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휴의 무릉도에 관한 연구①…오화리산성
이승휴의 무릉도에 관한 연구①…오화리산성
  • 이효웅 해양전문가
  • 승인 2021.12.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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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무릉도행을 현대적 가시수평선 공식으로 분석한다

 

이 글은 이효웅 해양전문가가 ‘2021 해양학자대회에 제출한 원고입니다. /편집자주

 

1. 머리말

 

강원도 삼척시 오분동 고성산(100m)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고대 산성이 있는데 고산성, 오화리산성(吾火里山成), 요전산성(蓼田山城) 주1)이라고 부른다. 산성의 크기는 길이 1,000m, 넓이 38,207(12,630), 내성의 길이는 561m, 면적은 6,741이다. 성내에는 건물지 3, 우물지 1, 문지 3, 장군대 1, 망대 1, 수구 3곳 등이 있다.

옛 문헌인 新增東國輿地勝覽, 增補文獻備考, 大東地志에 의하면 오화리산성은 삼척부 남쪽 9, 동쪽 8리에 있으며 험준한 지형을 이용한 토성으로 1384년 우왕10년에 쌓았는데, 둘레가 1,870(567m)로 성안에 1곳의 샘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화리산성은 오십천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형성된 자연항만을 활용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으로 연안과 동해 항해의 요충지였다. 문화재 발굴 조사를 통해 산성 축조시기를 신라초기 실직주 설치(507) 이전으로 추정한다면 1,500년이 넘는 오래된 성이다.

삼척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외적의 침입도 많았다. 11세기 동여진과 거란, 일본 왜구, 몽골군의 침입으로 주민들이 오랜 기간 항전을 거듭했다.

삼척시에서 1988730일 세운 국난극복유적지 요전산성 표지석 비문에는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곳 사람들이 지키던 곳으로 이때 이승휴(李承休)도 여기에 참여했다.’고 적혀있다.

이승휴 주2)동안거사집에 나오는 시 망무릉도행(望武陵島行)을 현대 과학적인 방법인 관측 고도를 가시 수평선 공식을 이용하여 분석해본다.

 

오화리산성 위치 /네이버지도
오화리산성 위치 /네이버지도

 

2. 무릉도(武陵島)

 

망무릉도행(望武陵島行)

울릉도(무릉도)를 보았다는 문헌 기록은 여러 곳에 많이 있다. 주3) 고려 1253년 이승휴의 동안거사집주4) 에도 武陵島가 실려 있다. 이승휴는 1252(고종39)에 강화도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삼척 미로 구동(龜洞, 천은사)에 계시는 홀어머니께 인사를 하러 왔다가 몽골의 침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머니를 봉양했다. 몽골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요전산성에 머물며 마을 주민들이 알려주는 무릉도(울릉도)를 보고 望武陵島行이라는 시를 지었다.

 

動安居士行錄卷第一 / 行錄 望武陵島行

越癸丑秋因避胡寇一方會守眞珠府蓼田山城

城之東南面溟浡際天而四无涯極中有一山

浮沈出沒於雲濤煙浪之間晨昏媚嫵若有爲之者焉

父老云武陵島也江陵田使君命子賦之聊以鄙語形容云

 

무릉도를 바라보면서

계축년(1253) 가을 오랑캐의 침입을 피해서 진주부(삼척) 요전산성에 함께 모여서 수비하였다, 성의 동남쪽은 바다가 하늘에 닿아 사방은 끝없이 펼쳐졌다. 그 속에 산이 하나 있는데 구름, 물결, 안개, 파도 속에 순식간에 떴다 가라앉았다 나타났다 잠겼다 하였다. 아침 저녁에 더욱 아름다웠는데, 마치 무슨 일 치례를 하는 것 같았다. 노인들이 무릉도라고 하였다. 강릉부사 전문윤(田文胤) 주5)이 나로 하여금 시를 지으라 하여 바다의 형용할 수 없는 광경을 서툰 표현으로 말하였다...

 

배재홍은 이승휴가 고려 고종40(1253) 7월 초에 몽고군이 침입하자 강도(江都) 정부가 78일에 5도 안찰사(按察使)3도 순간사(巡間使)로 하여금 주민들을 산성과 해도로 입보시키도록 한 조처에 따랐을 것이라고 하였다. 주6)

望武陵島行시의 내용을 보면, 가을철 동해로 태풍이 지날 때 울릉도 모습이 파도로 인하여 보였다 안 보였다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고 아침·저녁으로 잘 보인다고 하였다.

연구자는 해양탐사선 코스모스호를 직접 만들어 울릉도 항해를 하였고 동해안 여러 곳에서 울릉도를 촬영하였다. 한반도에서 140km 이상 떨어진 울릉도를 촬영하려면 가을철 동해상으로 태풍이 지날 때를 기다려 새벽에 촬영지로 가서 해뜨기 직전의 여명촬영을 주로 한다.주7) 해가 뜨고 나면 밝고 해무가 생겨 희미해지거나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음회로 계속)

 
 
오화리산성 위치 /네이버지도
오화리산성 위치 /네이버지도

 


주1) 강원문화재연구소, 삼척 요전산성 기본설계(지표조사) 보고서, 2001/12/24

요전산성의 명칭은 고려시대 이승휴의 동안거사집에 요전산성(田山城)으로 기록이 보이고, 조선시대에는 오화리산성(吾火里山城), 오화고성(吾火古城), 오화성(吾火城) 등으로 표기하였다.

주2) 이승휴(李承休, 1224~ 1300년 음력 102)는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다.

주3) 「高麗史卷 五十八, 地理志 十二, 地理/東界/蔚珍縣 , 蔚珍縣 本高勾麗于珍也縣 [一云古亏伊郡] 新羅景德王 改今名 爲郡 高麗 降爲縣 置令 有鬱陵島...울진현 정동쪽 바다 가운데 울릉도가 있다

주4)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動安居士行錄卷第一 / 行錄 望武陵島行越癸丑秋因避胡寇一方會守眞珠府蓼田山城城之東南面溟浡際天而四無涯極中有一山浮沈出沒於雲濤煙浪之間晨昏媚嫵若有爲之者焉父老云武陵島也江陵田使君命予賦之聊以鄙語形容云

一色瑠璃抹天地四望無涯涘有山出沒雲煙中煙消雲散山彌翠雙分寸碧生婉轉蛾眉橫鏡裏忽大嶷然立萬丈蒼璧隨以撑天起或遠挺杳茫翠鳳沖天暫向風前止又近當我前色崩騰落窓几時復沒何許萬里蒼蒼空遠耳昏明怳忽似有無千態萬狀頗逐陰晴朝暮異珠宮貝闕冠其巓玄霜絳雪聯翩墜不願上界足官府願與散仙鞭笞鸞鳳相遊戲臨風放長嘯滌盡從前煙火累還將一粒金丹歸謝我賢知己

주5) 전문윤(田文胤) 고려후기의 문신으로 우정언, 낭중 등을 역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505p

주6) 배재홍, 삼척 오화리산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향토역사문화의 탐구와 재창출을 향한 요전산성 학술세미나 발표논문, 삼척문화원, 2002)

주7) 이효웅, 해양탐험가, 사진가, 해양탐사선 코스모스호 제작, 독도 및 한반도 일주 8,000km 단독 항해, 울릉도·독도 항해 16, 해외 항해(나가사키, 블라디보스톡 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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