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앞바다 신진도에 있는 한 옛집의 벽지를 뜯었더니, 거기에는 다수의 한시(漢詩)가 적혀 있었다. 폐가처럼 버려진 섬의 고가(古家)가 문화유산의 창고가 된 것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태안 신진도 고가(古家)의 벽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조선 수군진촌(水軍鎭村)의 역사와 서정을 느낄 수 있는 다수의 한시 등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벽지에서 발견된 한시에는 ‘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였다)는 글귀가 있다. 이는 1843년 7월 16일 태안 신진도 안흥진 수군의 관가로 사용될 집을 짓고 다음 해 안흥진 첨사(安興鎭 僉使) 조진달(趙鎭達)의 재임 기간인 1844년에 잔치를 베풀어 사방의 손님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다.

 

 

안흥량(安興梁)은 태안 앞바다 일대 신진도, 마도, 관장목을 연결하는 곳으로, 예로부터 물길이 험한 구역으로 유명하다. <승정원일기>에 “안흥량을 왕래하는 선박 중 뒤집혀 침몰하는 것이 10척 중 7~8척에 이르고, 1년에 침몰하는 것이 적어도 20척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바람을 만나 사고가 많으면 40~50척에 이른다”(1667년인 현종 8년 윤 4월조)는 대목이 있다.

이번에 이 고가는 사고가 많은 안흥량의 수군과 조운선을 관리하는 곳으로 추정된다. 고가에는 ‘無量壽閣’(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건물)’이라는 문구도 발견되었다.

 

또 ‘黃麥打麥羊 出家家’(집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하여 거두어 가다)는 제목의 한시도 발견되었다. 한시의 내용에는 ‘군포를 내라는 조칙이 있는데도, 갑자기 지난밤 보리를 보내어 왔구나’(布詔行令曾如此 忽然昨夜麥秋至)라는 문장이 있다. 이는 이 가옥이 안흥진 수군을 관리하기 위해 군포(軍布)나 곡식을 거두어 관리하는 곳이었음을 알게 한다.

 

 

안흥진 수군의 중요 임무가 조운선의 안흥량 통과였다. 이번에 발견된 한시 가운데 호송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의 희생과 이를 비유한 것도 있다. 이 시는 능숙한 초서체(草書體)로 ‘사람이 계수나무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人間桂花落 夜靜春山空)라고 하여 수많은 인명이 안흥량 앞바다에 빠져 희생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시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오언절구 한시 <조명간>(鳥鳴澗, 새가 시냇가에서 울다)의 형식을 빌린 것으로 연구소측은 보았다.

 

 

태안 신진도 고가는 상량문에 ‘도광(道光, 청나라 도광제의 연호) 23년’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어 1843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가에는 최인복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증언에 의하면 가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ㅁ’자형 건물 배치이며 260평의 대지에 방 5칸, 광 6칸, 부엌 3칸, 소 외양간 1칸, 말(馬) 우리 등을 갖추고 있었다. 현재는 ‘ㄷ’자형 구조만 남아있다. 광 6칸이 존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안흥진 수군을 관리했던 관가(官家)의 건물로 추정된다.

신진도 고가 인근 초등학교 주변에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시대의 건물로 추정되는 전통 기와집이 다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태안 신진도 수군진 유물 발견을 계기로 민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안흥진 수군과 관련한 개인문집과 문학작품을 찾아 번역할 예정이다. 관련된 주요 문집으로는 김득신(金得臣)의 <백곡집>(栢谷集), 김규오(金奎五)의 <최와집>(最窩集), 이상적(李尙迪)의 <은송당집>(恩誦堂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