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이 따로 없다”는 가평 용추구곡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는 가평 용추구곡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10.14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봉산에서 발원, 연인산에 계곡 형성…조선말 문인 유중교에 의해 명명

 

우리나라에 용추라는 이름이 들어간 계곡이 많다. 용추는 한자로 龍湫 또는 龍墜로 표기하는데, 폭포와 같은 급류가 빠르게 흐르면서 생겨난 깊은 웅덩이, 즉 소()를 말한다. 그런 곳은 대개가 명승지다. 옛 선조들은 그런 아름다운 곳에 시를 쓰며 마치 용이 솟아오른듯하다 하여, 용추라는 이름을 지었다. 강원도 동해, 경북 영양군, 경남 산청군, 충북 음성, 충남 아산, 경남 함양 등에서 용추란 지명을 볼수 있다.

 

우리나라 용추계곡 가운데 으뜸은 역시 경기도 가평의 용추구곡이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해발 900m의 칼봉산을 발원지로 하고, 연인산을 끼고 흘러 내린다. 하류에서부터 와룡추, 무송암, 탁영뢰, 고슬탄, 일사대, 추월담, 청풍협, 귀유연, 농원계 등 9개의 절경지가 있어 용추구곡(龍墜九曲) 또는 옥계구곡(玉溪九曲)이라고 불리운다.

구곡(九曲)을 설정한 이는 성리학의 원조격인 송대의 주자(朱子)였다. 주자는 푸젠성의 무이산 아홉구비 계곡의 경치가 뛰어나다며 무이구곡(武夷九曲)이라 이름짓고 노래했다. 성리학을 배운 조선의 유림들도 국내 명산을 돌아다니며 구곡론을 폈다. 전남 곡성의 청류구곡(淸流九曲), 충북 괴산의 갈은구곡(葛隱九曲)도 이런 이치에서 생겨난 지명이다.

 

용추구곡의 위치 /강기래 등 ‘육계구곡 위치추정 연구’에서 캡쳐
용추구곡의 위치 /강기래 등 ‘육계구곡 위치추정 연구’에서 캡쳐

 

조선말기 성리학자인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1832~1893)가 용추계곡을 둘러보고 구곡의 이름을 명명했다. 유중교는 무릉 도원이 따로 없고 여기에 있으면 세상 모든 시름을 잊을만 하다고 감탄했다. 그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노래로 지었으며, 아홉구비마다 이름을 붙여줬다. 글씨는 유근식이 써서 각각 바위에 이름을 새겨 놓았다고 한다.

유중교는 옥계구곡의 이름을 짓고 각구비마다 가릉군옥계산수기, 옥계구가에 수록해 두었다. 지금의 아홉계곡 위치는 후대의 연구자들이 유중교 등 조선 문인들의 글을 토대로 비정한 곳이다.

 

가평 용추구곡은 다음과 같다.

 

제1곡 와룡추 /박차영
제1곡 와룡추 /박차영

 

1곡 와룡추(臥龍湫)

이 곳은 누웠던()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용추라고도 한다. 몇길이나 되는지 알수 없는 용추가 두 개나 되고, 그 옆으로 새하얀 바위들이 계곡을 뒤엎은 채 몇 억겁을 버티고 있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하늘의 비상한 조화를 헤아리게 하는 절경이다.

폭포의 바위에 卧龍湫라는 각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어 그 위치를 짐작 할 수 있다. 유중교는 냇물이 바위의 끝에서 네갈래로 갈라져 폭포를 만든다(溪從巖顚分四道作懸瀑)”고 설명했고, “물이 모여 큰 솥 같은 소를 이룬다(下匯爲圓湫如大鍋)”고도 노래했다.

 

제2곡 무송암 /박차영
제2곡 무송암 /박차영

 

2곡 무송암(撫松岩), 아이를 낳게 해준 미륵바위

옛날 한 여인의 집에 스님이 시주를 와서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여인이 이기 낳는 게 소원이라고 하자 스님은 용추구곡 미륵바위에 소원을 빌면서 바위를 떼어 끓여 먹으라고 했다. 여인은 스님이 시키는대로 했더니 석달 열흘 뒤에 태기가 있어 아기를 낳았다. 이후 아기를 못 낳는 여인들이 이 곳에 와서 빌면 틀림 없이 아기를 낳는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에는 돌을 떼어나나 흔적이 있다.

 

제3곡 탁영뢰 /박차영
제3곡 탁영뢰 /박차영

 

3곡 탁영뢰(濯纓瀨), 단군 아내 용녀의 재주

옛날 단군이 세상을 처음 열었을 때 중국의 천자를 지내고 있던 형이 조선을 구경하러 와서 용추구곡에 마음을 빼앗겼다. 천자는 조선을 빼앗을 궁리를 했고, 이를 안 단군 부인 용녀는 재주를 부려 비를 내리게 했다. 그런데 비가 어찌나 마노아 쏟아지던지 강이 넘치고 사람들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 갔다. 천자는 용녀아 재주를 겁내 두 번 다시 조선을 넘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제4곡 고슬탄 /박차영
제4곡 고슬탄 /박차영

 

4곡 고슬탄(鼓瑟灘)

푸른 소에 흐르는계곡 물소리가 때로는 북소리처럼 우렁차고 때로는 거문고 소리처럼 고요한 모습으로 보인다 하여, 고슬탄이라고 지어졌다. 현재에 이르러 그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바위에 부딪쳐 흘러 내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아름다운 계곡이다.

 

제5곡 일사대 /박차영
제5곡 일사대 /박차영

 

5곡 일사대(一絲臺)

물빛 속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 하얀 긴 실타래를 풀어 놓은 듯하고, 일렁이는 물살은 자연을 노래하며 유유히 를러간다. 깊은 소가 있는가 하면, 가늘면서 길게 흘러가는 모습, 꼬불꼬불하게 흐르는 계곡 등 다양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제6곡 추월담 /박차영
제6곡 추월담 /박차영

 

6곡 추월담(秋月潭)

달 밝은 가을밤을 연상시키는 바위 아래 깊게 파인 동그란 웅덩이가 작은 소를 이루고 계수나무에 토끼가 놀 듯 가을 밤의 전경들이 물 속에 가라앉아 하늘과 맞닿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넓은 바위를 지나 흘러 내리는 유유한 추월담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시를 읊었던 옛 선조들 떠올리게 한다.

 

제7곡 청풍협 /박차영
제7곡 청풍협 /박차영

 

7곡 청풍협(靑楓峽)

푸른 숲이 계곡과 맞 닿아 푸른 빛으로 물들은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반짝이는 녹색의 단풍나무 사이로 만들어진 긴 협곡과 흰 바위 위를 구르는 물방울들이 시원함을 만들어 낸다. 주위로 우람한 서어나무들이 둘러서 계곡을 보호하는 듯하다.

 

제8곡 귀유연 /박차영
제8곡 귀유연 /박차영

 

8곡 귀유연(龜遊淵), 거북이 놀던 계곡

옛날 하늘나라에 옥황상제를 모시던 거북이가 이 곳을 내려다보니 물이 얼마나 깊은지, 검푸르다 못해 까맣게 보였다. 거북은 호기심에 옥황상제 몰래 이곳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닿지 않아 다시 올라와 바위에서 쉬었다. 옥황상제는 법을 어긴 거북을 바위로 만들었다. 일명 용담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거북이 쉬는 듯한 모습이라 지녔다.

 

제9곡 농원계 /박차영
제9곡 농원계 /박차영

 

9곡 농원계(弄湲溪), 물살이 흐르면서 노니는 시내

용추구곡의 마지막 구비인 이곳은 경사진 기암괴속을 힘차게 내려오는 물살이 장관을 이루어 농원계라 불렀다고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