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악당 미화하고 증오범죄 정당화한 영화
조커, 악당 미화하고 증오범죄 정당화한 영화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04 20: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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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살인으로 표출한 것이 정당한가…예술성과 도덕성 논란 불러

 

거들먹거리는 월스트리트의 양복쟁이 신사 세 명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을 조롱한다. 아서는 참지 않고 총을 갈겨 버린다. 두명은 죽고 다른 한사람은 도망간다. 다음 역에서 내린 나머지 한 사람을 쫓아가 정조준해 쏘고 쓰러진 상태에 또 쏜다.

이렇게 그는 살인죄를 저질렀다. 그의 살인은 정당방위가 아니었다.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에게 그는 총을 갈긴 것이다. 증오범죄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죽여야 한다는 범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형적인 총기 살인을 정당화한 영화다.

 

영화 ‘조커’의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 ‘조커’의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 조커(Joker)102일 개봉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기에 영화관에 다녀 왔다. 적어도 정상적이고 평볌한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영화다. 국산영화 기생충이 계급적 증오를 살인으로 연결시킨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조커의 살인은 주인공의 개인적 삶에서 느낀 증오를 살해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느낀다.

 

영화 ‘조커’의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 ‘조커’의 장면 /네이버 영화

 

그의 두 번째 살인은 어머니다. 몸도 씻겨주며 보살폈던 어머니의 편지와 과거 정신병 기록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입양된 아들이고, 어머니가 자신을 학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살 이전의 행위는 나이가 들어 기억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서는 잠재 의식 속에 숨어 있던 어머니로부터의 애정결핍을 확인한 후 병원으로 찾아가 어머니 페니 플렉을 베개로 죽인다.

살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총을 건네 준 동료 랜들이 자신을 나쁘게 평가하고 총을 거래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의 집을 찾아온 랜들을 잔혹하게 죽여 버린다. 하지만 그에게 우호적으로 대한 난장이는 죽이지 않고 돌아가게 한다.

마지막 살인은 토크쇼 주인공 머레이 프랭클린이다. 그의 잘못은 아서 플렉의 코미디 영상을 마음대로 틀고, 아서의 코미디를 재미 없다고 평한 대목이다.

아서는 머레이 프랭클린의 초대를 받아 토크쇼에 출연해 대화를 나누면서 월스트리트 사람 3명을 죽인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하며, 머레이를 사살한다. 그리고 경찰에 체포된다. 거리에는 광대 시위가 한창이다. 그를 체포한 경찰차는 시위대에 포위되고 그는 구출된다.

영화는 고담시의 성공한 기업자아지 시장 선거에 출마한 토머스 웨인 부부를 죽여 버린다. 토머스 웨인은 비록 주인공 아서 플렉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시위대에 의해 죽는다. 이 정치인이 죽어야 할 이유는 정신질환을 앓던 아서의 어머니가 짝사랑했고, 어머니의 지원 요청을 거절하고, 아버지인줄 착각한 아서에게 찬바람 쌩쌩 나게 멀리한 게 이유라면 이유다. 영화 제작자들은 아서를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영화 흐름상 유력 정치인을 죽여야 했다. 그래야 분노한 광대 시위자들에게 정당성을 주게 될 터이므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난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개 같은 코미디였어.” 주인공은 자신을 조커(joker)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어쩌면 인생은 우스개(joke)를 하는 사람처럼 하나의 촌극에 불과한지 모른다.

그는 또 말한다. “내 일생 동안, 난 내가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어. 하지만 이젠 아니야. 사람들이 날 알아보기 시작했지.” 미디어가 자신의 살인을 부각시키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영웅시되자 아서는 우쭐해 한다. 제작자들은 광대 살인극에 대중적 공감을 불어 넣었다.

 

영화 ‘조커’의 장면 /네이버 영화
영화 ‘조커’의 장면 /네이버 영화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누구나 살다 보면 살의를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죽이고 싶은 마음은 꿈 속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살인은 현대 사회에서 법률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분노가 치올라 살인을 하고 싶은 욕구는 사회적 합의인 법률에 의해 억제된다. 이 욕구를 터트려 버릴 때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제제를 받게 된다.

영화는 이 분노를 억제하지 않고 터트려 버렸다. 죽이고 싶은 사람은 죽여 버렸다. 분노할 때에 살인을 해도 된다는 악마를 정당화했다. 정신병을 이유로, 애정결핍을 이유로 살인이 정당화되었다. 기생충도 그런 부류의 영화다.

일부에서는 계급적 관점에서 조커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계급적 관념은 비껴나 았다. 열차 안의 금융인, 토크쇼 사회자, 어머니, 자신을 조롱한 친구가 계급적으로 상위에 있던 사람은 아니다. 계급적 관점의 영화였다면 아서 플렉이 정치인 토머스 웨인을 몸소 죽여야 했고, 광대 회사의 사장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그가 죽인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던 금융인, 동료, 어머니, 토크쇼 사회자였다. 나를 기분 나쁘게 한 사람은 언제라도 죽인 것이다.

이 악당을 미화한 것을 예술이라고 할수 있을까. 창작이라는 이유로 범법 행위를 정당화하는 작품을 예술이라 할수 있을까. 이런 논쟁들을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영화였다.

 

영화 ‘조커’ 포스터 /네이버 영화
영화 ‘조커’ 포스터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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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1-09 00:47:54
영화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시거나 아니면 어그로 끌려고 일부로 쓰신 듯.. 쓰셨던 기사들도 어디 구글링하면 나오는 것들이나 나무위키에서나 볼 법한 수준이고. 글쓰는거 안 좋아하시니 다른 직업 찾는거 추천합니다. https://www.work.go.kr/consltJobCarpa/jobPsyExam/jobPsyExamIntro.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