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보다 먼저 기독교 국가 된 아르메니아
로마제국보다 먼저 기독교 국가 된 아르메니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5.1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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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년 기독교 국교 선포,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 로마 카톨릭서 이탈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는 로마제국에 앞서 아르메니아 왕국(Kingdom of Armenia)이었다. 아르메니아 왕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것은 티리다테스 3(Tiridates III) 재위 시절인 301년이다. 로마제국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국교로 삼은 392년보다 앞선 일이다.

아르메니아의 교회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라는 정식명칭을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12 사제 중에서 다대오(Thaddeus)와 바돌로매(Bartholomew)가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파했고, 자신들이 두 사도의 계승자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서기 130년경 아르메니아 왕국 /위키피디아
서기 130년경 아르메니아 왕국 /위키피디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설명에 따르면, 다대오가 성령으로 에데사(Edessa)의 왕 아브가르 5(Abgar V)의 문둥병을 고쳐주고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아브가르는 다대오를 이웃 아르메니아로 가서 기독교를 전파하라고 했다. 다대오는 아르메니아 국왕 사나트루크(Sanatruk)의 공주를 개종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사나트루크가 나중에 배교하면서 공주와 함께 순교했다.

다대오가 순교한 이후 바돌로매가 아르메니아에 들어와 성모 마리아 상을 앞세워 기독교를 전파했고 사나트루크의 누이를 개종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나투르크는 이번에도 누이와 바돌로매를 순교케 했다.

두 사도는 순교 직전에 성직자들을 임명했는데, 그 성직자들은 사도의 계승자로서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도를 전파했다. 국왕은 여전히 기독교를 탄압했고, 국경을 탈출한 신도들은 예수의 사촌형인 요한에게서 성직자 임명을 받아 종교활동을 이어 나갔다.

성 그레고리 /위키피디아
성 그레고리 /위키피디아

 

사나트루크 이후 아르메니아의 역대 국왕은 기독교를 탄압했다. 티리다테스 3(재위 298~330)도 처음엔 기독교를 탄압했다.

티리다테스는 중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그때 지하감옥에 갇혀있던 계몽자 성 그레고리(Gregory the Illuminator)가 왕의 누이의 꿈에 나타나 예언을 했다. 티라다테스는 그 성직자를 불러내어 자신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체험했다.

성 그레고리의 아버지는 아르메니아의 귀족으로 티라다테스의 부왕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되었다. 그레고리는 유모의 도음으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터키 땅 카파도키아로 도피해 그곳에서 수도사가 되어 고국으로 선교하러 갔다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역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국왕 티리다테스 3세는 그에게 배교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레고리는 거부하고 호르비랍(Khor Virap)이라는 지하 감옥에 갇혔다. 그렇게 12년이나 갇혀 있던 이 성직자는 국왕의 병을 치유한 덕분에 풀려나 다시 기독교 전파에 나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창시자가 된다.

티리다테스 3세는 성 그레고리의 세례를 받아 기독교로 개종하고, 301년에 기독교를 아르메니아의 국교로 선포했다.

5세기에 성 그레고리가 갇혔던 지하감옥 위에 교회를 설립하는데 그 교회가 호르비랍 교회다. 호르비랍 교회는 아르메니아 민족의 성산(聖山)인 아라라트산(Mount Ararat)이 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아라라트 산이 보이는 호르비랍 교회 /위키피디아
아라라트 산이 보이는 호르비랍 교회 /위키피디아

 

로마제국 시절에도 독립을 유지하던 아르메니아 왕국은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기독교 국가를 유지했다.

451년 터키 땅 칼케돈(Chalcedon)에서 열린 기독교 공회의에서는 로마 교구, 콘스탄티노플 교구의 서방파와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교구의 동방파가 치열하게 종교논쟁을 벌였는데, 아르메니아 교회는 동방파를 지지했다. 당시 동방파들은 하느님만을 신으로 모시고 예수는 인간과 신의 중간적 존재로 보는 단성론을 지지했는데, 아르메니아 교회도 단성론에서 출발한다.

이때부터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교회로부터 이단자로 몰려 독자적인 교회로 떨어져 나갔다. 아르메니아 정교회 또는 창시자의 이름을 따 그레고리 교회라고도 한다.

1198년 로마공의회에서 복귀를 선언했지만 실현하지 못하고 1373년에 로마가톨릭교회를 완전히 이탈했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이슬람 세력이 중동과 카프카스 일대를 지배할 대에도 끝까지 유지했다. 아르메니아 교회는 아르메니아인들의 민족종교화 되어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며,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에도 그 명맥을 유지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 성안에 4개 쿼터중 하나를 차지하며 로마 카톨릭, 그리스 정교와 대등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성직자들 /위키피디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성직자들 /위키피디아

 

교리는 대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나 지옥의 개념 등에서 로마 가톨릭과 차이를 보이며, 이혼을 인정하고 사제와 부제의 결혼을 허락한다. 총주교가 전 교회를 관장한다. 아르메니아가 소련 치하에 있을 때 신자가 급감했으나, 독립후 1990년대부터 다시 늘어 났다.

아르메니아에 신자 대부분이 밀집해 있으며, 발칸반도, 소아시아, 이집트, 유럽, 미국에 약간의 신자가 있다. 교회측 주장으로 신도가 9백만명에 이르고 있다.

 

예루살렘 성의 종파별 쿼터 /브리태니카
예루살렘 성의 종파별 쿼터 /브리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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