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탑에 맘 비우고 냇물에 발 담그는 통도사
사리탑에 맘 비우고 냇물에 발 담그는 통도사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7.0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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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진신사리 봉안한 삼보사찰의 하나…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법사가 창건

 

운 좋게도 우리는 통도사 금강계단 사리탑을 참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일행 가운데 불심이 깊은 보살님의 말씀에 따르면, 통도사가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사리탑 참배가 제한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 절을 찾은 날은 음력 보름, 오전 1030분이었다. 서울에서 온 우리는 복이 많았다. 사리탑을 개방하는 날, 그 시간에 우리는 그 자리에 있게 되었다. 시간이 되자 금강계단 주변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우리도 그 줄에 끼었다. 11시가 되자 사리탑의 문이 열리고 참배가 시작되었다.

석가모니가 계신 곳이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경내로 들어갔다. 천천히 사리탑 주변을 걸었다. 절을 하는 이도 있고, 기도를 하는 이도 있었다. 금강계단(金剛戒壇). 금강석과 같이 굳건한 마음으로 계율을 받는 성전이다. 불가에서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띤다.

사리탑은 돌로 종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그 안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층 기단 안쪽 면에는 천인상이, 바깥쪽 면에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제석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통도사 사리탑 /문화재청
통도사 사리탑 /문화재청

 

금강계단과 사리탑은 통도사 그 자체다. 통도사의 역사이기도 하고 우리 불교사의 뿌리이기도 하다. 사연은 1,400년 전,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3塔像 4 前後所將舍利條)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선덕여왕 시대인 정관 17년 계묘년(서기 643)에 자장법사가 부처의 머리뼈와 어금니, 부처의 사리 100개과 부처가 입던 붉은 비단에 금색 점이 있는 가사 한 벌을 가져왔다. 그 사리를 셋으로 나누어 하나는 황룡사 탑에 두고 하나는 태화사 탑에 두고 하나는 가사와 함께 통도사(通度寺)의 계단(戒壇)에 두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통도사의 계단은 두 층이 있는데, 위층 가운데에 돌 뚜껑을 모셔두었는데 마치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 같았다.”

자장(慈藏)스님이 당나라 오대산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문수보살이 승려로 변해 나타났다. 문수보살은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백과, 불두골(佛頭骨), 손가락뼈(指節), 염주, 경전 등등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들은 석가여께서 친히 입으셨던 가사이고, 이 사리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이며, 이 뼈는 부처님의 머리와 손가락 뼈다.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노라. 그대는 그대의 나라 남쪽 축서산(鷲栖山) 기슭에 있는 신지(神池)에 이것을 봉인하라.”

축서산이 통도사를 안고 있는 영축산이다. 영축산(靈鷲山)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인데, 영취산이라고 읽기도 한다.

 

통도사 입구 /박차영
통도사 입구 /박차영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웅전 뒤에 설치된 금강계단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 대신 거대하고 화려한 불단(佛壇)이 조각되어 있을 뿐이다. 이는 계단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는 신앙 때문이다.

통도사(通度寺)라는 절 이름은 금강계단을 통해 도(法度)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했다고 한다. 또다른 해설에 따르면 부처님의 나라 인도(印度)로 통하는 절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통도사 구룡지 /박차영
통도사 구룡지 /박차영

 

대웅전 옆에 구룡지(九龍池)라는 작은 연못이 있다. 여기에도 전설이 내려온다. 통도사 자리에는 원래 큰 연못이 있었다. 자장스님이 연못을 메우고 계단을 쌓고자 할 때 연못 속에는 아홉 마리의 악한 용이 살고 있었다. 자장스님이 설법으로 교화시키니 그중 다섯 마리는 통도사 앞산 넘어 오룡골로. 세 마리는 울산 삼동골로 도망갔다. 나머지 한 마리는 눈이 멀어 떠나지 못하고 사찰에 남아서 도량을 지키고자 간청했다. 자장스님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도록 했으니, 그 연못이 구룡지다.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고 깊이도 한 길이 채 안 되는 조그마한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통도사에선 매년 단오에 구룡지 옆에서 용왕대제를 지내고 있다.

 

통도사 전경 /통도사 홈페이지
통도사 전경 /통도사 홈페이지

 

양산 통도사는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다. 삼보(三寶)는 불교의 신행 귀의대상인 불((()을 가리키는 말로서 통도사가 불, 해인사가 법, 송광사가 승에 해당한다.

신라 선덕여왕 15(646)에 자장법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큰 절이 아니고 금강계단과 일부 법당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초에 사세가 확장되어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3년 선조 36년에 송운대사(松雲大師)가 재건하고 다시 1641년 인조 19년 우운(友雲)이 중건했다.

가람의 배치는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향하고 있다. 서쪽 위에 가람의 중심이 되는 상로전(上爐殿)과 중로전(中爐殿), 하로전(下爐殿)으로 이어진다. 관람객들은 동쪽에서부터 일주문(一柱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의 세 문을 통과하면 금강계단에 이르게 된다.

 

통도사 금강계단  /박차영
통도사 금강계단 /박차영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한 건물로 자형의 특이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정면인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대웅전의 남쪽 정면에 있는 금강계단이 그 정전으로, 통도사의 중심건물이다.

통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다. 2018,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2354일부터 무료입장이 가능해졌다.

 

통도사 무풍한송로 /박차영
통도사 무풍한송로 /박차영

 

통도사 구경의 또다른 백미는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걷기다. 통도사 입구 영축산문을 지나면 소나무들이 도열하고 옆에는 냇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통도사 8경 중 첫 번째로 꼽하는 이 산책로는 무풍교에서 부도원 입구 선자(扇子) 바위까지 1.5km 오솔길이다.

우리는 냇가에 맨발로 뛰어들었다. 찌는듯한 7월의 무더위도 달아났다. 심호흡을 한 번 할 때마다 솔향이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듯했다.

 

통도사 영산전 /박차영
통도사 영산전 /박차영
통도사 석당간 /박차영
통도사 석당간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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