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 1,500년만에 공개
창녕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 1,500년만에 공개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9.11.28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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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된 적 없이 온전하게 발굴…2m 두껑돌 7개 얹고 밀봉

 

비화가야(非火伽耶)1,500년전 경상남도 창녕 지역에 있었던 옛 가야연명의 소국이다. <삼국유사> 기이편 오가야(五伽耶)조에 비화가야, 지금의 창녕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에 비자벌(比子伐)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일본서기>에 비자발(比自鉢), <삼국지>에 불사국(不斯國)이라는 나라가 나오는데 모두 비화가야로 추정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 39호분과 창녕 교리 산5 일원의 고분군을 발굴한 결과, 도굴 흔적이 전혀 없이 온전하게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2863호분에서 시신을 안치한 매장주체부의 뚜껑돌을 들어 올려 내부의 모습을 공개했다.

 

63호분 봉토 축조 모습 /문화재청
63호분 봉토 축조 모습 /문화재청

 

63호분은 과거에 한번도 도굴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발굴되었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는 약 250여기의 고분이 분포하는데 이렇게 도굴된 흔적 없이 깨끗한 상태로 발견된 것은 63호분이 최초다. 63호분 바로 위에 위치해 있으면서 나중에 축조된 39호분 봉토에 가려져 있어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무덤 위에는 길이 2m의 편평한 뚜껑돌 7매가 얹혀져있고, 점질토로 밀봉된 상태였으며, 매장주체부의 내부에는 시신과 부장품을 매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당시 모습대로 남아 있었다.

 

63호분 매장주체부 뚜껑돌 모습 /문화재청
63호분 매장주체부 뚜껑돌 모습 /문화재청

 

카메라를 투입해 내부를 살펴본 결과, 현재 다수의 토기들이 보이는 상태로 추가적인 유물도 기대된다. 장비를 동원해 뚜껑돌을 들어 올리면 처음으로 내부가 드러나게 된다. 봉토의 표면 등에는 점토덩어리를 바른 흔적이 온전히 남아 있고, 호석이 노출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 비화가야인의 장송의례와 고분 축조기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39호분 매장주체부 축조 모습 /문화재청
39호분 매장주체부 축조 모습 /문화재청

 

39호분은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에서 세 번째로 큰 고분이며, 고분군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빗물 등으로 인한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중심부는 점토로, 가장자리는 흙으로 쌓았고, 봉분을 쌓는 단계마다 점토를 깔았다. 이런 기법은 울산 약사리 유적 등 고대 제방유적에서도 잘 나타난다. 남동쪽 호석 가까이로 약 2m 간격마다 큰 항아리를 놓았는데, 이처럼 한쪽에만 집중적으로 의례용 토기를 놓는 사례는 최근 경주 쪽샘 44호분에서도 확인되어 주목받고 있다.

39호분은 약 1.5m 길이의 큰 돌을 세우거나(양 장벽과 남단벽), 눕혀서(북단벽) 매장주체부의 네 벽을 만들었는데, 이와 유사한 구조가 성주 성산동고분군 등 대구·경북지역과 일본 나가노의 키타혼죠(北本城) 고분 등 나가노, 후쿠오카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어 당시 비화가야와 주변국과의 관계를 보여 준다.

 

조사지역 고분 현황. 위 가운데가 39호분, 아래 왼쪽에서부터 62·38·63호분. /문화재청
조사지역 고분 현황. 위 가운데가 39호분, 아래 왼쪽에서부터 62·38·63호분. /문화재청

 

인근에 있는 소형분인 62호분에는 400여 점의 유물이 이미 출토되었는데, 양쪽에 잔이 달린 토기와 6개의 잔이 달린 등잔형토기, 주전자형 토기와 같이 특이한 모양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상형토기는 주로 가야와 신라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지만, 창녕에서는 처음 출토된 형태다. 큰 토기 안에 작은 토기를 넣고, 같은 종류의 토기를 위아래로 포개거나 열을 지어 놓는 등 다양한 매납 방식도 확인되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묘역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사적 제514) 내 미정비지역(목마산성의 남서편 구릉부분)에 대한 학술 발굴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2014~2015년의 조사에서는 5세기 중반경의 봉토분(封土墳) 9, 돌덧널무덤(석곽묘) 15기 등 총 24기의 고분을 조사했는데, 벽에 나무기둥을 세워 축조하는 방식, 봉토가 서로 가까이 축조되는 연접방식 등을 확인한 바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의례, 출토유물 등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었다.

2016년부터는 5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분군의 동쪽 제일 상단부분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대형 봉토분인 39호분(지름 27.5m)을 중심으로, 63호분(봉토 지름 21m)과 소형분(봉토 지름 약 8m)38호분, 62호분의 봉토분 4기를 확인했다.

 

발굴조사 지역 /문화재청
발굴조사 지역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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