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지사의 오판…불씨 커지기 전에 꺼야
김진태 지사의 오판…불씨 커지기 전에 꺼야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10.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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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판단 아니라지만…지급계획 밝히고 정부 차원의 대책도 제시해야

 

19991월 브라질의 부유한 주인 미나스제라이스주가 연방정부에 대한 채무 185억 헤알(150억 달러 상당)에 대해 상환을 3개월 유예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브라질의 대통령은 페르디난도 엔리케 카르도수였고,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는 전직 대통령 이타마르 프랑코였다. 두 사람은 서로 정적이었다. 카루도수는 프랑코가 1992~1994년에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 재무장관이었다. 프랑코는 부하였던 카르도수가 자신을 밀어내고 대통령에 당선되다고 믿었으며, 자신의 업적인 헤알 개혁을 도용해 공치사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그러던 프랑코가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것이다.

정적관계에서 시작한 두 사람의 갈등은 브라질 금융위기로 치달았다.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진이 남아 있던 신흥시장에 브라질 위기가 겹친 것이다. 해외투자가들은 보따리를 싸들고 브라질을 떠났고, 카르도수 대통령은 마침내 헤알화 절하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했다.

1999년 브라질 경제위기의 원인은 정치혼란이었다. 정치혼란은 때로 시장 참여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투매를 유발한다. 작금 영국 리즈 트러스 총리의 실패는 이런 경향을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강원도 레고랜드 조감도 /자료=강원도중도개발공사
강원도 레고랜드 조감도 /자료=강원도중도개발공사

 

강원도 김진태 지사가 쏘아올린 공이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에 쓰려고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에 대한 지급보증을 거부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 시장이 얼어붙었다. 이에 금융위원회가 채권시장 안정펀드를 재가동하기로 하는 등 긴급 조처에 나서야 했다.

보증규모는 2,050억원이고, 보증대상은 레고랜드 사업 주체인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2020년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발행한 ABCP. 강원도는 어음의 보증을 섰기 때문에 GJC가 어음을 막지 못할 경우 지급 보증 주체로서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김진태 지사는 929일로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에 어음에 대해 보증 의무 이행하지 않고 GJC를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채권자가 투자금을 돌려받을수 없게 된다. 신뢰도가 높은 지방자치단체의 지급보증으로 A1의 높은 신용등급을 받았던 채권이 디폴트 상태로 추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문제는 강원도 채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의 지방채, 심지어 국채마저 연동되어 폭락한 것이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선 신용도가 높은 채권이 신뢰를 잃었으니, 다른 것은 더 믿을수 없게 된 것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112조원, 만기가 짧은 PF유동화 증권을 합쳐 150조원대의 시장이 흔들린 것이다.

물론 국내채권시장 혼돈의 원인은 강원도의 레고랜드 처리만은 아니다. 미국의 금리인상, 국내 회사채 시장의 공급 과잉 등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작금의 채권시장 악화의 덤터기를 강원도, 특히 김진태 지사가 옴팡 뒤집어 쓰고 있다. 그 파장은 윤석열 정부로 튈수도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진태 지사가 정치적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시장 바닥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강원도 레고랜드 조감도 /자료=강원도중도개발공사
강원도 레고랜드 조감도 /자료=강원도중도개발공사

 

김진태 지사는 국민의힘에서도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도지사가 되고 보니 전임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문순 지사가 저질러 놓은 부채를 모두 떠안게 되었다. 기관장도 아직 최 전지사가 임명한 사람일 것이다. 기관장의 군기를 잡을 마음도 있었고, 전임자의 정책을 뒤집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나 지방정부 모두 영속성이 있는 경제주체다. 전임자의 자산도 후임자의 것이고, 부채도 후임자가 물려받게 된다. IMF 위기 때 정적 관계였던 김영삼 정부의 부채를 김대중 정부가 안아 해결해야 했다. 은해의 부채도 국가가 나서서 갚아야 했다. 그 몫은 온전히 국민들이 떠 안아야 했다.‘

김진태 지사는 지급보증을 유예한 이유를 강원도민이 낸 세금을 절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말은 잘못되었다. 그의 잘못으로 앞으로 강원도가 발행한 지방채가 소화되지 못할 경우 그 손실이 더 커질수도 있다.

금융시장은 좌파든, 우파든 가리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이악을 배반하는 정부를 혹독하게 몰아부친다. 혹여 금융시장이 우파 정부를 지지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영국에서 보수당을 흔든 것은 채권시장이었다. 김진태 지사의 실수가 윤석열 정부의 실패로 전이되기 전에 채권지급계획을 밝혀야 한다.

김 지사는 21일 중도개발공사에게 지급보증한 채무 2,050억원을 2023119일까지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예산도 편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을 시장이 받아들일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내년 1월 이전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에 대해선 상환유예가 되는데, 그로 인한 신인도 상실을 어떻게 상쇄할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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