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에서 6세기 중엽 신라 고분군 발굴
강원도 양양에서 6세기 중엽 신라 고분군 발굴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7.0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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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트기식돌방무덤, 신라 동해안 북진정책의 요충지 추정

 

신라와 고구려는 동해안으로 놓고 수세기 동안 싸웠다. 신라가 강할 때엔 함경남도 안변까지 올라가고 고구려가 강할 때에는 경북 영해 일대까지 밀고 들어왔다. 하지만 6세기초 신라가 강성해 지면서 실직(삼척), 하슬라(강릉)을 회복하고, 북쪽으로 진출했고 진흥왕 시기에는 함경남도 일대를 차지했다. 진흥왕 순수비 가운데 마운령·황초령비가 이를 입증한다.

그동안 강릉 이북 양양-속초 일대에서 신라시대 유물이 거의 발굴되지 않았다. 또 강원도 동해안 북부지대에 대한 사료도 거의 없어 이 지역에 관한 역사 서술은 사실상 공백상태였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양양에서 6세기 신라시대 고분군이 발견되었다.

 

강원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 /문화재청
강원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 /문화재청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강원 양양 후포매리 산32번지에서 신라시대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 橫口式石室墓) 1)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시기는 6세기로 추정된다.

발굴조사는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에 대한 정식 발굴조사로는 처음 실시한 것이다.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은 해발 300m에 자리한 양양 후포매리 산성의 주변과 그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분포하고 있으며 조사 고분(1호분)은 후포매리 산성의 남동쪽 해발 203m가량의 완만한 비탈길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봉분의 지름은 약 10m 정도로 중소형분으로 추정되며, 봉분의 상부와 동편은 깎여나갔거나 후대의 민묘(民墓) 조성 등으로 멸실된 상태였다.

조사 결과, 무덤방은 구릉(丘陵, 언덕 지대)‘L’자 형태로 파고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 3.3m, 너비 1.86m, 잔존높이 1.52m가량으로 반지상식(半地上式)이며, 평면은 긴 네모꼴에 가깝다.

무덤방은 지표면을 좁고 길게 판 후 사방을 네모로 다듬은 돌을 9~10단 가량 쌓아 올린 뒤 규모 1.8×1.2×0.3m 가량의 지붕돌을 덮었다. 무덤의 입구는 너비 92가량으로 다듬지 않은 소형 돌로 쌓아 막았다.

출토 유물은 도굴 등의 피해로 소량의 유물만 확인되었다. 무덤방 내에서 6세기대의 뚜껑, 소형잔이 확인되었으며, 이외에도 금동제 귀걸이, 철도자(鐵刀子) 2)등이 나왔다.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 연도부(남동쪽) /문화재청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 1호분 출토 유물 /문화재청

 

이번 조사를 통해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은 인근의 후포매리 산성과 함께 양양지역이 신라의 동해안 북진의 전략적인 요충지였음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이 확인되었다.

앞으로 추가 조사를 통해 이 시기 양양지역의 정치적 상황, 신라 고분의 지방양식과 확산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 연도부(남동쪽) /문화재청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 연도부(남동쪽) /문화재청

 


1)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출입시설을 만들어 추가장을 의도한 매장시설로 묘도(墓道)는 있지만 널길이 없이 묘실의 한쪽 벽을 뜯고 출입할 수 있도록 한 무덤

2) 철도자(鐵刀子): 손칼. 물건을 자르거나 다듬는 용도로 사용된 작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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