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아라가야 유적에 토성 흔적 확인
함안 아라가야 유적에 토성 흔적 확인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9.10.3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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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구조물을 이용한 판축토성…나무 기둥, 판축공법 사용한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

 

함안 가야리 유적에서 아라가야 시대의 판축토성을 축조한 흔적이 드러났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를 발굴한 결과, 토성벽 내부에서 중심 토루 구간을 중심으로 판축성벽 축조와 관련된 나무기둥(木主)과 횡장목(橫長木, 가로방향의 목재) 등 목조 구조물들과 달구질(성토다짐) 흔적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지난 4월부터 시작한 발굴조사는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의 중심 유구인 토성이 축조된 방법을 규명하기 위해 성벽을 중심으로 우선 진행되었다.

판재를 지지하는 영정주(永定柱, 나무기둥)은 성벽 기초부에 성벽을 따라 중심토루 내외곽에 약 60~80cm의 간격으로 열을 지어 설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안팎으로 약 6m 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설치된 나무기둥 사이로는 중심토루가 있었다.

성벽을 가로질러 설치된 횡장목은 중심토루 윗부분에서 약 60~70cm 깊이에서 확인되었다. 이 횡장목(추정 지름 10~15cm, 길이 약 4.8m) 역시 영정주와 마찬가지로 약 6080의 두고 8개가 좁은 범위에서 영정주를 중심으로 연결 설치된 모습이었다.

중심토루는 5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나란히 성토다짐되었는데, 중심토루가 차례대로 성토되는 과정에서 여러 개의 횡장목이 중심토루의 구획 기둥(영정주)에 결구되어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성벽방향을 따르는 종장목(縱長木, 세로 방향의 목재)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또 중심토루에서 성토방법이 확연하게 차이나는 지점(축조구분선)을 확인했는데, 이를 통해 성벽을 구간별로 나눠서 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축조구분선 바로 서편에서 점성이 높고 고운 점질토를 달고로 두드려 다진 흔적(지름 8~10cm)도 확인되었다. 달구질 흔적은 영정주와 횡장목으로 구성된 목조 가구와 함께 판축공법이 아라가야 왕성의 축조 당시 차용되었음을 알려주는 유력한 흔적이다.

조사 범위에서 전체적으로 확인된 목책은 단면조사 결과, 중심토루를 파고 지름 30cm 정도의 나무기둥을 되묻어 설치한 것으로 확인된다.

 

함안 가야리 유적 토성벽 상부 목조구조물 조성 양상 /문화재청
함안 가야리 유적 토성벽 상부 목조구조물 조성 양상 /문화재청

 

지금까지의 조사를 토대로 보면, 함안 가야리 유적의 토성은 가야권역 내의 동시기 유적과 비교할 때, 그동안 발견된 사례가 없는 축조기법과 규모를 보인다.

토성벽 축조 공정마다 영정주와 횡장목으로 구성된 목조 가구를 설치하고, 판축상의 성토다짐(달구질)을 하는 등, 정교한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루어졌다. 토성의 규모는 현재 조사구역 내에 한정지었을 때, 전체 높이는 약 8.5m, 폭은 20m 내외이다. 이와 같은 축조기법과 출토 유물, 탄소연대 등을 통해 추정해보면 아라가야 왕궁지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함안 가야리 일대는 1587년에 제작된 조선 시대 읍지 함주지(咸州誌)와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 등에서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었고,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85월 발굴조사를 시작해 토성벽, 목책, 건물지 등 다양한 왕성 관련 시설과 유물들을 확인했다. 함안 가야리 유적지는 최근 사적 제554호로 지정되었다.

 

함안 가야리유적 전경 /문화재청
함안 가야리유적 전경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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