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활쏘기 점수 좋으면 신하에게 선물했다
임금은 활쏘기 점수 좋으면 신하에게 선물했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1.05.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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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風’으로 문서화…정조, 50발중 49발 맞춰 신하에게 문방구 선물

 

우리나라의 활쏘기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활을 만들고 다루는 방법, 활을 쏘는 방법, 그리고 활을 쏠 때의 태도 및 마음가짐 등에서 우리만의 고유성을 보유하고 있는 민족의 문화적 자산이다. ‘활쏘기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고, 각종 관찬(官撰) 자료는 물론 조선시대 선비들의 문집, 당대 풍속화에서도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임금의 활쏘기는 기록을 해두었다. 특히 조선 22대 정조 임금은 50발을 쏴서 49발을 맞추는 실력을 갖췄다.

정조는 "내가 장난삼아 ‘49발까지 맞히면 그 때 가서 고풍(古風)을 청하라고 말했었는데 오늘 명중한 화살 수가 약속했던 그 수와 맞아떨어졌기에 문방(文房) 용구와 마첩(馬帖) 등을 제신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전에 한 말을 실천했다고 했다. (정조실록, 17921030)

오의상 고풍에 적힌 내용 /문화재청
오의상 고풍에 적힌 내용 /문화재청

 

 

조선시대 임금의 활쏘기엔 고풍(古風)이란 관습이 있었다. 고풍은 임금이 활을 쏘아 적중하면 임금 곁의 신하가 축하의 의미로 상을 청하는 풍습 또는 임금이 활을 쏜 내역과 하사품을 수록한 문서를 일컫는다. 고풍 문서에는 문서명, 상을 받는 사람, 임금이 활을 쏘아 득점한 내역, 활을 쏜 날짜, 선물 내용과 임금의 수결이 수록되어 있다. 앞의 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정조는 50발 중 49발을 맞추고, 문방 용구와 마첩을 신하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정조의 활을 쏜 내역과 하사품을 수록한 문서인 오의상 고풍’(吳毅常 古風)을 유튜브로 소개했다.

오의상 고풍179625일 정조가 활을 쏘아 15발 중 9발을 적중시키자 이를 축하한 무신인 오의상(吳毅常)에게 보약인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5()을 선물로 준 내용을 수록한 문서다. ‘오의상 고풍은 비록 간략한 내용만 수록되어 있으나 임금의 활쏘기 문화를 확인해 준다.

한편, 임금의 활쏘기 기록은 현판 또는 비석으로 제작해 길이 남기도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중 1842715일 조선 헌종이 춘당대(春塘臺) 옆 단풍정(丹楓亭)에서 활을 쏜 사실을 기록한 현판이 대표적이다.

 

황학정 /문화재청
황학정 /문화재청

 

조선시대에 한양 도성 내 서쪽에 다섯 개의 활터에 오사정이란 정자를 세웠는데, 옥동의 등룡정·삼청동의 운룡정·사직동의 대송정·누상동의 풍소정·필운동의 등과정이 그것이다. 오사정은 모두 없어졌는데, 그중 사직동 대송정 자리에 고종이 1898년에 지은 것이 황학정(黃鶴亭)이다. 황학정은 궁술연습을 하던 곳의 정자인데, 고종이 황색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모습이 마치 학과 같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996월 독일에서 하인리히 친왕(親王)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고종은 명궁수 여섯 명을 불러 덕수궁 후원에서 활쏘기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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