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조 알영 전설 깃든 경주 발천에 고대수로
신라시조 알영 전설 깃든 경주 발천에 고대수로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1.04.27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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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50m, 동궁과 월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 석교 터도 발견

 

일연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신라시조 혁거세의 부인 알영의 출생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사량리(沙梁里) 알영정(閼英井) 주변에 계룡(雞龍)이 나타났는데 왼쪽 옆구리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얼굴과 모습이 매우 고왔지만 입술이 닭의 부리와 비슷했다 월성(月城)의 북쪽 시내에서 목욕을 시켰는데, 그 부리가 떨어졌다. 그래서 그 시내 이름을 발천(撥川)이라고 했다.”

알영은 닭처럼 생긴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나 태어날 때 입이 새의 부리 모양이었다. 그 아기를 목욕시켜 부리를 떨어뜨린 시내의 이름이 발천이다. ()제거한다는 뜻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기록에 발천은 알천(閼川)이라고도 했고,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월성 북쪽과 계름을 지나 남천에 이르는 형산강의 지천이다.

 

석교지 내부 /문화재청
석교지 내부 /문화재청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201910월부터 경주 동부 발천 수로에 대해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곳에 고대 발천수로가 확인되었다. 수로는 679(문무왕 19)에 만들어졌으며, ‘경주 동궁과 월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굴팀에따르면 수로는 북동에서남동쪽으로 흘렀으며, 길이는 최대 150m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새로 확인된 수로는 오랫동안 알려져 왔던 수로와는 다른 것으로, 이번 발굴을 통해 삼국 시대에는 넓었던 하천 폭을 통일신라에 들어서면서 좁혀서 사용했던 양상과 고려 전기까지 사용되던 하천이 이후 폐기되는 시점이 확인되었다.

 

석교지 /문화재청
석교지 /문화재청

 

발굴팀은 또 발천수로에서 7세기 후반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석교(石橋) 터를 발견했다. 이 석교 터는 760(경덕왕 19) 축조된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보다 제작시기가 훨씬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석교지는 너비 5.2m 정도의 조그만 하천에 비해 다리 너비가 교각을 기준으로 11m가 넘는 큰 규모로, 잘 다듬어진 장대석(長臺石)을 이용해 양쪽 교대를 만들고 하부에는 교각과 교각받침석 7개가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된 형태다. 이외에 난간석, 팔각기둥, 사각기둥과 청판석 등의 석재가 상부에서 흩어진 채로 확인되었다.

 

발굴조사 지역 주변 /문화재청
발굴조사 지역 주변 /문화재청

 

또 석교지 남쪽과 북쪽으로 연결된 도로가 확인되었다. 석교지 북쪽의 도로에는 초석(礎石)과 적심석(積心石)이 확인되어 기와집의 문지(門址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문왕 3(683) 왕궁의 북문에서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어린 딸을 왕비로 정하고 성대하게 맞이했다삼국사기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이번 도로유구의 발굴은 신라왕궁 북문의 위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로 서쪽 경계부는 잘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암거식 배수로를 설치했으며, 통일신라 석교지와 연결되는 도로는 너비 20m 정도로, 잔자갈이 깔린 도로면 위에서는 수레바퀴 흔적도 확인되었다.

 

석교지와 남북도로 /문화재청
석교지와 남북도로 /문화재청

 

한편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은 29일과 30, 경주에서 발천, 신라왕경의 옛물길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발천의 발굴조사 현황과 성과를 검토하고, 앞으로의 복원정비를 위한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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