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풍속이 사라진다…올해는 우한 폐렴 우울
설날 풍속이 사라진다…올해는 우한 폐렴 우울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1.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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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과밀, 가족 해체로 고향 안 가는 사람 늘어…역귀성, 1인 가족 증가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 연휴를 맞아 기차역과 고속버스 터미널 등은 고향을 찾는 시민으로 북적대고 있다. 올해는 대체공휴일로 지정된 27일까지 나흘의 을 총 닷새간의 비교적 긴 연휴를 보낼수 있다.

설과 추석. 우리 세시풍속의 두 절기에 맞는 기나긴 귀성행렬은 산업화의 산물이다. 우리보다 늦게 산업화에 나선 중국 대륙에서도 수억명의 귀성인파가 이동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양력 설이 생긴 것은 1896년 갑오경장 때 태양력이 채택되면서다. 하지만 전통적인 음력의 설은 유지됐다. 일제 강점기엔 전통문화의 말살정책으로 일본인과 같은 양력과세를 강요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음력설은 부활했고, 경제개발에 따른 산업화 시대가 되면서 서울에 직장을 찾아온 근로자들이 음력설에 고향에 내려가면서 이중과세 논란에 휩싸였다. 음력설 과세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다가 1989년에야 비로소 전통적인 설날이 부활했다.

 

설날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사회규범이었다. 해마다 두차례 귀향이라는 힘든 여정을 반복한 것도 고향이 주는 평안한 마음의 안식처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민족 대이동을 방불케 하는 귀성 행렬은 경제개발에 따른 산업화 과정과 도시화 현상의 부산물이다. 산업화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싹을 틔웠다. 1970년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의 시정보고에 따르면 해마다 40만 명씩이 농어촌에서 유입됐다. “서울에 대전만 한 도시가 1년에 하나씩 생겨나는 것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1970년 당시 500만이던 서울시 인구는 지금 1,000만이 되었고 수도권인구가 2천만을 돌파지도 20년이 지났다.

 

우리나라의 귀성행렬은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소동이나 다름없다.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지극정성이요, 혀를 내두를만한 사건이다. 세계 어디를 들여다보아도 한국과 중국 두 나라 이외에 국민 절반이 동시에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는 일을 연례적으로 하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산업화 초기인 1960~80년대 설 연휴 기간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귀성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청운의 꿈을 꾼 자, 일자리를 찾아 온자,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온 자들이 도시에 밀려들었고, 그들은 설에 두손 가득히 선물 보따리를 챙겨들고 고향을 찾았다. 시골이 고향인 도시인들은 콩나물시루와 같은 기차와 버스를 마다 않았다. 도시의 생존경쟁에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를 달래줄 가족과 이웃의 따스함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핵가족 시대의 도래와 함께 민속 명절의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청춘에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도 은퇴연령에 접어들었다. 1960-80년대에 서울에 온 20-30대는 이미 50-70대가 되었고, 귀성할 사람도 줄었다.

농촌의 부모들이 도시의 자녀를 찾는 '역귀성'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도 절반이 휴양지를 향하며, 공항은 해외로 떠나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마을공동체는 물론 가족마저 해체된 개인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해가 갈수록 돌아갈 고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1인 가구 세대로 가족의 핵분열이 진행되면서 명절풍경도 달라졌다. 1인가구의 수가 500만 가구를 넘어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고향을 찾기보다 명질 연휴기간에 홀로 도시에 남아 생활하기를 원한다. 최근 명절을 홀로 보내는 사람들이 늘면서 편의점 도시락도 명절 연휴에 더 잘 팔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인 가구가 많은 원룸촌, 고시촌, 오피스텔 등 주택가의 경우 연휴 기간 도시락 매출 증가율이 평소보다 50% 정도 증가한다고 한다.

 

우리보다 산업화단계가 20~30년 늦은 중국은 춘절을 앞두고 대규모 귀성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의 춘절(春節)은 농경사회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에서 유래한 전통 명절이다. 특히 전날 오후부터 액운을 쫓기 위해 요란한 폭죽을 터뜨리며 새해를 맞이하는데, 자정 무렵 시민들이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이 폭죽을 터트린다.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는 풍습은 한국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떡국 대신에 만두를 먹는다. 중국 춘절은 조상에 제사를 모시는 날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새해를 맞아 희망을 나누며 신나고 즐겁게 지내는 날이다. 무려 3억 명의 인구가 고향을 찾아 이동할 것이라 하니 가히 민족의 대이동이라 할 만하다.

 

중국은 올해 우울한 춘제(春節)를 보네고 있다.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우한 폐렴으로 26명의 사망자가 났고, 확진자 수도 860명에 이른다.

중국 당국은 우한을 비롯해 감염도시에 폐쇄령을 내렸다.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과 디즈니랜드를 비롯한 유명 관광지들이 문을 닫고 각종 행사더 취소했다고 한다. 폐렴이 확산되면서 25일로 쑤저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0 중국축구협회(CFA) 슈퍼컵도 무기 연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에서 근무하다가 입국한 한국인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판정되어 우한 폐렴 확진환자가 2명으로 늘어났다. 일본에서도 관광차 입국한 40대 중국인이 우한 폐렴 확진자로 판명되어 확진자가 두명으로 늘어났다.

설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정세균 국무총리는 긴급 관계관회의를 갖고 우한 폐렴에 정부가 국민 안전과 보호에 최우선을 두고 신속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멀리 떨어졌던 가족들이 만나 오순도순 세상살이에 꽃을 피워야 할 설날에 우리도 중국발 바이러스를 걱정하게 되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2020 설 행사 포스터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2020 설 행사 포스터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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