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거부한 뫼르소는 ‘이방인‘이 되었다
거짓말 거부한 뫼르소는 ‘이방인‘이 되었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3.08.0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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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2차 대전중 카뮈의 데뷔 소설…록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슷한 감성

 

영국의 록그룹 퀸의 에 보헤미안 랩소디가사를 들으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연상시킨다.

엄마, 방금 한 남자를 죽였어요 /총을 그 남자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죠 /그는 지금 죽었어요 /엄마, 이제 인생을 막 시작했는데 /난 지금 다 끝났고 포기했어요 /엄마를 울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일 돌아가지 못하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가세요 /너무 늦었어요, 내 차례가 왔어요

광장에 모인 수많은 팬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열창을 따라한다. 저 많은 인파가 무의식적인 살인, 무관심의 세계에 동조하는 것인가.

물론 머큐리가 카뮈의 소설을 번안했다는 얘기는 없다. 가수가 소설에서 힌트를 얻었을수는 있을 것이다. 형식은 다르지만 소설의 흐름과 록의 비트가 비슷한 리듬과 톤으로 대중의 감성을 울린 점에서 둘의 공통점을 발견할수 있다.

책표지(민음사)
책표지(민음사)

 

카뮈의 이방인은 죽음으로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민음사)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한 소설은 주인공 뫼르소의 살인으로 흐름의 전환이 이뤄지고, 화자의 사형 직전 상황으로 끝이 난다. 어머니의 자연사, 아랍인의 살해, 화자의 사형으로 죽음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줄거리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친구 레몽을 무덤덤하게 따라다니다가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받고 사형을 기다리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몇 단계의 죽음을 거치며 인간 내면의 솔직함을 쏟아냈다.

카뮈는 주인공 뫼르소의 태도에 대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라고 설명했다. 뫼르소는 윤리나 재판이라는 사회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에서 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쏟아냈다. 인간이 만든 사회 윤리는 어머니 장례식에서 아들이 우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입관한 엄마의 시신을 보려 하지 않았고, 그 옆에서 밀크 커피를 맛보고 담배를 피웠다. 장례식을 치른 다음날 해수욕을 하고 예전에 알던 여자와 코미디영화를 보고 같이 잤다. 이러한 사실은 나중에 재판에서 검사가 그를 패륜아로 규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카뮈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는 사람은 사형을 받을수 있다고 했다.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만든 윤리, 도덕, 이데올로기를 무시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아랍인을 살해하는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뫼르소는 재판정에서 살인의 동기를 분명하게 말해 달라는 검사의 요구에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이 갈리는 순간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태양빛에 번쩍이는 칼날의 번쩍임이 살인의 동기였다는 그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점점 이방인이 되어갔다. 예심판사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뫼르소를 재단했고, 그의 변호사는 나(뫼르소)의 생각과는 달리 재판에서 이기는 방향으로 답변하라고 압박했다. 검사는 나의 거짓 없는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카뮈의 표현을 빌리면 주인공은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사생활의 변두리에서 주변적인 인물로서 외롭게 관능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는 거짓말을 거부한다. 그가 거부하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즉 종교와 윤리, 재판의 룰 등이다.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그는 죄를 뉘우치기를 바라는 재판의 관례를 거부했기 때문에 유죄선고를 받는다.

 

알베르 카뮈 /위키피디아
알베르 카뮈 /위키피디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1942년 출간한 이방인으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때 나이는 29세였다. ‘이방인에는 카뮈의 시대적 방황이 스며있다.

카뮈는 1913년 알제리 몽드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1차 대전 마른 전투에서 전사한 후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고학으로 알제 대학에서 철학과를 다녔고, 대학시절 연극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졸업후 파리에서 신문기자를 했으며, 공산당에 입당했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파리가 독일군에 점령되기 전에 탈출해 알제리로 돌아갔다.

소설 이방인이 나올 무렵은 죽음이 만연하던 시절이었다. 수도는 적군에 점령되고 괴뢰정부가 수립되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전략상이라는 이유로 알제리의 식민지해방 투쟁을 외면했다. 이런 것이 작가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자기 생각에 솔직했던 그는 자신이 낯익었던 세계에서 떨어져 이방인이 된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카뮈는 세계는 내 마음이 기댈 곳을 찾지 못하는 알지 못할 풍경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사형의 날이 다가올수록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사형대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속에서 그 무엇인가 툭 터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에게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 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찾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알베르 카뮈는 사형제도 철폐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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