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 “키치의 무거움…배신의 욕망”
쿤데라 “키치의 무거움…배신의 욕망”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7.19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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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위선에 저항하는 보헤미아적 자유분방함 표출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키치’(kitch)란 용어를 사용했다. 키치란 말은 원래 싸구려 모조품이란 의미의 독일어에서 나온 말인데, 쿤데라는 기성 질서의 허위의식 또는 위선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키치는 신은 똥을 싸느냐는 유아적 의문에서 키치의 개념을 출발한다. 종교는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천박하게 똥을 싼다는 사실을 감춘다. 똥은 왜 감추어져야 할 존재인가. 쿤데라는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면서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했다. (민음사 p399)

키치에 대한 부정, 키치에 대한 배신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이다. 쿤데라는 기성질서의 배반자로 토마시와 사비나를 등장시켰다. 기성질서에 영합하면서도 주인공을 사랑하는 존재로 테라자와 프란츠를 내세웠다. 여기에 암캐 카레닌이 인간의 사랑을 받다가 죽어가는 동물로 끼워넣었다.

책 표지(민음사)
책 표지(민음사)

 

토마시와 사비나는 위선에 대한 배신의 욕망을 갖는다. 그들은 소련과 그 동맹군이 침략한 체코를 배신하고 망명했고 한 여자 또는 한 남자에 충실하라는 기독교적 결혼관을 배반했고, 위선적인 반공산주의 조직에 등을 들렸다. 토마시와 사비나에서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함이 엿보인다.

키치에 대한 완벽한 배반자는 사비나였다.

지금까지 배반의 순간들이 그녀를 들뜨게 했고, 그녀 앞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그 끝에는 여전히 또다른 배반의 모험이 펼쳐지는 즐거움을 그녀의 가슴에 가득 채워주곤 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 남편, 사랑, 조국까지 배반할수 있지만 더 이상 부모도 남편도 사랑도 조국도 없을 때 배반할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을까. 사비나는 그녀를 둘러싼 공허를 느꼈다.“ (p202)

사비나의 배반은 공산주의만이 아니다. 그녀는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 그녀를 공산주의 박해에 저항한 지식인으로 활용하려는 서방 이익단체도 손을 내저었다. 사비나는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예요!“라고 말한다. (p412)

프란츠는 사비나의 애인이다. 그는 아내와 직장에 충실하면서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운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아내에게 사비나의 존재를 밝히는데 그길로 이혼을 당한다. 프란츠에 얽매이길 싫어하는 사비나도 프란츠를 떠난다. 프란츠는 공산 캄보디아에 의료진을 보낼 것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참여했으나 시위 참가자들의 위선에 실망한다.

 

주인공 토마시는 공산주의 체코에 대한 부정, 사랑과 섹스의 분리를 추구하는 외과의사다.

토마시는 여성편력자다. 그는 아내는 사랑의 존재이고, 섹스는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첫 아내와 이혼한 이후 그의 앞에 테레사라는 여인이 버려진 아이처럼 나타난다. 그는 동정심에서 그녀를 받아들이고 결혼을 한다.

그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탄압하기 위해 소련군이 진주하자 스위스로 망명한다. 함께 스위스로 건너온 아내 테레자가 남편의 바람기에 좌절해 귀국하자 토마시는 아내를 따라 귀국한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간음한 오이디프스의 죄를 저질렀다면서 죄를 통감해 제 눈을 찌르라는 내용의 글을 주간지에 보낸 이유로 비밀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그는 의사직을 포기하고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가 된다. 농촌에 가자는 아내 테레사의 권유에 따라 프라하를 떠나 농업협동조합에서 트럭운전사가 된다.

 

테레사는 토마시에게 우연하게 아내가 된 여인이다. 그가 우연하게 들른 술집에서 우연하게 톨스토이의 책을 가진 테레사를 만난 것이다. 토마시에게 테레사는 여러 가지 우연으로 만난 인연이지만, 테레사에게 토마시는 그렇게 해야 한다“(es muss sein)는 필연이었다. 테레사는 사비나의 도움으로 잡지사 사진기자가 되었고, 소련군이 침략했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릎 쓰고 사진을 찍었고, 서방기자들에게 그 사진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자기가 약한 사람들의 편, 약한 사람들의 진영, 약한 사람들의 나라에 속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녀는 그들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현기증에 끌리듯 이런 나약함에 마음이 끌렸다. 자신도 나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마음이 끌린 것이다.“ (P130)

 

토마시와 테레자는 15년 이상 함께 살았다. 토마시는 이데올로기의 위선에 맞서고 연애의 거추장스러움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으나, 어느덧 아내 테레자에게 끌려갔다. 취리히에 따라왔던 아내가 프라하로 돌아가지 그는 따라갔고, 아내가 농촌으로 가자고 하자 동의했다. 테레자는 토마시, 당신 인생에 내가 모든 악의 권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 까지 당신을 끓어 내린 것은 바로 나요.“라고 말한다.

결국 토마시는 아내라는 키치, 전처 소생인 아들(시몽)에 대한 키치에 빠져든 것이다.

 

작가는 키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각양각색의 의견이 있으며, 또한 각양각색의 키치도 있게 마련이다. 카톨릭 키치, 개신교 키치, 유대인 키치, 공산주의 키치, 파시스트 키치, 민주주의 키치, 페미니스트 키치, 유럽 키치, 미국 키치, 민족주의 키치, 국제주의 키치.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반쪽에 좌익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나머지 반쪽엔 우익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실제로 이 개념이 근거한 어떤 이론 원리에 따라 이 개념의 한쪽을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정치 운동은 합리적 태도에 근거하지 않고 표상, 이미지, 단어, 원형 들에 근거하며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정치적 키치를 형성한다.“ (p416)

작가는 주인공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프란츠는 인도주의 대장정에 매료되어 태국까지 갔다가 괴한의 몽둥이에 맞아 죽었고, 토미시와 테레자는 트럭 사고로 사망했다. 아들 시몽도 애완견 카레닌도 죽었다. 키치에 저항한 모든 것은 죽음을 맞았다. 다만 미국으로 건너간 사비나는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살아남아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밀란 쿤데라 /위키피디아
밀란 쿤데라 /위키피디아

 

소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1982년애 체코어로 완성했으나, 2년후인 1984년 그의 망명지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출간되었다. 영어로는 같은 해(1984)에 번역되었으며, 체코어로는 1985년에 나왔으나, 체코에서는 자유화가 이뤄진 이후인 2006년에 2판이 출판되었다. 1988년 헐리웃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으로 프라하의 봄운동에 참여했으며 187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올려 놓았다. 그는 올해 71194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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