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도 치르지 못한 단종 비애 서린 영월 장릉
장례도 치르지 못한 단종 비애 서린 영월 장릉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7.3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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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위에 단촐한 왕릉…낙촌비각·정려각·장판옥·배식단 등 충신 기리는 전각들 설치

 

영월 장릉은 제법 높은 능선 위에 위치해 있다. 역대 조선왕릉은 평지에 있는데 비해 단종의 무덤은 산 위에 있어 무덤까지 오르는데 제법 다리가 팍팍했다. 다른 왕릉에 비해 무덤도 초라하다. 겨우 체면만 유지한듯한 느낌을 준다.

 

영월 장릉 /박차영
영월 장릉 /박차영

 

조선조 27대 임금 가운데 제6대 단종은 유일하게 장례를 치르지 못한 임금이었다. 삼촌이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에게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멀리 강원도 영월 땅으로 유배를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사약을 내렸다. 17살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임금의 육체는 영월 동강에 버려졌고, 세조는 시신을 거두는 자에게 삼족을 명한다는 어명을 내렸다.

이 때 목숨을 건 충신이 있었다. 영월호장(戶長) 엄홍도(嚴興道)는 가족들과 함께 임금의 시신을 거두어 산속에 몰래 매장했다.

그후 아무도 노산군을 언급하지 않았다. 세조의 후손들은 선대의 악행에 시달렸다. 충절을 근본으로 하는 성리학의 나라에 왕위 찬탈의 죄책감에 사로잡힌 후손들은 과거사를 해결하지 않을수 없었다.

시역사건 60년이 지나서야 노산군에게 제사나 지내 주자는 주장이 거론되었고, 중종은 박충원(朴忠元)에게 노산묘를 찾아보라고 어명을 내렸다. 중종 11(151) 박충원은 암매장한 노산군의 묘를 찾아 제사를 드렸고, 종종 36(1541) 영월군수로 부임해 노산묘에 봉분을 세웠다.

단종이 조선왕조에서 공식적으로 복위된 것은 그가 죽은지 240여년의 긴 세월이 지난 후였다. 1681(숙종7) 망자는 노산대군으로 추봉되었고 1698(숙종24) 조선왕실은 6대 임금의 신위를 종묘에 모심과 동시에 묘호를 단종(端宗), 능호를 장릉(莊陵)으로 격상했다.

 

정자각 /박차영
정자각 /박차영

 

영월 장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멀리 있다. 대개의 왕릉은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데 비해 장릉이 강원도 산골에 있는 것은 단종의 비극적 사연과 연결되어 있다. 단종비사는 우리역사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스토리의 하나다.

단종은 불행한 인물이었다. 세상에 태어난지 이틀후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문종)도 단명하는 바람에 14살에 왕위에 올랐다. 대비라도 살아 있었으면 삼촌이 왕위를 뺏지 못했을 것이다.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등 고명대신을 척살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삼촌은 2년후 어린 임금을 내쫓고 임금이 되었고, 1457년 반역사건을 이유로 상왕을 노산군으로 강등한 후 영월 청령포에 유배를 보냈다. 홍수로 강물이 불어나자 노산군은 영월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해 금성대군 등이 계획한 복위 운동이 일어나자 세조는 조카의 목숨을 빼앗았다. 14571021(또는 24), 17세였다.

세조실록에는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고 했으나, 이는 거짓 기록이다. 실제로는 장례는커녕 그 누구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홍살문 /박차영
홍살문 /박차영

 

장릉의 특이함은 제사를 준비하는 전각과 무덤 사이의 위치다. 무덤은 능선 위에 있고, 정자각은 산 기슭에 있다. 능 주변도 단촐하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다. 능의 양식은 간단하고 추대왕의 양식을 따랐으므로 석물은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편이다.

특히 장릉에는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전각들이 설치되어 있다. 입구에는 노산군묘을 찾아 제를 올린 영월호장 박충원의 뜻을 기린 낙촌비각(駱村碑閣), 재실 옆에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旌閭閣),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종친, 충신, 환관, 궁녀, 노비 등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藏版屋)과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배식단(配食壇)이 있다.

 

낙촌비각 /박차영
낙촌비각 /박차영

 

장릉은 무덤 하나인 단릉이다. 왕비 정순왕후 송씨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思陵)에 모셔졌다. 왕후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자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생활했다. 왕후는 정업원 뒤쪽 산봉우리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한 많은 세월을 살다가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1698년 단종이 복위되자 정순왕후로 복위되었고, 능도 사릉이라 했다.

 

영천(우물) /박차영
영천(우물) /박차영

 

영월군은 1967년 이후 매년 4월말에 3일 일정으로 단종문화제를 개최한다. 문화제는 장례를 치르지 못한 단종을 위해 국장을 지내고,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을 배향한다. 죽은지 550년이 지난 2007년에 처음으로 국장이 치러진 것이다.

 

단종 국장 /사진=영월군
단종 국장 /사진=영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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