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실험 10년만에 IMF에 손 벌린 에쿠아도르
좌파 실험 10년만에 IMF에 손 벌린 에쿠아도르
  • 아틀라스
  • 승인 2019.03.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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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추구하며 포퓰리즘 남발하다 재정 파탄 위기…긴축으로 허리띠 졸라매야

 

남미 북서쪽의 에쿠아도르(Equador)는 적도(equator)가 지난다는데서 나라 이름을 따왔다. 면적은 283,561으로 남북한 합친 한반의 약 1.3, 인구는 1,600만명쯤 된다. 1인당 GDP6,600달러로 가난한 나라다. 이 나라의 갈라파고스 제도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에쿠아도르는 석유가 풍부해 OPEC 회원국이고, 열대 자원이 많다.

2019년 들어 에쿠아도르는 IMF를 찾아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코트라 키토 무역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에콰도르는 누적된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 IMF와 협상을 벌였다. 그 결과 IMF로부터 42억 달러의 대기성차관(stand-by loan)을 제공받고, 세계은행, IDB, 라틴개발은행(CAF), 유럽투자은행, 중남미준비기금(FLAR), 프랑스개발기구 등이 60억 달러를 지원받아 모두 102억달러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에쿠아도르 /위키피디아
에쿠아도르 /위키피디아

 

그러면 왜 이 나라가 급히 IMF와 국제기구로부터 구제자금을 받아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정당이 10년 이상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포퓰리스트 정책을 남발하며 재정적자를 키워 왔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 대통령이 있다. 그는 20071월부터 20175월까지 10년동안 에쿠아도르 대통령 직을 수행했다.

그는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베네수엘라의 반미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우고 차베스(Hugo Chávez)를 지지해, 남미에서 2의 차베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코레아는 ‘21세기 사회주의’(21st century socialism)를 주창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집권하면서 발생한 재정적자가 누적해 결국 그의 후계자인 레닌 모레노(Lenin Moreno) 대통령에 의해 에쿠아도르는 IMF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자료: 코트라 에쿠아도르 키토 무역관
자료: 코트라 에쿠아도르 키토 무역관

 

 

수도 키토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코레아는 어려서 아버지가 마약사범으로 5년간 수감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카톨릭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후 소도시에서 빈민 아동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며 교육환경 개선에 참여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교수의 제자로 박사학위를 땄다.

코레아는 2005년에 알프레도 팔라시오(Alfredo Palacio) 대통령 밑에서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코레아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그 수익을 다른 산업 및 교육·복지 비용으로 쓸 것과 긴축정책을 완화할 것을 주장하면서 IMF와 마찰을 일으켰다. 알프레도 팔라시오 대통령이 IMF 요구를 따르자, 이에 반발해 재무장관직을 사퇴했다.

2006년말 대선에서 그는 경쟁자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의 언행은 거칠었지만, IMF와 대항해 국가부채를 줄이고, 석유산업에서 나오는 이득을 빈민들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공약이 여론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라는 직함도 국민들에게 신뢰룰 주었다.

취임하자마자, 코레아는 아르헨티나의 예를 따라 에콰도르 GDP25%에 이르는 102억 달러의 대외 채무 재협상을 요구했다. 코레아는 에콰도르의 대외 채무는 과거 군사 정권들과 계약한 것이므로 불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위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도 비판했다. 코레아는 에콰도르 채무 이행을 거부하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에콰도르 경제 조사를 중지하겠다고 위협했다. 2007426일 과연 그는 에콰도르의 세계은행 감독관에 추방 명령을 내렸다.

2008년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에코아도르는 이듬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내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채무조정에 성공해 그럭저럭 경제를 이끌어 나갔다.

그의 지지도는 국제유가가 버텨주었다. 2010년 라파엘 코레아는 교육개혁안과 경찰개혁안을 밀어붙이면서 교사들과 경찰관들이 대거 반발했지만,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경기 호황으로 높은 지지를 유지할수 있었다. 2013년 대선에서 그는 압승을 거두며 집권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2015년부터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세수가 급감하고, 그의 포퓰리즘 정책에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수도 키토의 지하철 건설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세금을 신설하고 상속세 납부 기준도 완화했으며 예산삭감도 단행하며 재정적자를 메우려 했지만, 경기 침체는 지속되고 재정 적자는 악화되어 갔다. 부유층과 중산층들이 반발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에콰도르 국가재정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2014~2019년 국제금융시장에서 발행된 에콰도르 국채는 총 1575,000만 달러에 이른다. 국채 이자도 8~10%로 뛰어 올랐다.

그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국에 손을 내밀어 50억 달러의 차관을 받았고, 광물 자원 개발에 중국자본을 유치했다. 미국과 IMF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을 견제세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2016년 에콰도르에 규모 7.8의 대형 지진이 발생했다. 코레아는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 지진피해 수습에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그는 4선을 준비했는데, 끝내 출마를 고사했다. 코레아는 결국 부통령이던 레닌 모레노를 내세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에쿠아도르의 라파엘 코레아(왼쪽) 전임 대통령과 레닌 모레노 현 대통령 /위키피디아
에쿠아도르의 라파엘 코레아(왼쪽) 전임 대통령과 레닌 모레노 현 대통령 /위키피디아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의 후임인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가 경제난을 겪고 있듯이, 에쿠아도르에선 라파엘 코레아의 후임인 레닌이 칩권 2년만에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다행히 베네수엘라의 마두로는 반미, 반서방 노선을 유지하면서 국제적 미아가 된 것과 달리, 에쿠아도르의 모레노는 친서방주의로 급선회했다. 그런 덕분에 IMF와 서방의 경제지원을 받아 위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같은 사회주의를 하더라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해 독재체제를 지속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에쿠아도르와의 차이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모레노 정부는 집권직후인 2017년부터 전임정권이 그토록 싫어하던 IMF와 접촉을 시작했다. 새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재정적자 축소 방안에 대한 조언을 받으면서 정부 부서 통폐합, 공무원축소, 유류보조금 축소 등 재정건전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모레노 대통령은 IMF 협상을 본인의 최대 업적으로 홍보하면서 324일로 예정된 지방선거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전 정권으로부터 부도 직전인 재정을 물려 받았으나, IMF 자금지원으로 건강한 정부를 다음 정권에 넘겨줄 수 있게 되었다'는 취지다. 전임 정부의 지지로 재창출된 정권이지만, 벌써부터 파라엘 코레아 정부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에쿠아도르와 베네수엘라 /위키피디아
에쿠아도르와 베네수엘라 /위키피디아

 

 

10년간 포퓰리즘의 단물을 빨아먹은 에쿠아도르 국민들은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앞으로 고통스럽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처지에 놓였다.

모레노 정부는 재정적자 개선을 위해 각종 보조금 축소, 정부규모 축소, 공기업 인원조정 및 경쟁력 강화, 관세조정, 외화유출세(ISD) 단계적 철폐,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아직까지 세금 인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재정수지를 맞추기 위해 부가세를 현행 12%에서 14%로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레노 정부는 IMF와 약속한 재정건전화 방안을 이행하기 위해 경제활성화법안을 오는 6월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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