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년전 무덤에서 나온 한글편지, 보물이 되다
5백년전 무덤에서 나온 한글편지, 보물이 되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12.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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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파견 무신 나신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창제 당시 훈민정음 실상 전달

 

조선 성종 때인 1490년대 어느날, 함경도에 파견된 무신 나신걸(羅臣傑, 1461~1524)이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아내 신창맹씨(新昌孟氏) 무덤에 묻혀졌다. 2011년 신창맹씨가 묻힌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의 무덤에서 피장자의 머리맡에 여러번 접힌 상태의 편지가 발굴되었다.

두 장의 편지는 편지는 한글로 쓰여 있었다. 이 편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이자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로 확인되었다. 문화재청은 1229일 나신걸의 한들편지를 국가 보물로 지정할 것을 예고했다.

 

‘나신걸 한글편지’ 발견 당시 모습 /문화재청
‘나신걸 한글편지’ 발견 당시 모습 /문화재청

 

편지에는 영안도’(永安道)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1470~1498년 사이에 함경도를 지칭하는 옛 지명이다.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 생활을 한 시기가 1490년대에서 편지는 이 므렵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지는 아래, , 좌우에 걸쳐 빼곡히 채워 썼으며, 주된 내용은 어머니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 철릭(조선 시대 무관이 입던 공식의복) 등 필요한 의복을 보내주고, 농사일을 잘 챙기며 소소한 가정사를 살펴봐 달라는 부탁이다.

이 편지가 1490년대에 쓰였음을 감안하면,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45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역과 하급관리에게까지 한글이 널리 보급되었던 실상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 시대에 한글이 여성 중심의 글이었다고 인식되었던 것과 달리, 하급 무관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쓴 것을 보면, 조선 초기부터 남성들 역시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기존에는 조선 시대 관청에서 간행된 문헌만으로는 한글이 대중에 어느 정도까지 보급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면, ‘나신걸 한글편지가 발견됨으로써 한글이 조선 백성들의 실생활 속에서 널리 쓰인 사실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아울러, 해당 유물은 현재까지 발견된 한글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이자 상대방에 대한 호칭, 높임말 사용 등 15세기 언어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앞으로 조선 초기 백성들의 삶과 가정 경영의 실태, 농경문화, 여성들의 생활, 문관 복식, 국어사 연구를 하는 데 있어 활발하게 활용될 가치가 충분하며, 무엇보다도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언어학적 사료로서 학술적ㆍ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나신걸 한글편지 /문화재청
나신걸 한글편지 /문화재청

 

나신걸 한글편지 이외에도 창녕 관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등 조선 시대 불상과 불화도 보물로 지정 예고되었다. 이들 문화재는 보물로 지정되기 전에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에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된다.

창녕 관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201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이다. 조각승 응혜(應惠)를 비롯한 9명의 조각승들이 16523월 완성해 관룡사 명부전에 봉안한 17구의 불상이다.

수조각승 응혜는 현존작을 통해 1634년부터 1674년까지 활동사항이 알려져 있는 17세기 중엽의 조각승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수조각승으로 활동하기 전, 청헌(淸憲)이나 승일(勝日) 등 당시 대표적 조각승의 작업현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성장한 인물로, 이 명부존상은 그가 가장 왕성하고 완숙한 조각솜씨를 펼치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1806(순조 6) 순조와 순원왕후의 장수를 기원하며 상궁최씨가 발원하고, 당대 대표적 화승(畵僧)이었던 민관(旻官; 敏寬) 5명의 화승이 참여해 제작한 대형불화이다. 이 괘불도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동안 서울 경기지역의 불화 제작을 전담한 화승집단의 일원이었던 민관의 대표작이자, 궁녀가 발원해 조성한 왕실 발원 불화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청룡사는 궁궐에서 나온 상궁 궁녀들이 수행했던 비구니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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