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되면 관료 탓”…드러난 여당과 청와대의 인식
“못 되면 관료 탓”…드러난 여당과 청와대의 인식
  • 김현민기자
  • 승인 2019.05.13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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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 “청와대와 여당이 결정 다해 놓고”…“당청, 관료사회 질타 앞서 自省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나눈 대화가 잔잔한 파장을 낳았다.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대회에서 두 사람은 마이크가 켜져 있는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이인영: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것 제가 다 해야.

김수현: 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

이인영: 단적으로 김현미 장관, 그 한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해.

김수현: 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

이인영: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하고.

그제서야 그들은 마이크가 꺼져 있는 것을 알아챘다.

김수현이거 (녹음)될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눈치를 채고 서둘러 말을 중단했다.

이 사실은 그대로 녹음되어 그날밤 SBS에 방송되었다.

 

물론 실수였다. 마이크가 꺼진줄 알고 한 대화일 것이다. 하지만 집권여당에서 당과 청와대를 책임지는 두 고위간부가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달되었다.

우선 당청은 관료들을 하위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장관과 관료들이 행정의 중심이고, 청와대 보좌진과 당료들은 지원 기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 드러낸 속내는 관료들의 위에 서 있고, 그들이 말을 듣지 않아 모든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버스 사태만 해도 신임 건설교통부 장관이 지명되어 낙마하는 과정에서 공백이 생긴 가운데 관료들이 잘못해서 벌어졌다고 이들은 생각했다.

 

SBS 방송 캡쳐
SBS 방송 캡쳐

 

관려들이 부글부글한다고 한다. 버스 사태는 당청이 대통령 선거공약인 주 52시간제를 밀어붙이면서 버스업계의 특례조항을 없애버린 게 원인이다. 관료들은 당과 청와대의 지침을 받아 수행하는라 애를 썼는데, 욕을 얻어먹은 것이다.

정치 고수 박지원 의원이 한마디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공직자는 개혁의 주체가 돼야지 대상이 되면 안 된다. 장수는 부하의 사기로 승리한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직자들이 2기가 아니라 4기 같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레임덕을 인정하는 꼴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집권 2년이건만 4년 같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청와대도 일하는 곳이지 평가·군림하는 곳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언론들도 13일자 사설에서 이인영-김수현의 발언을 질타했다.

조선일보 국정 혼란·적폐 공포 누구 탓인데 관료에게 책임 돌리나

아직 정권의 서슬이 퍼럴 시기에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겠나. 정책 현장에서 파열음이 빚어질 것이 뻔한 무리한 지시가 청와대로부터 내려오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전 정권에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성실히 일했던 선배들이 이 정권 들어 지난 2년 동안 적폐로 몰려 시달리다 감옥에까지 가는 것을 지켜봤다. 그래서 요즘 공무원들은 정권이 바 뀐 다음에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 상관 지시를 녹음하거나 메모로 남겨놓는다고 한다. 현장과 동떨어진 이념형 정책을 찍어 누르듯이 지시하고, 현 정권에 충성하면 다음 정권에서 부역자로 몰린다는 공포를 공무원들에게 학습시킨 것이 바로 이 정권이다.”

동아일보 관료 복지부동 비난한 黨靑실세, 공무원만 비난할 수 있나

관료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비판하는 여당과 청와대 핵심 인사의 밀담에는 공무원들을 채찍질과 기강 잡기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이 담겨 있어 씁쓸하다. 청와대와 여당이 모든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내각의 자율성은 무시해온 청와대 정부행태, 그리고 전 정권 주요 정책 관련자들에 대한 집요한 사법처리로 공무원들을 납작 엎드리게 한 행태에 대한 반성은 없이 공무원들만 비판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지난 2년간 정부 쇄신을 내세워 수많은 혁신 과제를 추진해온 문재인 정부가 아직까지 공무원 탓만 하는 것도 한심한 노릇일 것이다.”

매일경제 “"집권 4년차 같다"는 당·, 관료사회 질타 전에 自省부터

·청은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을 질타하기 전에 그 원인이 무엇인지 자성부터 해야 한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전 정권에서 일했던 관료들을 부역자 취급하고, ·청이 일방적으로 주요 정책을 밀어붙인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관료들이 목소리 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부처 자율에 맡긴다는 말도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그런데도 정책 실패 책임을 관료들 탓으로만 돌린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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