서 바다를 보고, 바다를 통해서 세계를 본다. 바다는 세계로 통하는 열린 길이며 섬은 세계로 가는 징검다리이다. 섬을 통해서 바다를 보고, 바다를 통해서 세계를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이도센터와 같은 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이도센터는 섬을 관장하는 단체로, 1968년도에 만들어졌다. 일본은 청일 전쟁 승리후에 센가쿠 열도를 자기네 땅으로 편입하면서 배타적경제수역(EEZ)447, 영토면적이 25배 더 큰 중국의 EEZ(387)보다 더 넓은 해양영토를 갖고 있다. 100여 년 전부터 벌여온 해양영토 확보전략 덕분에 일본은 석유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메탄하이드레이트와 희토류, 망간 등 엄청난 해저자원을 확보했다.

일본이 해양영토를 대폭 늘릴 수 있었던 비밀은 다른 나라보다 일찍 무인도의 군사적·경제적 가치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한국이 쇄국이냐 개국이냐로 논쟁을 벌일 때 일본은 필사적으로 무인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시켰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 최동단(最東端) 영토라는 미나미토리시마(南鳥島), 일본에서 1800떨어진 남태평양의 절해고도이다.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에 의해 1853년 강제 개항한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거치면서 무인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쟁탈전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1896년에 미나미토리시마에 개척단을 파견하고 1898년에 자국 영토라고 선언했다.

표고 9m, 면적 1.51(46만평)에 불과한 섬이지만, 이를 보유함으로써 국토면적(38)보다 넓은 43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했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이나 한국이 해양영토라는 개념이 없던 19세기 말부터 일본은 무인도를 속속 자국령으로 편입시켜 엄청난 해양자원을 확보했다"면서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여전히 해양영토 확장에 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는 바다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의 강국들은 21세기를 새로 시작되는 해양시대로 정의하고 있다. 해양과 섬을 잘 관리하여 미래지향적인 21세기 우리나라의 섬과 바다의 르네상스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로서는 섬과 해양 문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길 바란다.

 


이재언씨 프로필

필명: 이섬, 국립 목포대학교 도서() 문화연구원, 전남일보 섬 전문 기자, 저서: ‘한국의 섬’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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