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만큼 지친 국민 달랠수 있는 정치인 있나
나훈아만큼 지친 국민 달랠수 있는 정치인 있나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10.0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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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꾼의 황제, 국민과 함께 울고 웃었다…“국민 위해 목숨 건 왕, 대통령 본적 있나”

 

음악이 대중에 주는 효과는 엄청나다. 때론 음악이 사회의 변혁을 이끌기도 한다.

발트3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인들은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1939년에 소련에 합병되고 독일에 점령되고 다시 소련에 종속되면서 나라는 전쟁터가 되었고, 수도 탈린은 잿더미가 되었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이 슬푼 운명을 노래로 상처를 달랬다.

1985년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될 때, 에스토니아인들의 노래는 독립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소련의 탄압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그들은 폭력이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노래로 대응했다. 알로 마티센(Alo Mattiisen)이라는 음악가는 다섯곡의 애국 노래를 작곡해 19885월 타르투 민속음악제에 내놓았다. 그해 6월 탈린에서 열린 노래 축제가 끝난후 참가자들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독립 열기를 뿜어 냈다. 이 노래는 에스토니아는 물론 이웃 발트 국가에 퍼져나갔다.

1989823일에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지나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 이르는 600의 길에 약 200만 명이 거대한 인간띠를 형성했다. 발트 3국인들은 국기를 흔들며 국가를 부르고, 자유의 열망을 외쳤다. 노래혁명은 다양한 시위와 저항운동으로 4년 동안 지속되었고, 마침내 1991년 독립을 선언했다.

노래는 정서 전달에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폴란드 독립운동에도 노래가 있었고, 벨기에의 독립운동도 오페라극장에서 촉발되었다.

 

우리민족은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삼국지> 동이전에 우리민족은 음주가무를 좋아했다고 쓰여 있다.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陳壽, 233297)는 중국인이다. 그는 3세기에 동이족들이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고 기록했다. 그가 동이의 땅에 직접 가보지는 않았고 중국에서 전해들은 얘기를 기록한 것인데, 이미 고대부터 우리민족은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임을 중국인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KBS 홈페이지 캡쳐
KBS 홈페이지 캡쳐

 

KBS가 추석 전날인 930일 저녁에 나훈아 콘서트를 열었다. 닐슨코리아의 조사에 시청률이 29%를 기록했고, 지역에 따라 부산 38%, 대구·구미 36.9%, 서울 30%, 광주 22.4%였다고 한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도 나훈아가 도배질했다.

1947년생, 나훈아는 올해 73살이다. 한평생 노래만 불렀다는 나훈아는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는 지금부터 저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 겁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마음이 돼 주셔야 합니다. 준비됐죠?"라며 보이지 않는 시청자들을 향해 노래를 시작했다.

고향, 사랑, 인생을 주제로 한 노래는 너무나 익숙했다. 그는 '고향역', '홍시', '사랑', '무시로', '18세 순이', '잡초', '청춘을 돌려다오' ,‘영영’, ‘머나먼 고향등 자신의 히트곡을 불렀다. 시청자들은 그 노래에 젖어 흘러간 세월을 되돌아보고 고향에 계신, 혹은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그리워했다. 옛날 애인도 추억했을 것이다.

2시간 40분의 공연은 길지만 않았다. 함께 따라 부르고, 함께 흥얼거리다보니 밤이 훌쩍 지났다. 소크라테스를 지칭하며 신곡 테스형이란 노래를 부를 땐 코믹하기도 했지만, 인생에 뭔가 잔잔함을 던져 주었다.

 

그는 간간히 멘트도 날렸다.

우리는 많이 힘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옛날 역사책을 보든,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IMF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입니다

 

어느 정치인들이 나훈아를 따라갈까. 어느 정치인이 나훈아만큼 국민들을 위로 하고 달랠수 있을까. 그는 정치인들을 질타했다. 그는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이라고 했다. 이 뭉클함이 나훈아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정치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코웃음 쳤을 말을 그는 감동으로 전달했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전파에 실어준 KBS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지적했다. 김동건 아나운서와 대화하는 도중에 나훈아는 “KBS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여기저기 눈치 안 보는,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KBS는 거듭날 겁니다.”라고 했다.

 

나훈아는 훈장도 거절한 사연을 얘기했다. 김동건 아나운서 질문에 나훈아는 세월의 무게가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어떻게 훈장까지 달고 삽니까. 노랫말 쓰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깟 훈장쯤이야 하는 자신감이랄까, 무소유의 노래꾼이었다.

KBS는 그에게 가황(歌皇)이란 타이틀을 붙여주었다. 황제의 관을 쓰지 않는, 아무런 훈장을 달지 않은 그야말로 노래꾼의 황제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위치에 있기에 정치인도 나무랄수 있고, 코로나에 지친 국민들에게 힘을 불어 넣은 것이다.

나훈아는 15년만에 방송에 출연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 공연에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KBS8개월간 공연준비 과정을 정리해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15년만의 외출을 편성해 103일 밤 1030분에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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