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탑골공원에 흐르는 오랜 시간
종로 탑골공원에 흐르는 오랜 시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1.24 0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탑과 비, 최초의 공원, 그리고 삼일운동…무너진 이승만 동상, 어르신의 공간

 

탑골공원은 서울에 들어선 최초의 공원으로 기록된다. 1895년 또는 1896년에 설립되었으며, 우리나라에 총세무사로 재직하던 영국인 존 브라운(John Mcleavy Brown)의 건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원각사지 10층석탑과 원각사비만 덩그러니 서 있던 빈터였다. 탑을 영어로 표현해 파고다공원이라고도 했다.

탑골공원은 역사의 뿌리가 깊다. 고려시대에 흥복사(興福寺)라는 절이 있었다. 조선조에 태종이 억불정책으로 절을 없앴고, 세조 10(1464)에 그 터에 다시 세운 절이 원각사(圓覺寺). 창건 당시 전국에서 구리 5만근을 모아 대종을 만들었고, 여러 불경을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보관하고, 십층석탑을 쌓았다.

그러나 성종 때에 다시 불교 억압으로 쇠퇴하다가 연산군 때에 절을 없애고 승려를 내쫓았다. 연산군은 그 자리에 음악과 무용을 담당하는 장악원(掌樂院)을 옮기고, 연방원(聯芳院)이라는 기생집으로 만들어 흥청망청 놀았다.

연산군이 쫓겨난 이후에도 절은 복구되지 않고 탑과 비만 남게 되었다. 원각사 동종은 그후 종각에 안치되어 보신각종이라 불리다가 1985년 수명을 다해 새 종으로 바꾸고 지금은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구한말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1920년에 공원으로 개원했다. 19193·1 운동의 발상지로 처음으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곳이다. 해방 이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동상이 서 있었는데, 1960426일 오전 분노한 시민들이 동상을 끌어 내렸고, 그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선언을 했다.

1992년 정부는 공원 명칭을 파고다 공원에서 탑골공원으로 개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탑골공원은 그 언젠가부터 종묘와 함께 어르신의 거리로 변했다. 개발시대 주력인구의 고령화가 공원에 느껴진다.

 

탑골공원 팔각정 /박차영
탑골공원 팔각정 /박차영

 

공원에는 3·1독립운동 봉화에 불을 당겼던 팔각정을 중심으로, 국보 원각사지 10층 석탑, 보물 원각사비 등의 문화재와 3·1 운동 기념탑, 3·1 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 /문화재청
원각사지 십층석탑 /문화재청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유리로 둘러쌌고,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는 보호각을 만들어 보호하고 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하며, 높이는 약 12m이다. 우리나라 석탑이 일반적으로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는데 이 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탑 구석구석에 화려한 조각이 새겨져 대리석의 회백색과 어울려 아름답게 보인다.

기단(基壇)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자 모양이다. 기단의 각 층 옆면에는 여러가지 장식이 화사하게 조각되었는데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탑신부(塔身部)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마다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부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전체적인 형태와 세부구조가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매우 비슷하다. 탑의 윗부분에 남은 기록으로 세조 13(146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국보 2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호 유리에 둘러쌓인 원각사지 십층석탑 /박차영
보호 유리에 둘러쌓인 원각사지 십층석탑 /박차영
원각사지 십층석탑 몸체 /박차영
원각사지 십층석탑 몸체 /박차영

 

원각사지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은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로, 조선 성종 2(1471)에 건립되었다. 비는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돌 위를 두 마리의 용이 감싸듯 표현되어 있다. 비를 지고 있는 돌거북은 둔중한 몸체로 머리는 목을 표현하지 않고 앞으로 나와 있다. 등무늬는 육각형이 아닌 사다리꼴 평행세선을 새겼으며, 등 중앙에는 연잎조각을, 꼬리와 다리에는 물고기 비늘을 조각해 놓아 조선시대 조각미의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비몸돌 위에는 보주(寶珠: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드는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었으며, 조각 아래의 가운데에는 대원각사지비(大圓覺寺之碑)라는 비명이 강희맹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당대 명신들이 짓고 썼는데, 앞면의 비문은 김수온, 성임, 뒷면의 추기는 서거정, 정난종이 각각 짓고 썼다. 보물 3호로 지정되었다.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문화재청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문화재청

 

탑골공원 내 팔각정은 구한말에 공원으로 꾸밀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93·1 독립운동 당시를 기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건물이다. 1989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공원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며 5단의 층단식 석축 기단 위에 마루를 깔지 않고 직접 기둥을 세운 구조로 되어 있다.

 

3·1운동기념탑 /박차영
3·1운동기념탑 /박차영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박차영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박차영
만해 한용운 선생 기념비 /박차영
만해 한용운 선생 기념비 /박차영
발굴출토된 우물 /박차영
발굴출토된 우물 /박차영
탑골공원 석재유구 /박차영
탑골공원 석재유구 /박차영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 /박차영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 /박차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